우리가 지금 접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코스모스, 즉 질서 있는 것들이다. 모든 것이 질서 속에서 나름의 역할과 생존을 영위한다는 점에서 질서는 하나의 생명체가 생존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만일 질서가 파괴된다면 우리의 생존 또한 보장받을 길이 없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 따르면, 태초에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카오스(Chaos)'만이 존재했다. 모든 것이 서로 뒤엉켜 분리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서의 카오스는 무질서하고 정형이 없는 덩어리로 모든 물질의 원형과 에너지로 꽉 찬 공간이었다. 그런데, 카오스에서 태초의 암흑인 에레보스와 밤의 여신 닉스가 태어났다. 어둠과 밤이 교합하기를 거듭하더니 이 둘 사이에 낮의 신 헤메라와 대기의 여신 아이테르가 태어났다.

 이어서 밤의 여신 닉스에 의해 모든 물질을 서로 결합하여 생성시키는 원천으로서의 에로스(사랑)가 태어나게 되고, 곧이어 하늘과 땅이 나뉘고, 땅과 물이 나뉘더니 땅에서 스스로 생명을 얻은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가 생겨났다. 타르타로스에 거하는 모든 신들의 든든한 처소인 가이아는 자신을 두를 수 있을 바다의 신 폰토스(바다)와 자신을 덮어줄 하늘의 신 우라노스(하늘)를 낳는다. 가이아는 우라노스와 교합하여 아들 여섯과 딸 여섯을 낳는데 이들이 바로 ‘티탄(Titan)족 12남매'이다. 이렇게 하여 하늘과 땅을 비롯한 모든 것이 질서지어지고 신들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이렇듯 카오스로부터의 분리와 분화를 통한 코스모스로의 이행은 한 생명체의 탄생 그리고 그 성장 과정과 유사성을 갖는다. 생명체의 탄생과 성장은 세포의 분화를 통해 확보되고 여기에서 분화는 곧 질서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이러한 평범한 진리를 신화에서는 비유와 상징을 통해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사유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근원적인 고민은 아마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불확실성에 대한 극복 수단으로 인류는 믿음(faith)이라는 체계를 선택했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극복 수단은 되지 못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예측시스템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카오스(chaos)란 후대에서는 장래의 예측이 불가능한 현상을 말한다. 카오스의 연구목적은 무질서하고 예측 불가능한 현상 속에 숨어 있는 정연한 질서를 끄집어내어 새로운 사고방식이나 이해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과학이 어떤 하나의 결과를 이끌어 내는 데 비하여 카오스는 몇 가지 효과가 서로 작용하여 질서나 무질서 상태가 된다는 점을 다룬다. 난류는 가장 뚜렷한 카오스의 예로, 물을 처음 가열할 때는 매우 질서 있게 움직이다가 가열이 심해지면 대류의 흐트러짐이 새기고 차츰 무질서한 상태가 된다. 해류의 흐름이나 대기의 흐름 등 자연계의 흐름 대부분이 난류이며, 이곳에서 카오스가 발생한다. 이 밖에도 나뭇잎의 낙하운동, 조혈작용 등의 생체현상, 전력의 흔들림, 지진발생 메커니즘 등과 우주에 대해서는 시공의 구조와 블랙홀 부근의 별의 운동 등에서 카오스적인 현상이 발생한다.

 지금 우리가 편안하게 앞날을 설계하고 자신의 일을 짜여진 계획에 따라 추진할 수 있는 것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바로 그러한 예측은 무질서한 혼돈체계에서는 불가능하다. 미래에 대한 예측은 오직 질서를 전제로 한다.

홍 병 선·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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