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90년대 중앙대와 기아자동차의 최전성기를 이끈 센터가 있다. 바로 1m97cm의 큰 키를 자랑하는 김유택 선배(사범대 체육교육과 83학번)다. 2000년에 은퇴하며 선수로서 농구 코트는 떠났지만, 지난 6일 남자농구 올림픽 대표팀 코치로 다시 돌아왔다.

우연한 기회로 농구를 시작한 선배. “아버지 친구 분의 아들이 농구 코치였어. 키가 크다는 말을 듣고 농구를 추천해 주셨지” 입단 제의를 받고 선배의 아버지는 대학 장학금을 받는다는 약속으로 선배를 명지고에 입학시켰다. 먹고 살기도 빠듯한 시기에 하나 뿐인 아들을 대학에 보내야겠다는 아버지의 마음이었단다.

명지고 시절을 마치고 선배는 1983년 중앙대에 입학했다. 선배는 대학 농구의 강자인 연세대나 고려대에 비해 인지도는 낮았지만 고3 초반 일찌감치 중앙대 입학을 결정했다. “중앙대 입학은 정봉섭 체육부장의 도움이 컸어. 고3때 고등학교로 스카웃을 하러 오시면서 알게 된 분이시지. 개인적으로 정도 많이 주시고 의리가 있으신 분이셔” 정봉섭 체육부장의 도움 뿐 아니라 선배의 의지 또한 확고했다. 대학 농구에서 최상위권인 연·고대 보다는 아직은 낮은 실력의 대학에서 우승하고 싶다는 욕심에서다. “중앙대는 지금도 그렇지만 선후배 사이의 폭력이 없었어. 마음껏 농구할 수 있었지.”

중앙대 농구부 제1의 전성기 이끌어

그 욕심 덕분이었을까. 그 해(83년) 대학 농구 춘계대회에서 중앙대는 우승을 차지했다. “학교 방송국에서도 우승 경기를 일주일 내내 방송했어. 학교가 떠들썩했지”라며 그때를 회상한다. 이후 선배와 한기범 선수, 허재 선수 등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을 바탕으로 중앙대 농구부는 제1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83년부터 87년 사이 19개 대회 연속 우승, 대학리그 73연승의 대기록을 달성한 것이다.

83년부터 95년까지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한 선배는 은퇴 후 농구 코트가 아닌 카메라 앞에 서기도 했다. 케이블 스포츠 채널 Xports에서 해설을 맡게 된 것이다.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객관적 시각에서 농구를 볼 기회가 생겼다. 배운 점도 많았다. 한 팀의 감독이라면 보는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는데 해설을 하면서 다양한 농구 기술을 분석할 수 있었다.

1%의 가능성 이라도 내 것으로

현재 선배는 김남기 감독과 함께 올림픽 대표팀 코치라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선수라면 한번쯤 꿈꿨을 대표팀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우리나라가 3위에 그쳐 베이징올림픽 직행티켓을 놓쳤기 때문에 어깨가 더 무겁다. 6개 대륙 12개국이 출전하는 남자농구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3위 안에 들어야 올림픽 무대에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 농구는 세계 농구에서 약한 것이 사실이야. 우리나라가 올림픽 출전 티켓을 따낼 확률은 10% 남짓이고.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10%의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돼. 운동은 승자가 계속 자리를 지킬 수 없기 때문에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그 것을 내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해”라며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영원한 승자란 존재하지 않기에 스포츠가 존재하는 것이라는 선배의 말이다.

한편으로 대표팀 선수들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요즘 선수들은 개인주의가 팽배해 국가대표에 연연해하지 않는다고 한다. 차라리 프로구단에서 돈을 더 버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프로리그가 끝나면 4월이야. 국가대표로 뽑히면 쉴 수 없이 바로 훈련에 들어가야 해. 요즘 선수들은 가정과 자기 생활을 중시하기 때문에 일년 내내 훈련하는 것을 꺼리게 되는 거지” 농구 협회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지만 선수들도 나라를 대표해 경기에 출전한다는 자부심을 키워야 할 것이라고 선배는 이야기 했다.

두 아들까지 농구의 길을 걷다

농구를 시작한지 30년이 된 선배. 지금은 두 아들도 선배를 좇아 농구 선수로 뛰고 있다. 농구 가족인 셈이다. “내가 걸었던 길이어서 얼마나 힘든지 너무 잘 알아. 아이들이 원하는 길이니까 응원해 주고 있지만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일반적인 학업의 길과 달리 운동은 그 진로분야가 한정돼 있다. 게다가 선배가 무릎이 약하듯 선수라면 고질병 하나씩은 갖게 돼 아들들을 볼 때마다 그만뒀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크다고.

“끈끈한 결집력이 곧 자부심”

마지막으로 선배는 후배들에게 조언의 말을 남겼다. 말로만 학교를 사랑하는 것은 진심으로 학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란다. “중앙대는 뭉치는 힘이 약해. 다른 명문대에 기죽지 말고 그 안에서 끈끈하게 뭉쳐 나름의 색을 찾아야 해. 그러면 우리 중앙대도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

사진: 성지혜 수습기자

김유택 선배 프로필
출생 1963년 10월 10일
학력 중앙대학교 사범대 체육교육과 졸업
경력 현재 베이징올림픽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코치
     2005 ~ 2007 Xports 해설위원
     2002 ~ 2005 명지고등학교 농구부 감독
     1987 ~ 2000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선수
     1983 ~ 1995 국가대표 선수

수상 1988   농구대잔치 리바운드상, 베스트5상
     1991   농구대잔치 리바운드상
     1993   92~93시즌 농구대잔치 베스트5상
     1997   프로농구 우수후보상
     1997   농구대잔치 리바운드상
     1997   훼르자 농구대상 식스맨상
     1996   001배 농구대잔치 남자부 MVP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