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추위가 몰아치는 한겨울에 서태우의 여름 별장은 초라했다. 중국 최대 규모의 황실정원이자 여름 궁전인 이화원은 궁전이라 하기보다 차라리 하나의 도시 같았다. 입구부터 곤명호까지 걷는 동안 길고, 거대한 이화원의 풍경은 인공적으로 장엄해서인지 적막하다.


이화원의 모든 건물은 긴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함부로 땅을 밟고, 비를 맞지 않는다는 황실의 권위를 드러낸 것인지, 복도를 걷는 길은 조심스러웠다. 긴 복도를 타고 곤명호를 둘러보면, ‘인공적으로 만든 호수가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끝이 없다. 이화원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곤명호 뒤쪽으로는 높이 60m 가량의 만수산이 보이는데, 이것은 이 거대한 인공호수를 만들 때 파낸 흙으로 쌓아 만든 인공산이라고 한다.


이화원은 중국 근현대사의 아픔과 함께한 공간이다. 금나라때 처음 건설된 이곳을 별장으로 본격적으로 건설되게 된 것은 청나라 건륭제 때 인데, 당시까지는 아직 이 원림은 청의원으로 불리었다. 이것이 아편전쟁 때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의 공격으로 파괴되었다가 서태후가 다시 재건하게 된다. 그 후 서태후는 해군 창설 예산까지 끌어들여 대규모의 황실 별장인 이화원을 짓지만, 1900년 의화단 사건 때 연합군에 의해 또다시 파괴된다. 현재의 이화원 내 건물들은 서태후가 서안으로 피신을 했다가 돌아온 직후인 1902년 재건된 것이다.


19세기 제국 시대 속에서 청조의 멸망을 앞당긴 인물로서 흔히 서태후가 거론된다. 이화원의 놀랄 만큼 거대한 인공호수에서 보여주듯, 서태후는 개인의 사치만을 추구함으로써 청조의 멸망을 가속화시켰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녀의 악녀 적 기질은, 많은 추측과 비화로 전해지지만, 이화원에 한번 다녀온 사람은 권력과, 사치에 또 한번 입을 다물지 못한다.


화려한 이화원을 뒤로 한 채 동궁문을 나오는데 군고구마 장수가 따라붙었다 “여러개 천원, 여러개 천원” 열 개 천원이라는 한국 발음을 잘못 외운 모양이다. 중국 고구마장수는 한국과 달리, 자전거에 따끈한 고구마를 싣고 사람들을 쫓아 다닌다. 최근에는 특히 한국 관광객이 급증하여, 이들은 기본적인 한국말 몇 가지를 외워 이렇게 호객행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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