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물고기 ‘쉬리’가 서편제를 완창하고도 기운이 남았다?! 다름 아닌 ‘서편제’(1993)와 ‘쉬리’(1999)의 얘기다. 전통 예술의 세계인 판소리를 민족 정서로 담아낸 임권택의 영화와 남북간 첩보액션을 상품 미학으로 포장한 강제규의 영화를 같이 놓는다면, 우선은 수치상의 문제를 떠올릴 것이다. 다름 아니라, 한국영화 최고 흥행기록인 ‘서편제’의 서울관객 1백3만명 동원수를 ‘쉬리’가 얼마나 빨리 얼마나 큰 차이로 깨는가는 큰 화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흥행기록을 줄다리기하는 문제는 이 두 편의 영화가 지니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담론 현상을 포괄하지 못한다. ‘서편제’와 ‘쉬리’는 90년대 한국영화의 산업적 재구성 과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민족 정체성의 허구적인 면모들을 노출하고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떠돌이 판소리꾼의 삶을 처연한 서편제의 가락에 담아 전달하고 있는 ‘서편제’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민족적 감수성의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90년대 초 놀라운 성공을 거둔 것을 한국영화부흥의 새로운 신호탄으로 해석하는 일은 어리석다. 오히려 ‘서편제’의 성공은 80년대 한국적 영화미학의 화려한 퇴장으로 바라보아야 타당하다. 이 영화의 성공에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80년대식 명제가 그대로 적용되었다. 1980년대, 프랑스의 예술영화나 미국의 오락영화 또는 홍콩의 무협액션영화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영화는 작가적 동학(動學) 외엔 좀처럼 자기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 때마다 ‘그래도 한국영화는 살아 있다’는 인정이 국제영화제에서 수상을 통해 세계무대의 인정을 받았다고 하는 영화들에서 보여졌고 이는 한국영화를 만드는 이들과 보는 이들의 강박관념과 같은 것으로 이어져왔다.

그러나, 소위 ‘한국적’이란 것이 무엇일까. 세계에서도 몇 안 되는 단일민족, 단일문화의 나라 한국에서 ‘한국적’ 미학추구의 의지가 그 어느 나라보다 강한 것은 약간 아이러니한 일이다. 물론 여기에는 근대화 과정에서 언제나 부정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던 전통 문화와 현대적인 차원에서 화해하길 바라는 욕망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나, 80년대와 90년대초 ‘한국적’ 미학의 문제가 90년대 말에 이르러 경제적인 차원으로 자리이동하면서 이러한 근대와 전통 절합의 욕망도 과거의 뒤안길로 되돌아가야 했다. 이는 ‘서편제’와 ‘쉬리’의 함수관계에서 보다 명확해진다.

강제규 감독의 ‘쉬리’는 98년 ‘퇴마록’에 뒤이어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기치를 내세웠다. 그리고 성공하였다. 과거의 ‘한국적’이라는 수식어가 경제 대난의 소용돌이에서 ‘한국형’이라는 모양새로 새롭게 자신을 가다듬은 것이다. 이 영화는 ‘유사할리우드영화 전략(동아, 3/4)’이라는 강한섭의 표현대로 총제작비 31억원에 탄탄한 제작기획과 스펙타클한 장르 공법으로 할리우드 영화문법에 익숙한 한국 관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쉬리’라는 토종 물고기가 ‘양들의 침묵’‘히트’‘더 록’ 등을 간간이 뒤섞어 놓은 강물 속에서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는 셈이다.

‘쉬리’가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의 논쟁점이 텍스트 내외의 구분이 깨어지는 지점에서 교전한다는 점이다. ‘쉬리 신드롬‘을 살펴볼 때 한국영화계의 새로운 활력이라는 평가가 긍정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한편으론 북한에 대한 이데올로기의 문제 등 우려와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세간의 논의와는 다르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할리우드식 베끼기’와 ‘반공이데올로기’에 대한 이분법적 찬반의 논란이 결코 ‘쉬리’ 내부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쉬리’는 민족 정체성에 대한 텍스트 내적 발화를 관객에게 투사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정체성의 허구를 둘러싸고 있는 문제들을 전략적으로 대중 담론화하고 있다. 영화는 텍스트 밖에 존재하는 각기 다른 산업적, 이데올로기적, 문화적 정체성에 상업적으로 말을 걸었으며 이에 대중들의 목소리가 각기 다른 위치에서 대답한 것이다.

‘서편제’와 ‘쉬리’는 흥행성적만이 아니라 대중들의 시대적 욕망들이라는 차원에서, 결코 같이 볼 수 없음에도 같이 말할 수 있는, 한국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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