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감독의 영화 <거울 속으로>는 범인을 알 수 없는 연쇄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공포의 스릴러이다.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 부부의 초상’이나 벨라스케즈의 ‘시녀들’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거울은 영화가 제시하는 범인을 추측하는데 용이하다. 


플랑드르 미술의 대가인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1395∼1441)가 1434년에 그린 ‘아르놀피 부부의 초상’은 이탈리아의 상인 조반니 아르놀피니와 체나미의 약혼식 장면이다. 그림에서 신랑이 신발을 벗은 것은 그 곳이 신성한 자리임을 알리고 있는 것이며 털이 많은 예쁜 강아지는 결혼에의 충성을 의미한다. 또 7개의 촛대 중 한 개만 불이 켜져 있는 것은 신이 창조한 7일 가운데 첫째 날의 빛을 의미한다. 얀 반 에이크는 성스러운 약혼식을 종교의식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배경에 보이는 거울 속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화가이다. 그는 이들 결혼식의 증인으로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게다가 그가 쓴 글 ‘여기에 내가 있었다’라는 문장은 마치 예수의 죽음 현장에 꼭 요한을 그려 넣어 증인으로 삼는 것과 동일하다. 


작품에서 거울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또 다른 그림은 스페인 바로크의 대가인 벨라스케즈의 <시녀들>이다. <시녀들>에서는 3개의 서로 다른 시각이 존재한다. 먼저 화가는 회화의 전면에 공주와 함께 놀고 있는 시녀들을 부각시키고 있다. 두 번째 장면은 현재 그림을 그리고 있는 주체로서 화가의 모습이다. 세 번째 장면은 그가 진정 그리고 있는 대상은 배경의 거울을 통해서만 확인 할 수 있다. 즉 화가는 자신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국왕 부처를 배경의 거울에 그려주어 미술을 감상하는 관람자로 하여금 제3의 시각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미술에서 거울의 의미는 ‘존재하나 보이지 않는 대상의 재현’을 의미하며 따라서 제3의 시선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 그림에서는 그리는 주체와 그려지는 대상 그리고 재현하는 것과 재현되는 것의 관계가 거울이라는 매체를 통해 복합적인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그 이전까지의 그림이 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대상을 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그러나 벨라스케즈는 그림에 거울을 도입함으로써 평면의 화면에 단일시점의 원근법으로 재현하는 것을 거부했다. 화면의 내용을 복층적인 암시로 그렸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사상가 푸코는 자신의 저서 좬말과 글좭의 서문에서 이 작품에 등장하는 거울기법을 ‘주체의 상실’이라는 철학으로 풀었으며 그로 인해 이 그림은 인기를 더했다. 국왕부처는 미술가가 그리고자 하는 실존의 인물이었으나 그림의 배경에 있는 거울에 하나의 허상으로 존재한다. 감상자로서 우리가 이 작품에 관해 논의할 때 우리는 누구를 주체로 인식해야 하는가?


이 두 그림을 통해 영화는 관람자들로 하여금 그 사건의 현장에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누군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도록 암시하고 있다. 또한 영화 하나를 보면서도 그냥 스토리와 시각적인 감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의 의도를 파악해야 하는 오늘날의 관람자는 보는 영화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상호주체성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김향숙·예술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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