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이맘때 프랑스 전역은 고용의 유연성을 내걸고 추진된 비정규직 법안을 철회하라는 수많은 대학생과 노동자, 시민들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이를 보고 시위 문화의 전설이 된 68혁명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2006년 초 드빙뺑 프랑스 수상은 우리나라 못지않은 심각한 청년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최초고용계약제(Contrat Premiere Embauche 이하 CPE)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CPE제도는 26세 미만의 청년 신입사원을 채용할 시 연수기간을 2년으로 연장할 수 있고, 이 기간동안 고용주에게 특별한 이유 없이도 직원을 해고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에 대해 직접 법안의 적용 대상인 대학생을 비롯하여 고등학생과 시민 수십만명이 거리로 쏟아져나왔고 전체의 과반수가 넘는 대학과 고등학교가 폐쇄됐다. 수십만명을 동원한 시위가 10주가 넘게 이어지자 프랑스 정부는 결국 법안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도 과거 사회 개혁을 요구하는 저항의 선봉에는 항상 대학생이 있었다. 1960년 4·19혁명은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집권야욕과 부정선거에 항거한 대학생과 지식인 중심의 반부정 반정부 항쟁이었다. 1980년 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의 무참한 학살이 자행됐던 광주민주화운동을 은폐하려한 정권에 항거에 그 참혹함을 알리고 끈질기게 저항한 것도 대학생이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의 피와 목숨 바친 그들의 끈질긴 노력과 투쟁은 87년 6월 항쟁으로 빛을 발했다.

찬란했던 6월 항쟁을 전후로 태어난 세대가 이제 대학생이 되었다. 세상이 바뀌어 대학생들이 사회의 문제의식이 부재하고 개인주의화가 심화되었다는 것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게 흘러나왔다.

그러나 최근 한국에도 눈에 띄는 대학생들의 움직임이 있었다. 지난달 28일 등록금 문제 해결을 위해 전국에서 수많은 대학생들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인 것이다. 이날 현장에선 과거 학생운동 당시의 과격하고 폭력적인 시위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학생 특유의 재치와 발랄함을 담아 그들만의 목소리를 냈던 이번 시위는 흡사 축제를 연상케했다.

물론 프랑스 비정규직법안 반대시위와 같이 대학생들의 요구가 취업과 같은 ‘현실적’ 측면이라는 점에서 과거의 학생운동과는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대학생의 작은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행동한다면 지금과는 다르게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것을 증명해내기 위해 우리, 대학생의 행동이 필요할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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