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헤라클레스와 히드라의 이야기를 알고있을 것이다. 헤라클레스의 12가지 시련의 하나로 히드라를 돌로 눌러 퇴치했다고 전해진다. 이에 헤라클레스는 정의와 질서, 선의 상징이며, 히드라는 불의, 무질서, 위기를 상징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역사적 권력자들의 필요이자 이데올로기일 뿐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머리 9개 달린 히드라는 다양성을 상징할 뿐 아니라 자유와 해방, 평등을 의미한다”고 말하는 도서출판 ‘갈무리’의 사람들이다.


도서출판 갈무리는 1994년 3월 문을 열어 올해로 13년을 맞이했다. 자본과 권력, 제도화된 운동조직으로부터 독립적인 태도를 견지하겠다는 뜻에서 독립 출판을 지향하고 있다. 독립 출판의 내용은 ‘삶’출판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데, 오정민 편집장은 “활력, 다중, 활력적 네트워크라는 근본적 개념을 다양한 양상으로 출판한다”며 이윤추구보다는 새로운 주체성 형성을 탐구하고자 출판 사업이 아닌 출판 활동으로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는 4월 출간 예정인 『히드라-제국과 자중의 역사적 기원』은 갈무리가 추구하는 바를 가장 잘 드러내 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8년 전 해외에서 출간된『히드라』는 17세기부터 18세기 후반 및 19세기 초까지 자본주의 형성기에 대서양권의 혁명적 변화에 몸을 실었던 선원, 노예, 평민들의 알려지지 않은 투쟁과 아래로부터의 역사 형성을 역사적 유물론의 입장에서 살펴본 책이다.


재정적으로 힘든 인문서적의 발간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정현수씨는 “갈무리는 책을 재생산할 정도로는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독자층이 얇아지고 실용서나 전문서의 비중이 커져 인문서의 비중이 낮아지고 있다”며 출판은 돈벌이가 기준이 아니며 자본이라는 시스템에 묶인다면 삶의 새로운 가치, 지적인 욕구의 충족이 힘들다고 말했다.


갈무리는 출판활동 이외에도 다중지성의 정원, 자율평론, 다중네트워크센터 등과 네트워크를 맺고 있다. 다중지성의 정원에서는 철학, 정치, 역사, 문화예술을 포함한 일반 강좌와 소통을 위한 언어 강좌 등 다양한 강좌를 개설해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히드라』가 출간되기 전 지난 해 10월부터 ‘여러 머리 히드라:혁명적 대서양권의 숨겨진 역사’라는 주제로 강좌를 개설하기도 했다. 자율평론은 1년에 4번 페미니즘이나 맑스코뮤날레 등 다양한 주제로 웹진을 출간하고 있다.


‘갈무리’란 ‘가을에 거든 양식을 잘 거두어 두는 일’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갈무리는 그 이름에 맞게 20세기 인류의 사유와 실천의 성과들을 잘 거두면서 그것을 새로운 상황에 맞게 펼쳐나가는 것이 갈무리의 역할이라 말한다. 책 한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도서출판 갈무리는 새로운 대안적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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