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의 <파란 대문>은 인간의 본능적인 성(性)에 관한 이야기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 따라서 스토리는 자연스럽게 성을 파는 창부와 순수하다고 자부하는 여대생을 등장시켜 과연 무엇이 진실인가를 묻고 있다. 그러한 영화의 한 장면에 등장하는 ‘흑발의 소녀’는 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 작가 에곤 쉴레(Egon Schiele, 1890-1918)의 그림으로 영화의 스토리와 의미심장한 연계성을 찾아낼 수 있다. 


에곤 쉴레는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표현주의 작가 중의 하나이다. 낭만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표현주의는 제도권을 부정하며 이성주의와 합리주의에 반대하는 니체의 디오니소스적 충동을 추구한다. 따라서 표현주의는 현실을 이상화시키기보다는 그와 반대로 추한 현실을 들추어냄으로써 현실과 정면으로 대응하는 미술적 표현이다. 쉴레의 표현주의 작품들은 세기말적인 증세로서 니힐리즘을 표현하고 있으며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간의 부조리와 비합리성을 고발하고 있다. 실레의 작품에 나타나는 비정형과 데포르마시옹, 육체의 비틀림등은 파괴를 통한 현대의 징후를 나타낸 것으로 자학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S. Frued)는 인간의 본능을 크게 ‘삶의 본능’ 과 ‘죽음의 본능’으로 나누고 있다. ‘삶의 본능’은 타인과의 하모니를 요구하는 자기보존 본능이며, ‘죽음의 본능’은 원래의 무기물로 돌아가려는 육체의 성향으로서 남을 혹은 자기를 파괴하려고 하는 경향으로 정의했다. 사람이 억압을 받으면 대체적으로 가학이나 혹은 자학행위가 나타나며, 극단적으로는 죽음의 충동에 처하게 된다. 쉴레의 작품에 등장하는 뼈만 남은 비틀린 인물들은 지독히 자학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에곤 쉴레의 작품가운데 ‘흑발의 소녀’는 영화에서 던지는 질문만큼이나 과격한 성적인 문제를 지니고 있는 문제작이다. 당시 아방가르드 작가들은 직업모델보다는 자연스러운 일반적인 여성을 모델로 사용하였는데, 직업모델의 익숙한 포즈가 전형적인 틀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들은 자신의 여자 친구들을 주로 모델로 삼았으며 심지어 집을 나온 어린소녀들을 데리고 혼숙하기도 하였다. 쉴레의 ‘흑발의 소녀’는 바로 그러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데 어린 미성년의 소녀들을 모델로 포르노에 가까운 포즈로 그렸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실레는 재판에 회부되었으며 20여일을 살다가 결국 무혐의로 풀려나긴 하였지만 그 사건은 그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처가 되었다.


미술사에서는 고갱이 원시미술을 시도하면서 14세의 원주민과 결혼을 하여 물의를 일으켰으며, 뭉크의 ‘사춘기’ 역시 미술관에서 거부당한 문제작이었고, 독일의 표현주의 그룹이었던 ‘다리파’ 미술가들도 나체로 혼숙하여 풍기 문란죄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과연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미성년자의 누드가 가능한 것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이다. 


쉴레는 전쟁중에 전염병으로 알려진 독감에 걸려 28살이라는 나이에 일찍이 생을 마감하였으나 그의 작품은 늘 인간의 실존과 인간의 조건이 문제가 된다. 

 


김향숙·예술대학권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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