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트라팔가 광장에는 1805년 트라팔가 해전의 승리를 기념하는 넬슨 제독의 동상과 석조 사자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 석조 사자상은 프랑스-에스파냐 연합 함대를 무찌른 영국군의 용맹함과 영국인의 자부심을 상징한다.


그러나 1967년, 영국인의 자존심이 동양의 한 여성으로 인해 금이 간다. 동양의 한 여성 예술가는 세상에서 가장 야만적이고 어리석은 전쟁을 벌이고,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까지 하는 석조사자상을 두고 볼 수 없어 그것을 하얀 천으로 가려버린 것이다.


오노 요코. 반전운동가이자 여성운동가이고 행위예술가이기도 한 그녀는 영국인의 자존심에 ‘일침’을 가한 덕분에 ‘마녀, 미친 여자, 전 세계인이 가장 혐오하는 여자…’라고 비난 받아야 했다. 그 후로도 세상에서 가장 유명했던 ‘존 레논’을 남편으로 두고, 비틀즈를 해체시킨 장본인이라는 이유로 지금까지 ‘마녀’라는 누명을 써야 했지만….


오노 요코는 페미니스트이기도 하다. 그녀는 ‘여성은 세상의 검둥이’라는 말을 했는데 이를 존 레논이 노래로 만들기도 했다. 이 노래는 대중가요사상 처음으로 여성운동을 위한 음악이었다. 60년대 음악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사람이 존 레논이었다면, 그런 존 레논을 변화시킨 것은 여성인권 신장과 관련한 오노 요코의 신념이었다. 이들은 실생활에서도 남녀가 평등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역할을 바꿔 생활하기도 했다. 오노 요코가 돈을 벌어오고 존 레논이 집에서 주부역할을 하는 이벤트를 한 것이다.


세상은 반전운동가이자 여성운동가였던 오노 요코를 그녀의 이름대신 ‘존 레논의 부인’으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요코 오노는 남편의 거대한 그늘에 가려서도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과 예술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나이 고희를 넘긴 오늘날에도 그녀의 작품이 다시금 재조명 받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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