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층계

낡은 이탈리아 목제 피아노 건반
구두굽이 한층한층 키를 올릴 때마다
나무 건반은 끼익끼익, 우는 소리를 냈다
끼익끼익, 목 쉰 소리를 내뱉는 건반 위를
아버지는 가장 낮은 단조부터 천천히 걸어오르신다
조악한 소리를 내는 건반을 밟을 때마다
나를 업어 선명한 음계 위에 내려놓고
그는 점점 목 쉰소리 건반만 짚게 되었다
한층씩 오를수록 나무 건반 위는
점점 가파른 곡선을 타고 좁아져
그는 건반을 한발로 디뎌 올라갔다
마지막, 가장 높은 음까지 나를 밀어올리곤
그는 결국, 발 디딜 곳 없어
아래로 아래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는 평생 오르지 못했던
가장 높고 아름다운 음계 위에 나를 올리고
그는 알 수 없는 무거운 음계 속으로 떨어졌다

 

 

 

 

 

빛의 걸음걸이

붉은 석류알 틈 사이 사이
쏟아져 내리는 하얀 햇살을
축 늘어난 고무가죽 같은 노인의 손이
동그랗게 말아 감싸쥔다
흙투성이 노인의 발 주위에는
끈적이는 오후의 열기를 머금은
파리떼들이 원을 그리며 돌고 있다
터질 듯 가득 들어찬 석류 알갱이처럼
생기로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던 그의 젊음은
노인의 동그랗게 만 손가락 사이 사이로
이제, 서서히 새어 나간다
가쁘게 숨을 내쉬던 오후의 태양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노인의 간간히 움찔거리던
손가락 끝 발가락 끝 신경 세포 하나하나는
석류 알갱이가 빛을 토해내고 터져가듯
편린처럼 부서져 간다
차갑게 식은 아스팔트 위로 맞닿은
노인의 손바닥, 그 위를
까만 어둠이 덮어 내린다

 

중앙대학교 국문학과 2  공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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