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인이 고백했다. ‘나는 삼성과 공범이었다.’ 시사 주간지 <시사IN>의 제 7호 커버스토리 제목이다. 양심선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수서’를 쓰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한때 앞장서서 삼성의 발이 되었던 후회 섞인 고백과 거대 권력 자본 앞에 당당히 선 용기에서 나는 우리 사회의 희망을 보았다.

  지난달 29일 삼성 구조조정본부에서 법무팀장을 지냈던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측 불법 비자금 조성에 대한 내부고발을 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임직원 이름으로 차명계좌를 개설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정·관·학·언론계에 비자금을 뿌려 관리했다는 김 변호사의 표명은 공공연하게 통용됐던 ‘삼성 공화국’을 여실히 드러내 보이는 사건이었다. 뿐만 아니라 로비를 받은 검사명단과 이건희 회장의 지시에 따른 고위층 관리 등 그동안 예상으로만 짐작했던 삼성 뒷거래의 실체가 속속들이 밝혀질 것임이 예상된다.

  자본권력의 실체가 드러난 이번 사건이 주는 의미는 크다. 한국 사회에서, 적어도 권위주의 사회 이후 우리 사회를 거머쥐고 있는 것은 자본(=삼성)이라는 거대 기업이었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권위주의 국가에 대한 실체를 깨닫고 민주화의 열망이 전국을 뒤덮었듯, 김변호사의 양심적 고백은 자본권력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각성을 불러일으킬 충분한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주류언론(흔히 말하는 보수언론집단 조, 중, 동)은 암묵적 합의에 의한 침묵을 통해 여론이 확산되는 것을 저지하고 있다. 김용철 변호사가 기자회견을 가진 바로 다음날, 주류언론은 기자회견 내용에 관한 보도를 극히 줄였다. 기사를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배치하였고, 그 내용도 단순히 ‘논란’으로 치부해 간단히 언급했다. 이런 언론의 침묵에 대해 한 네티즌은 ‘오늘은 언론 암흑의 날’이란 표현을 쓰기도 했다. 한겨레신문만이 유일하게 이 사건을 1면 탑 기사와 관련기사를 몇 면에 걸쳐 크게 다루었다.

  한국 주류언론은 더 이상 사회정의를 구현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정의집단이 아니다. 개인의 양심적 발언에도 뜨끔해 하지 않을 만큼, 자본 권력에 철저히 동조하는 이익집단이 돼가고 있다. 지금 침묵을 지키는 언론은 신정아 사건때 국민의 알권리를 주장하며 개인의 사생활 공개조차 서슴없었던 바로 그 언론이다. 기사 송고실 통폐합 조치에 대하여 언론탄압이라며 자유 수호를 외쳤던 언론인들이다.

  한국기자협회는 기자들에게 ‘삼성 비자금 사건 제대로 보도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번 사건을 크게 보도 하는 것이 바닥으로 치닫고 있는 한국 저널리즘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길이라는 기자협회보의 입장은 한국 저널리즘의 최후 양심에 호소하는 목소리다. 이제 언론이 용기 낼 차례이다.

  삼성의 횡포는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우리 사회 어느 곳에라도 삼성 권력이 닿지 않은 곳은 없다. 언론의 최고 광고주 역시 삼성이다. 그렇다면 삼성 내에서 이건희 회장을 신격화 하듯, 우리 사회에 절대적 ‘신’인 삼성을 비판 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집단은 오직 언론밖에 없다.

  주류언론은 최소한의 용기를 내기 바란다. 양심있는 한 개인의 용기 있는 고백을 보고 깨닫길 바란다. 진실을 향한 행보에 몸을 실을 의지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삼성숭배에 대한 솔직한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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