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예술대 서양화학과 교수

전쟁화는 그것을 의뢰한 집단의 권력유지와 긴밀한 연계를 가지고 있었다. 가령 중세시대에는 이교도들을 제거하고 신의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고, 계몽주의시대의 전쟁화는 말 그대로 식민지에 계몽의 빛을 비추기 위한 국가의 이념을 담아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술이 특정 종교나 집단의 구속(지원)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근대주의에 들어서면서 전쟁화는 이전과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역사적 사실을 넘어 인간의 잔혹성과 폭력에 대한 고발의 성격을 띠게 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록으로써의 전쟁화 차원을 넘어선 작품으로 언급되고 있는 대표적인 예이다. 스페인 태생의 화가였던 피카소는 극동의 나라 한국을 방문한 적도 없고 한국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바도 없었다. 다만 이 그림을 그릴 당시 그는 프랑스 공산당원으로서 ‘세계평화운동’ 등의 정치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이 그림에 대한 국내외 비평가들의 시각은 엇갈린다. 한편에서는 작품에 등장하는 무장된 폭력집단이 미군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전쟁의 난폭성과 잔인함을 나타낸 작품이며 비약된 정치적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피카소 자신은 “미군이나 어떤 다른 나라 군대의 헬멧이나 유니폼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언급했고 “나는 모든 인류의 편에 서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분명한 것은 <한국에서의 학살>이 특정 집단과 권력이 내세운 명분아래 인간이 동류의 인간을 잔인하게 파괴하는 광적 행위를 드러내기 위해 그린 것이라는 점이다. 피카소는 이미 1937년에 파시스트의 잔혹상을 고발한 <게르니카>를 통해 현대 전쟁화의 전형을 세웠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학살>이 전쟁 중에 나타나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이라는 페미니즘적 주장은 미술작품 해석의 다의성을 실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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