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주의(intuitionism)는 직관(直觀)이 추상적 이성(理性)보다 더 기본적인 인식 방법임을 강조하는 학설이다. 이러한 학설 혹은 사조는 항상 반이성주의, 반실증주의적 경향을 띈다.
 프랑스 철학자 베르그송(1859~1941)은 이전까지 내려오던 사변적 철학이나 과학적 실증주의 철학에 종지부를 찍고, 정신적 체험의 질서 위에서 철학적 심리학과 자연과학, 형이상학을 수립하고자 하였다. 베르그송은 철학의 탐구 대상인 실재가 지적 개념에 의하여 인식되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고 보았다. 실재의 본질은 언제나 역동적이고, 생동적이며, 연속적인 존재, 즉 ‘지속’ 혹은 ‘순수 생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직관’만이 이 실재의 생생한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베르그송은 진화 과정 전체를 지속적으로 발전하면서 새로운 형태를 발생시키는 ‘생명의 약동’(Elan vital)이라고 보았다. 그가 고대철학들을 비판하는 것도 ‘지속’ 혹은 ‘생성’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직관’과 ‘분석’이라는 두 가지 다른 형태의 인식방법을 제시한다. 직관은 사물의 내부에 깊이 들어갈 수 있지만 분석은 단지 사물의 외부에 머문다는 것이다. 전자가 얻은 인식은 절대적이지만, 후자가 얻은 인식은 상대적이다. 오직 ‘직관’만이 끊임없이 흐르는 세계의 본질인 ‘지속’을 파악해낼 수 있다. 반면 분석은 본질적인 지속을 방해하며, 삶과 운동을 정지, 즉 활동하고 있는 실재를 정지의 사태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베르그송의 철학은 이 우주의 모든 것, 그리고 인간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성’ 그 자체임을 밝히기 위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왕양명(1472~1529)의 철학을 직관주의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치양지(致良知)’와 ‘지행합일(知行合一)’설에 근거 한다. 왕양명은 ‘심즉리(心卽理)’(내 마음이 곧 이치)를 주장하며, 마음의 본체를 양지(良知)라고 보았다. 양지란 ‘배우지 않아도 알고, 일삼지 않아도 할 수 있다’는 맹자의 ‘양지양능(良知良能)’설에서 비롯된 것으로, 타고난 도덕적 자각능력을 가리킨다. 이때 자각이라는 것은 이지적 탐구의 결과가 아니라 바로 ‘직관’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그는 마음과 이치가 하나로 합일된 경지로서, 인간이 타고난 도덕적 자각을 완성한 상태인 ‘치양지(致良知)’설을 주장한다.

왕양명 철학의 특성은 그가 주자의 격물치지(格物致知)설을 비판하는 데서 잘 나타난다. 주자는 격물(格物)을 일(事)과 사물(物)에 담긴 이치(理)를 탐구하는 것, 다시 말해 객관 사물로부터 그 이치를 탐구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왕양명은 이에 대해 “격물치지는 내 마음의 양지를 모든 사물에 다하는 것이다. 내 마음의 양지란 하늘의 이치이다. 내 마음의 양지, 즉 하늘의 이치를 모든 사물에 다하면 모든 사물의 이치를 얻게 된다”고 말한다. 즉 양지의 체득은 이지적 탐구의 결과라기보다는 스스로 자각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덕실천에 있어서도 주자가 주장하는 먼저 알고 나중에 행한다는 ‘선지후행(先知後行)’을 반대하고, 앎이란 실천의 시작이며 실천이란 앎의 완성이라고 하는 ‘지행합일(知行合一)’설을 주장한다. 근현대 중국철학자들이 서양철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 베르그송을 주목한 이유도 그의 ‘생명’철학이 왕양명의 철학과 그 이론적 구조가 흡사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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