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신년을 맞아 소설가 이정춘 선생 댁에 들렸을 때였다. 선생께서 고향에서 이사 온 꽃이라며 앙증맞은 아기 할미꽃을 보여주셨다. 그 아기 할미꽃은 한 달쯤 지나 다시 들렸을 땐 튼실하게 자라 멋진 처녀의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갈리진 잎 사이로 꽃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고 선생께선 기특해하셨다. 할미꽃은 이름만 할미꽃이지 할머니가 아니라 아리따운 처녀였다. 터질듯 위로 향한 앞에선 이때까지 내 관념 속의 슬픈 이미지의 그런 꽃이 아니었다. 오히려 싱싱하게 물이 오른 봄 처녀였다.
할미꽃은 다른 꽃들보다 한 발 먼저 피어나기에 봄을 부르는 꽃, 봄을 알리는 꽃으로 알려져 있다. 선생은 이를 두고 당신의 소설에서 <봄을 부르는 술래>라고 하였다. 이 날 보았던 할미꽃은 바로 당신이 말씀하셨던 봄을 부르는 술래 그 자체였으며 새 생명들로 넘치는 봄이 다시 도래했음을 축하하는 아름다운 폭죽이었다.
할미꽃만 그럴까? 아니다. 봄이 오면 모든 풀과 나무는 폭죽이 된다. 자연 다큐물에서 싹이 트고 꽃이 피는 것을 연속 촬영한 화면을 보면 이는 더욱 생생하다. 물이 오른 줄기는 일직선으로 솟구치는 폭죽이며, 꽃은 폭죽이 터져 생긴 아름다운 불꽃이다. 또한 시점을 달리하여 하늘에서 볼라치면 꽃과 잎들은 대지의 화폭에 그려진 화려한 불꽃들이다.
인간이 만든 폭죽에선 화약 냄새가 나지만 자연의 폭죽놀이에선 온갖 향기가 자욱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산에 들에 할미꽃을 신호로 봄의 폭죽놀이가 시작될 것이다.
새해에는 우리 중앙가족에게 자연의 싱그러운 폭죽 같은 신나는 일만 자꾸 생겨났으면 싶다.

김선두 교수 - 예술대 한국화학과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