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3년앞둔 지금, 탈현실의 징후가 심상치않게 나타나고 있다. 세기말
이면 으례 화두가 되곤하는 `과거에로의 회귀'가 요즘 더욱 두드러져 보이는
것만 해도 그렇다. 특히 한국사회의 세기말 혼돈과 일탈이 귀착하는 지점에
는 과거와 남성성 중심이 접목되는 `람세스'와 `로마인 이야기'가 있고, 무
엇보다 독재자로 사장되었다가 `인간의 길'에서 영웅으로 부활한 박정희가
있다.

지난 4월 박정희를 영웅화한 이인화씨의 소설 `인간의 길'(살림 펴냄)
이 전체 3부작 10권중 1,2권이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바 있다. `인간의
길'은 박정희 일가를 모델로 삼은 허동식, 허선영, 허정훈 3대를 중심으로
1871년부터 1951년에 이르기까지 80년동안의 한국근대사를 그린 장편소설이
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전쟁으로 피폐해진 한국근대를 전통적인 문명과 가
치들이 붕괴한 채 새로운 `인간의 길(人道)'이 모색되지 못한 윤리의 암흑기
로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유약한 민족의 운명 속에서 악마적 초인들이 자치
적 윤리를 수립하는 과정을 그린 영웅서사시적 성격을 띤다.

출판당시 어떠한 평도 대중적 관심을 부추기는 행위이므로 `무시가 최선'이
라는 입장을 고수했던 평단은, 근래에 들어 사회전반에 걸쳐 확산되고 있는
`박정희 신드롬'에 제동을 걸기 위한 듯 집중폭격을 가하고 있다. 이씨를 통
박한 대표적인 글로는 전북대 강준만 교수가 펴낸 `왜 박정희 유령이 떠도는
가'(인물과 사상 제2권)이다. 이 글에서 강교수는 "이인화씨는 자신을 열광
시키는 캐릭터창출을 위해 역사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으며, `경제발전'이
라는 목적이 `독재'라는 수단을 정당화하는 발상이야말로 악성 파시스트 논리
를 대변하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평론가 하정일씨는 `실천문학'에 기고한 `착각적 국가지상주의
자, 이인화'에서 "영웅주의의 활용과 사실의 윤색을 통해 한 인간을 신비화
함으로써 진실을 은폐 왜곡시켰다"라고 꼬집었으며, 황순재씨는 `보수로 위
장된 글쓰기의 책략성'(작가세계)으로, 한기씨는 `위험한 형이상학의 허구,
혹은 신화'(문예중앙)로 이씨의 소설을 날카로운 비평의 자리에 서게했다.

문단의 뜨거운 비판분위기를 인지했음인지 이씨도 `상상' 가을호에 `인간의
길에 나타난 근대성 문제'라는 반론을 실었다. 이씨는 박정희가 지도한 경제
발전이 민중을 희생시킨 것은 인정하면서도 "범죄처럼 보이는 행위들이 당대
의 구체적 총체성 속에서는 고도의 도덕성일 수 있다"라고 피력했다. 또한
"영웅주의는 영웅의 탄생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영웅을 알아주는 국민들
이 탄생하면서 시작되는 것"이라는 칼라일의글을 인용해 `인간의 길'의 당위
성을 강조했다.

평단과 작가의 지상논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9월말 제3권이 출간될 예정인
`인간의 길'이 선악을 넘어서는 새로운 미학의 지평을 열지, 작가자신의 그릇
된 역사관을 대중에게 전파시키는 매개가 될지 두고 볼 일이다.

<최보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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