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튀세르(L. Althusser)에 따르면 `새로운 과학의 건설'은 하나의 투쟁과
정즉 `철학에서의 계급투쟁'이며, 이러한 철학상의 계급투쟁을 수행하는 사람
은 곧 `전사(戰士, Partisan)'다. 2천년대를 열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외치
는 지식인 역시 `전사'의 범주에서 예외일 수 없다. 여기서 대다수 지식인이
소속된 `대학'이라는 공간은 논외의 대상으로 치부되기 곤란한데, 이는 철학
상의 계급투쟁, 즉 `이론적 실천'의 수행자가 바로 지식인이라는 사실 때문이
다.

1일 심포지움에서 `글과 뜻 사이, 삶과 앎 사이-글쓰기와 우리 학문의 미
래'라는 주제를 통해 김영민 교수는 식민화된 지식인들의 학문풍토와의 투쟁
을 선포한다.그에게 있어 새로운 패러다임이란 궁극적으로 식민화 경향에서
벗어난 주체적인 학문의 성격을 가지며, 이는 우리 학인(學人)들간의 참을성
과 연대성을 통해 이뤄지는 학문간의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고 표현하고 있
다.

김교수는 현재의 학문에서 상호간에 참을성과 연대성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
로 글쓰기의 독과점 현상을 든다. 그에 따르면 글쓰기의 독과점이란 기존의
학인들이 서구로부터 유입된 뜻중심주의의 권위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이에 대
항하는 학인들에 배타성을 띠는 경향이라 한다.

김영민 교수는 이러한 독과점 현상을 벗기 위해 우리의 글쓰기가 외부로부터
식민화된 `근대화의 배리(背理)' 즉 모순이라는 역사성을 인식하는 것부터가
우선적이어야 할 것이라고 역설한다. 역사성 인식을 기초로 한 참을성.연대성,
나아가 학문의 화이부동으로까지의 진전이 없는 한 인문학에 있어 새로운 패
러다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강내희 교수의 `인문학, 문화연구, 문화공학-지식생산의 변화와 대학의 변
화'에는 철학상의 투쟁적인 면모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산업 생산구조의 변
화와 지식 생산구조의 변화를 연계시켜 논리를 전개하는 양상이 호감을 끈다.

우선 강교수는 기존의 포드주의(Fordism)가 점점 그 실효를 잃은 채 유연
화(탈포드주의화)되어가고 있는 산업추세를 지적한다. 강교수의 논의 전개는
탈포드주의(post-Fordism)시대에 산업사회가 요청하는 지식인이란 어떤 상
을 가지는가라는 질문에 도달하는데, 이러한 현실에 비추어 볼 때 현재의 대
학 교과과정은 여전히 포드주의적인 분과(department)체제에나 적합한 지식
인을 생산하는 한계를 일탈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제기다.

그는 이에 대해 `절합적 학문'을 언급하면서 이는 종합적인 지식을 요구하
는 산업사회에 유연하게 대처할 방안이라 단언한다. 따라서 대학은 이러한 학
문하기 방식을 수용할 수 있는 교과과정 마련에 능동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강교수에 의하면 이때 절합학문은 문화공학이라는 모습을 갖추며 하위
문화(Subculture)에 대해 `활동가적 기획자'라는 지식인상(像)을 그리게
되는데, 이는 변혁이론의 아방가르드와 유사한 개념으로 이제 지식인은 앎과
삶이 괴리에서 벗어나 참여의 공간으로 접어들게 된다.

<김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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