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수는 서구문화에서 가장 인기를 끈 신체절단의 이미지 중 하나이다. 그래서인지 참수를 소재로 한 예술작품도 무척이나 많다. 가령 세례자 요한의 잘린 머리를 쟁반 위에 올려놓은 헤롯왕의 양녀 살로메,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잘린 머리를 들고 무표정하게 서 있는 유디트 등을 통해서 참수는 대대로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왔다.이런 참수의 이미지는 1936년 프랑스의 작가 조르주 바타이유와 그의 친구였던 화가 앙드레 마송에 의해 현대적으로 재탄생하게 됐다. 이른바 ‘아세팔’(Acphale)의 이미지로.

1936년 6월부터 1939년 6월까지 단 네 차례만 발행된 기이한 잡지 ?아세팔?은 머리 없는 사람이 왼손에는 단검을, 오른손에는 심장을 들고 서 있는 엽기적인 그림이 매호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없음’을 뜻하는 접두어 ‘아’(a-)와 ‘머리’를 뜻하는 라틴어 ‘세팔리쿠스’(cephalicus)가 합쳐진 잡지의 제호에 그야말로 딱 어울리는 이미지였다.바타이유가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마송이 그린 이 이미지는 도대체 무엇을 뜻하고 있는 걸까? 해답의 실마리는 바타이유가 작가이기 이전에 중세사 전문가였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중세의 알레고리에 따르면 인간의 육체 맨 위에 자리잡은 머리는 위계질서의 최상층을 뜻한다. 예컨대 사회의 머리는 왕, 우주의 머리는 신인 것이다. 따라서 머리가 없다는 것은 왕이나 신의 부재를 뜻한다. 그런데 자신의 왼손에 단검을 들고 있다는 것은 곧 스스로 자신의 머리를 잘랐다는 뜻이니, 이는 곧 왕이나 신을 없앤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아세팔'이 등장한 1936년은 히틀러와 무솔리니에 의해 유럽이 파시즘의 광기에 휩쓸려간 시기였다는 점은 참으로 시사적이다.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호칭인 퓌러(Fhrer)와 두체(Duce)는 우두머리, 즉 사회의 머리를 뜻한다. 요컨대 아세팔은 파시즘의 두 원흉을 처단하는 자인 것이다.
이 점은 “니체와 파시스트들”이라는 주제를 특집(제2호)으로 다룬 데에서도 잘 드러난다. '아세팔'은 이 특집에서 니체를 재해석해 니체의 철학과 극우 정치이데올로기의 연관성을 부인했던 것이다(잘 알려져 있다시피 히틀러는 니체를 우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아세팔에는 다른 뜻도 있다. 니체가 신을 죽인 이유는 신이라는 가상에 휩쓸리는 인간들을 각성시키기 위해서였듯이, 바타이유와 마송은 아세팔을 통해 파시즘에 동조했던 동시대인들을 각성시키려 했다. “어째서 당신은 그게 자신을 위한 거라도 되는 양 자신에 대한 억압인 파시즘을 스스로 욕망하는가?” 머리 없는 아세팔의 입은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바타이유는 이렇게 썼다. “죄를 지은 인간이 감옥에서 탈출하듯이, 인간은 자신의 머리에서 탈출해야 한다.” 당신의 머리가 당신의 감옥이 된다면, 그 감옥에 갇혀 당신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의 억압과 불의를 애써 외면한다면, 스스로 당신의 머리를 잘라버리라고. 정적이기 그지없는 아세팔의 이미지는 이렇듯 강렬한 주장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재원(도서출판 그린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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