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광장 그날의 증언을 듣는다

우리의 기대는 무너지는가?
(홍 관 옥)

四.一九 난 사일구라고 쓰겠다. 사라는 숫자와 일구 라는 숫자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들 사일구를 찬양했다 참 민주주의를 찾은 날이라고들 한다. 그렇다 사일구는 확실히 민주주의를 찾은 날이라 할 수 있다 젊은이들의 피흘린 손에 의해서 정의를 찾은 날인 것이다. 불의와 불법과 터무니없는 권세가 죽은 날이었으며 내 친구와 형제들이 죽은 날이었다. 저의에 굶주린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이 타올랐고 거치장스러운건 물들도 타는 날이었다. 정말 이지 정말 이지 감격했을까?

 모든 사람들은 초조한가운데 꿈을 꾸기 시작했으며 막연한 그러나 곧 이루어지리라는 희망들을 갖기 시작했다. 나는 더욱 그랬다. 경찰들의 수준을 높이는 것 젊은이들의 손에 정권을 맡기는 것 불량학생들을 수양시키는 것 거지들을 없애는 것 가난한 사람들을 살리는 것 헌법 제일조 이조 삼조를 실천에 옮기는 것 등등의 꿈은 날로 더욱 커갔으며 희망과 기대는 늘어가기 시작 했던 것이다.

나는 이렇게 부상당했다.

-핏자욱에 아롱지는 얼굴이 있었다.
(신 세 호)

어디선지 조금씩 빨리 총소리가 들려 오기시작하자 정문을 지키던 경찰들이 이쪽으로 집중사격을 가해왔다 앉을자리도 없었음으로 차체에 섰던 나는 아스팔트 위로 떨어져 버렸다. 죽음이 무엇인지도 의식하지 못했다. 그대로 지렁이처럼 보도 위에 늘어져서 남은 힘으로 몸을 조금씩 질질 끌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원각사 담벼락인가 싶다 그 벽을 끼고 나의 육체는 얼마간 움직임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생각은 완전히 마비상태로 도망치고 말았다. 벽의 시멘트 흙이 등에 투득거리며 떨어졌고 총소리는 정말 심하게 들렸다 머리를 돌려 뒤를 돌아보면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기어왔던 자리에는 나의 하체까지 붉은피가 흘러 나왔기 때문이다. 나는 남은 용기마저 잃어버렸다. 목숨이 내 머리가 쳐박힌 모서리에서 어른거렸나. 아무것도 무서운 것이 없으면서 나는 그곳을 탈피하여야만 한다는 마음과 형님의 모습이 뇌리를 뜨겁게 스쳐가고 있었다.


내 땅에 육성할 영광은 멀었는가!
-그날 대 다리는 눈먼 총알에 서러웠고
(은 천 기)

오늘이 있기에 슬프다. 이제 새삼스럽게 나는 그때의 참혹을 상기하고 싶지는 않으나 오늘에 이것을 이야기할 수 있고 또 새로운 신념을 갖는 뜻에서 그 어찌 말하지 않을 수 있으랴. 총개머리에 맞아 덜렁덜렁한 힘없는 어깨를 마치 그들이 서부활극의 쌍권총명수인양 「나의투쟁」에서 보는 유대인들을 고문실로 감은 가스실로 끌고가던 나치스당원처럼 생철권총 칼빈개머리판 살찐 궁둥이에 찬 경찰봉 쓱싹주머니의 포승줄 반짝반짝 빛나는 구두발을 그 어찌 골체에 사무친 추억이 아닐는가?

그것도 교대로 생포부대처럼 쓰러져 가는 목덜미를 겨누며 암흑의 고문실로 끌려가던 밤 생각 하기에는 너무나 눈물겹고 몸서리친다 「이 새끼 어느 학교 다녀」「중앙대학교 입니다.」 「아 중앙대학교! 잘됐어. 아주 열열한 새끼들이야. 네놈의 새끼가 앞장서서 모씨 집에 불질렀지!」탁! 탁! 「아닙니다. 평화적 데모를 했읍니다.」처음 에는 이 무시무시하고 징그러운 말투에 침을 내뱉을 생각이 들었으나 어떻게 두들겨 맞았던지 이제는 어디를 때리는지 조차도 몰랐다.

악에 바친 목소리로 「당신은 동생도 자식도 없읍니까?」 「아! 이자식 봐라 입은 살아있구나」 「아닙니다. 치지 말고 법대로 처리 하시요」 「응- 정치과 벌써부터 뭐 법대로」 「이 정치연습이냐? 정치협상인중 아니」....생각하면 이젠 이토록 무자비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그들이 오히려 불쌍하고 동정이 갈 갈뿐이다.

서글픈 마음만 남았다.

 -백포의 병실은 잊을 수가 없다
(임 혜 란)

수없이 들끓는 사람들의 파문. 나의 고막에 지금도 가시지 않고 들려오는 요란한 총성, 피 묻은 옷들, 늘어진 시체들, 최루탄과 총탄 속에 납작하게 업드려 기는 모습들, 환호성과 더불어 눈물을 흘리며 두 주먹을 불끈 쥐던 군중들, 그 중에서도 특히 온 몸이 가지 색으로 변해 죽어버린 S언니의 모습은 지금도 내 눈 앞에 하이얀 「까운」으로 온 몸뚱아리를 덮히 운채 반듯이 누워 있다.

이날 모든 학생들은 「초명의 생자, 젋은 사자」들이란 일컬음을 받았고 전 세계 방방곡곡에 한국 학생의 초명은 붉은 깃발을 울리었던 것이다. 허나 그 순간도 이미 지나갔다. 그리고 일년 이란 세월이 흐른 오늘날까지 우리는 어떠한 결과를 보았으며 이 나라를 짊어지고 나가야할 다시 말하면 초명의 생자가 되었으면 학생들의 정신 상태는 어떠한가. 또한 혁명 후 우리들의 마음과 마음에 새로이 피어나야할 새싹은 과연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는 이것을 생각할 때 서글픈 심정을 억제할 수가 없다

이상은 4.19 학생 혁명 1주년을 기념해 1961년4월20일자로 중대신문 제 178호에 싫린 간담회를 발췌한 내용이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