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현재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의 대학 이야기도 아니다. 이 이야기는 19세기 프랑스의 대학 이야기이다. 대학(라틴어의 universitas)은 원래 교수와 학생들의 모임이란 뜻이다. 11세기 말에 생기기 시작한 대학은 1000년이 넘는 역사 동안 말 뜻 그대로 교수와 학생들이 합의하면서 운영하는 자율적 공동체의 모습을 유지하여 왔다. 대학의 지
학생들을 상담하면서 가장 빈번하게 받는 질문은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좋을까요?”이다. 아마도 졸업 후의 직업을 선택하는 일은 인생에서 결혼과 함께 가장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선택이 아닌가 한다.모든 학생들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두려움 속에서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나중에 후회가 없는 올바른 선택이 될지 상당히 고민한다. 또한 많은 학생들은 가장 안전한 선
대학에서 나의 전공은 순수물리학이었다. 석사에서는 응용물리학을 전공하였고 기업체 연구소에서 전자공학분야의 연구를 접하고서 박사학위는 최종적으로 전자공학으로 받았다. 박사학위 후 과정에서는 우연찮게도 화학/화학공학과에서 연구를 하였으며 2003년부터 10년에 걸친 반도체공학관련 학과의 교수 생활을 거쳐 지금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 시점에서 잠시
대학의 존재 이유 혹은 기능은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취업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을 제대로 취업시키지 못하는 대학은 그만큼 존재할 이유가 줄어든다. 하지만 어떤 취업이냐가 문제다. 대학의 참된 역할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떤 대학은 대학 평가도 높고 취업률도 높지만 반드시 이 둘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 취업률의
화쟁和諍, 언어로 인한 당사자 논쟁을 조화롭게 이끌어 낸다는 뜻이다. 원효대사가 1천 5백년전 도래한 불교의 다양한 쟁점을 부각시키고 이를 화해로운 마무리로 도출해 가는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때로는 원효 자신이 당나라로 유학을 가 배우고자 했던 현장법사의 법상종 논리를 격파하면서까지, 쟁점을 부각시켜 결론을 이끌어 내는 과정을 알아가면서 말이다. 과연 원
중앙대에서 해부학강의를 시작한지는 35여 년이 지났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 생각하면 참으로 부끄러운 강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사람맨눈해부학’은 우리 몸의 부분 강의 보다는 우리 몸의 전체적이고 일반적 구조 및 이해를 요구하는 강의라 제한된 강의 시간에 맞추기도 상당히 어려웠다. 또한 우리 몸의 실제구조는 열두계통이 서로 섞인 입체구조학이고,
새 학기가 다시 시작되고 있다. 첫 주에는 뭘 하지? 나머지 15개 주와는 다른 일들은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출석부를 보고, 어떤 학생들이 내 강의를 신청했는지를 살펴본다. 학생의 수, 전공 및 학년의 다양성 등을 한 번 검토하고, 첫 강의에서 얘기해 줄 내용들을 정리해 본다. 첫 주의 강의는 대체로 오리엔테이션이라는 명목으로 구성하는데, 이 강의
정몽주가 죽어 역사에 남긴 명패는 “고려충신”이다. 과거 그에 대한 상상이 매우 단순명료했었던 것 같다. 지난 몇 개월째 즐겨보는 연속극에 몰입하면서 참으로 오랜만에 감정이입을 하고, 나는 그와 정도전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적잖은 질문을 던졌다. 대체로 답을 못 구했지만 한 가지, 대학자, 외교가, 이성계와 전장에 있던 군인으로서 문무를 겸비했던 정몽주,
21세기 벽두에서 나타난 유비쿼터스 기술은 시공을 초월하여 ‘스마트 생태계’를 이루는 엄청난 문화변혁을 예고하였다. 당시 “내 꿈과 네 꿈을 구분하지 마라, 모두가 꿈을 함께 해야 한다” 는 미래학자들의 메시지도 요란하였다. 10여 년이 흐른 오늘날 어떠한가. 유비쿼터스 기술로 탄생된 스마트 문화에 온 세계가 열광적이다. 시공간적 실시간 위치추적, 상황인식
언어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특히 무분별하고 저속한 언어를 구사하여 개인이나 집단을 적대적으로 공격하는 일들을 우리는 수많은 선거‘전’(戰)에서 지겹도록 경험했다. 이런 상황에서 공동체의 ‘품격’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잘못된 언어 사용에 따른 폐해는 단지 정치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며,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대립적 관계를 심화시키고
우리는 지난 세기의 어느 순간부터 유물론(materialism)을 경계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공산주의자들이나 사회주의자들이 신봉하는 이데올로기였다는 이유에서이다. 하지만 해방과 한국전쟁을 전후해서 그리고 지하운동에서 젊은이들이 유물론에 심취하지 않으면 진보적 대열에서 열외당하는 풍조마저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를 이념갈등으로 이끌게 한 한국의 유물론자들은
서라벌예술대 시절, 문예창작과 교수를 했던 서정주의 시 가운데 「바다」라는 것이 있는데 이렇게 끝난다. “눈 떠라. 사랑하는 눈을 떠라… 청년아,/ 산 바다의 어느 동서남북으로도/ 밤과 피에 젖은 국토가 있다.// 알래스카로 가라!/ 아라비아로 가라!/ 아메리카로 가라!/ 아프리카로 가라!” 일제 강점기, 비탄에 잠겨 있는 조선의 학도들에게 좁
세월호가 전복되어 많은 탑승객이 사망 내지는 실종되었다. 이 사건으로 사망한 분과 그 유가족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하며 아직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실종자를 발견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이번 사건에서 한 고등학교의 2학년생이 수학여행을 가던 중에 사고를 당하여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니 더욱 가슴이 아프다. 대학입학을 위해 불철주야 공부에 짓눌려 있
‘사색’은 아니고, 그냥 관찰기이므로, 성격이 맞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청탁을 받아들였다. 정말이지 요즘처럼 대학이 미쳤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대학이 미친 것이 아니라, 세상이 대학을 그렇게 만들고 있다. ‘미쳤다’는 말은 필자가 생각하던 대학의 모습과 현실 속의 대학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뜻이다.
1995년 6월 29일 오후 6시경 뉴스에서 아나운서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다는 소식이었다. 1,500여 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대형사고였다. 불과 8개월 전인 1994년 10월에는 32명의 목숨을 잃은 서울 한강의 성수대교 붕괴사고도 있었다. 삼풍백화점의 경우 계획에 없었던 5층을 사용 중에 식당으로 변경하면서 하중이 무거운 설비
강단사색 원고를 부탁받고 생각해 보니 10년 전쯤에도 한 번 원고를 실었던 기억이 났다. 그때는 학교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떤 이야기를 쓸 것인가를 고민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과연 강단에서 사색할 시간이 있는가를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짧은 시간 동안 대학 사회는 많은 변화를 요구 받았고 그에 적응하기를 허덕이면서 나는 사색 또는 고민을 할 시간들
작년부터 경영경제계열 학생들을 대상으로 취업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얼떨결에 맡게 된 과목이라 이미 진행되고 있는 다른 취업특강을 살펴보았다. 현업에 계신 분을 초청하여 해당 산업의 현황과 직무를 소개하고 이에 맞는 적성과 지식 등을 설명하거나 면접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거나 자기소개서를 임팩트있게 쓰는 방법 등이 주를 이루었다. 그런데 많은 기업들이 요구하는
Robert Lois Stevenson은 “사람들은 뭔가를 팔면서 살아간다(Everybody lives by selling something)”고 말했단다. 맘속으로는 “쟤 또 뭐 파는 거야?”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신성한 학문 공동체인 대학이 팔고 사는 장터이고, 교수와 학생이 뭔가를 주고받는 교환관계로 보이나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 하루
연륜에 따른 대학 강의의 특징에 관한 오래된 농담이 있다. 30대 교·강사는 자기도 잘 모르는 내용을 밤샘 공부해서 학생들에게 열변을 토해낸다면 40대 선생은 자기가 아는 범위에서만 살포시 가르친다. 50대 중진교수가 수강생들이 이해할 만큼만 펼쳐낸다면 60대 원로교수는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즉흥적으로 강의를 이끈다. 소위 수업제작자와 교육소비자 사이에
학생들에게 “대학생활이 어떠했는가?” 묻는다. 그때마다 대답은 “그냥 그저 그렇다”이다. ‘으레 그러려니’ 하면서도 섭섭한 것은 아마도 내심 ‘만족했다’거나 ‘좋았다’는 대답을 기다렸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피트 몬드리안과의 만남. 코엑스 반디앤루니스에서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김주경 역. 시공아트, 2012)을 발견하고, 반 고흐의 자화상이 10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