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글쓰기에서 다루는 가장 기본적인 글의 유형이 바로 자기소개서, 즉 ‘자소서’ 쓰기다. 스스로에 대해 자신만큼 정확하게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싶지만, 자기소개서를 쓰다 보면 자신에 대해 치명적인 정보의 빈곤감을 느끼게 된다. 자기소개서 쓰기는 이력서 쓰기와는 확연히 다르다. 보이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빠짐없이 객관적인 근거로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토끼는 거북이를 사랑했고 거북이도 토끼를 사랑했다.” 어린 시절에 본 이솝우화에서 토끼는 게으르고 거북이는 성실한 이미지였다. 토끼와 거북이는 달리기 경주를 벌였다. 경기 도중 낮잠을 잔 토끼는 느리지만 끈기 있게 경기에 임한 거북이에게 지고 만다. 우리의 전래동화에서도 토끼와 거북이의 악연은 계속된다. 거북이는 토끼의 간이 필요한 상황에 놓이자 토끼를
가장 긴 줄이 가장 안전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 줄에 서 있으면 최소한의 것들이 보장되던 시대였다. 어디든 4년제 대학을 졸업만 하면 안정된 직장의 사무직으로 일하며 살 수 있었다. 이름을 알만한 대학을 졸업하면 이름을 알 만한 직장을 골라 갈 수 있었다. 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오면 연구원이나 교수가 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긴 줄에 선 순
발레 연습을 마치고 연습실을 나와 조소전공 건물을 지나니 대운동장 테니스코트로 가는 오솔길이 나온다. 그 오솔길엔 녹음이 우거져 마치 녹색 동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녹색 동굴 속을 거니노라면 아카시아 향기가 코끝을 자극하니 향수를 뿌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에 빠지게 된다. 온천지가 녹색으로 뒤덮이고 겨우내 초라하고 앙상했던 대지가
강산이 두 번 넘게 변하는 기간 동안 학생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원하든 원치 않든 이미 졸업한 세대의 학생들과 요즘의 학생들을 자연스럽게 비교해 보는 경우가 있다.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캠퍼스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지만, 한마디로 ‘학생’이라는 다소 모호한 집합명사로 지칭되는 객체들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다. 굳이 그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려 노력하지 않아도,
5월은 참으로 좋은 달이다. 모든 나무와 잔디가 푸르고 꽃들은 만개한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또한 5월은 유난히 노는 날이 많은 달이면서, 의미 있는 날도 많은 달이다. 달력을 보면서 적어보니 의미 있는 날이 꽤 많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바다의 날, 식목일, 입양의 날, 스승의 날, 가정의 날, 성년의 날, 발명의 날, 세계인의 날
나는 올해로 중앙대에 온 지 27년째 접어드는 평교수다. 지난 2월 전체교수회의 이후 대학본부가 발제한 선진화 계획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이해관계에 있는 많은 집단들 간에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정제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 대다수의 중앙인은 불편한 시기를 감수해 왔다. 그러나 아직도 중앙대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불안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 중
작업실에서 작업을 마치고 씻어 말린 채색 붓들을 가만히 쳐다보니 형형색색 예쁘다. 오랜 기간 거친 호분과 분채들을 칠하면서 닳은 붓털에 빨주노초파남보 색들이 자연스럽게 배어들었다. 털이 빠져 듬성듬성한 붓에 배인 색들이 깊다. 오랜 시간 남을 위해 헌신해 온 사람의 인고의 시간이나 사랑의 빛깔이 있다면 저런 색일 것이다. 동양화의 채색 붓을 오래 쓰다 보면
저는 2015년 서울캠 새내기입니다. 지난 20여 년간 안성교정에서 생활하다 이번학기부터 서울캠으로 연구실이 이전되었습니다. 아직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하지만 차츰 정착되어 가고 있습니다. 말수가 많아졌고, 걸음걸이가 빨라졌고, 그리고 운전도 조금은 거칠어진 것 같습니다. 이번학기도 월요일 교양학부 수업으로 일주일에 한 번 안성교정에 갑니다. 지난 월요일
2013년, 중앙대학교는 LINC 사업을 시작하였다. 한국연구재단에서 주도하는 이 사업단에 대해 흔히들 ‘학생들의 취·창업을 도와주는 기관’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중앙대학교의 위상을 생각하면, 나는 이 말에 쉽게 동의할 수만은 없다. 중앙대학교 LINC사업단의 모든 활동의 중심에는 당연히 ‘학생’이 있다. 글로벌
의대를 다니던 시절 난 유달리 해부학이라는 과목이 좋았다. 아니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부터 사람 몸의 구조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것이 의대를 들어가고 싶었던 작은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학시절 해부학이라는 과목은 늘 재미있지만은 않았다. 방부제 냄새로 가득 찬 해부 실습실에서 이뤄지던 해부학 강의는 단순 실습 이외에도 너무나 외워야 할 것들이 많아 버
학부형님께. 어제 전화를 받은 이승하 교수입니다. 강의 직전이라 질문하신 내용에 자세히 답변 드리지 못하고 ‘나중에 전화를 드리겠다’며 끊었지요. 마침 중대신문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은 김에 못다 드린 말씀을 마저 해드리려 합니다. 안 그래도 자녀를 ‘문예창작전공’에 보낸 것이 잘한 결정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터에 요즈음 중앙대가 언론에 자주 보도되자 근심이
기자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고 회상해 보니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지가 어느덧 25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물론 그중에는 몇몇 미국 대학을 포함한 타대에서의 교육 경력도 포함돼 있다. 나는 가끔 ‘경력이 많고 나이도 60이 되었으니 학생들 가르치는 일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받곤 한다. 글쎄, 이리도 오랫동안 매 시간을 넘치는 열정
닉 부이치치(Nick Vujicic). 그는 1982년 호주 브리즈번에서 사지가 없이 태어난다. 하나님께 팔다리가 생기게 해달라고 기도해도 응답이 없자 자기 생각을 바꾸자고 결심한다. 자신보다 더 심한 장애인들도 많으며,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눈으로 세상을 새롭게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부터 그의 인생은 바뀌었고 대학 졸업 후 첫 번째 책
19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문예 비평가였던 매튜 아놀드는 라는 글에서 교양을 인간의 “균형 잡힌 자기완성”으로 규정하였으며, 그러한 완성에 이르게 만드는 가장 훌륭한 교육방법은 문학을(더 정확하게는 고대 그리스 서사시를 포함한 고전 문학작품들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아놀드의 이러한 주장은 산업혁명이후 지속적으로 실용주의 노선이 만연
유난히 봄이 더디게 찾아오는 안성캠퍼스 강의실에서 너를 처음 만난 것도 벌써 5년 전 일이구나. 이제 겨우 고등학생티를 벗은 너는 짙은 아이라인에 검은 생머리가 인상적인 신입생이었지. 그렇게 강한 인상을 주던 네가 수업시간만 되면 맨 뒷자리에서 사정없이 졸아대는 통에 나는 내 수업이 그리 지루한가 싶어 걱정을 했었다. 그러나 상담시간에 너를 만났을 땐 나름
교수들의 역할에는 연구와 교육, 그리고 봉사가 있다. 보통 교수들의 업적 평가를 할 때, 연구:교육:봉사의 비중이 60:30:10으로 되어 있다. 그만큼 대학 교수의 업무 중에서 연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교수의 역할 중 교육은 직접적인 효과가 즉각 나타나지만 지식의 창출로 인한 국가 발전이나 학교의 재정 등까지 고려해 보면 간접적인 효과는 연구 부문이
필자가 속한 건축학부는 설계스튜디오 수업이 많은데, 이 과목은 대개 소수의 인원에 대한 일대일 지도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수업에서 학생들은 매주 긴장된 마음으로 자신의 안을 설명하고 교수들은 ‘Critic(비판)’으로 화답하는데, 요즘 필자는 학생들의 장점과 창의적인 생각들에 대해 칭찬을 많이 해주는 편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혹시 강의평가를 잘 받거나
강단사색에 처음 글을 쓴 것이 1996년으로 기억한다. 제목이 원래 ‘개판세상’이었는데, 너무 자극적이었는지 중대신문 측에서 제 맘대로 고쳐버렸다. 화가 났지만 이미 인쇄까지 마친 마당에 뾰족한 수가 없었다. 다신 중대신문에 글을 쓰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서운함을 대신했다. 어쨌든 당시 30대 초반의 병아리 교수 눈에 비친 대학의 모습이 제목과 같았던 모양이
1980년대 ‘동유럽 민주화의 구심점’이었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임종 직전에 인류평화나 문명 간의 화해 같은 마지막 유언이 아니라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행복하시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였던 그가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에 했다는 ‘나는 행복합니다’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뒤부터 나는 이따금 죽음에 대한 묵상을 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