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시간을 거스르거나 앞지르는 방식으로 서사의 흐름을 만드는 타임슬립(Time Slip)물이 인기를 끌었다. 주인공이 갑자기 외계인을 만나 새로운 능력을 갖추거나, 과거로 되돌아가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식이다. 최근의 이런 유행은 뒷맛이 쓰다. 타임슬립과 같은 판타지의 유행이 발생하게 된 배경에는 도저히 해결 불가능한 현실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대학생 시절로 돌아갈래?”라고 묻는다면, 나는 “절대로,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20대는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환경 정책의 결과로 수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온실가스 발생의 주범인 에너지 기업들이 쇠퇴하기 시작하자, 일부 노동 운동가들은 기업과 한편이 돼 산업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너지 전환을 적극 환영하는 환경 운동가들과 일자리를 지키려는 관련 노동 운동가들의 대립은 당연한 일 같았다. 전환 과정에서 노동자의 희생은 대의를 위한 필요악처럼 여겨졌다. 이때 미국 노동 운동가 토니 마조치가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해를 해고나 임금 삭
미국의 사회비평가이자 도시사회학자인 마이크 데이비스는 이렇게 말했다. “쇼핑몰, 오피스텔, 문화 아크로폴리스 등 오늘날의 고급 공공공간은 하층민 ‘이방인(Other)’에 대한 보이지 않는 경고 문구들로 가득 차 있다. 보통은 환경이 인종 차별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의식하지 않지만, 가난한 라틴계 가족, 젊은 흑인 남성 또는 나이 든 노숙자 백인 여성들이 그 의미를 즉시 알아차린다." 우리 사회의 경고 메세지는 이보다 더 명확하다. ‘8세 미만 어린이 손님은 받지 않습니다’, &l
지난 24일, 당정이 ‘일부 심야 시간대 옥외집회 금지’를 법제화하겠다고 나섰다. 여당은 ‘오전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방향으로 입법을 추진하겠다’며 구체적인 시간까지 제시했다. 법 개정 추진의 배경으로는 16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1박 2일 총파업 결의대회가 거론됐다. 하지만 해가 진 후부터 해뜨기 전까지 옥외집회와 시위를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0조는 이미 두 차례 헌법재판소(헌재)의 의해 헌법 불합치와 한정위헌
민족·국가·인종 등에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인정되는 보편적인 권리 또는 지위. 인권의 정의다. 인권은 방대한 범위를 포괄하는 단어다. 학생 인권도 다르지 않다. 성별부터 인종까지 무수히 많은 갈래의 특성을 지닌 이들을 포괄하는 것이 ‘학생 인권’이다. 현재 서울캠 총학생회 아래에서 약 1만8천명에 달하는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는 일은 학생인권위원회(학인위)가 홀로 담당한다. 성평등위원회와 장애인권위원회 등이 해왔던 인권 보호를 위한 활동 모두 그들의 몫이다. 학내에는 성소수자,
언론은 시민이 보지 못했던 것을 보는 눈과 시민의 목소리를 듣는 귀가 되어야 한다.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대신 경험하여 알려주고, 보이지 않는 사실을 찾아 나서며 약자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입이 되어야 한다. 중대신문에는 독자들이 만나보지 못했던 사람들, 경험하지 못했던 문화예술, 듣지 못했던 새로운 소식들과 관련한 기사가 올라온다. 때론 우리의 목소리를 대변하여 우리의 입이 되기도 한다. 독자들에겐 체험의 확장을 넘어 내 목소리를 대신해 주는 입까지 돼주는 셈이다. 중대신문 제2040호에는 ‘우리는 열일하는 老동자&rs
필자는 저널리즘 관련 강의를 하지만 언론에 대해 많이 지쳐있었다. 좋은 뉴스를 선택하기 위해 필요 이상의 노력이 요구되는 시대에 중대신문은 언론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 주고 있다. 사회면의 ‘청년(聽.)’ 코너는 중대신문에서 그리 긴 역사를 갖고 있진 않지만 지금의 청년들이 고민하고 논의할 수 있는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마약, 청년기 빈부격차와 불평등, 정신 건강, 정치, 노동 등 지금 이 시대의 청년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심층 기획 보도를 통해 전개해나가고 있다. 사회적 활동
어느덧 인문학 공부를 시작한 지 2년 하고도 3개월이 지났다. ‘인문학’이라고 하면 치를 떨던 내가 전공을 중국어문학으로 결정한 것은 오로지 상경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서울살이의 기쁨도 잠시였다. 코로나19로 인해 침체된 교내 단체생활, 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만연한 특정 단대 무시 등은 소속감을 느끼기도 전, 상실감부터 경험하기에 충분했다. 5월 15일 게재된 중대신문 제2039호의 ‘기초학문 바라보는 중앙대 구성원의 생각은’ 기사는 인문대 소속인 나에게 유독 인상적이었다.
연구실에 읽지 않은 책들과 쓰지 않는 펜들이 가득하다. 잘 읽고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의 잔해들이다. 책과 펜을 소유하는 일로 잘 읽고 잘 쓰는 일을 대신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모으고 채우기보다는 버리고 비워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지금은 모두 잃었지만, 아끼고 사랑한 책과 펜이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끼고 사랑한 책들과 펜들이다. 부친이 국민학교 4학년 때 사주신 50권짜리 계몽사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과 이모가 중학교 입학 선물로 사주신 ‘파카 45 만년필’과 ‘파카 조터 볼펜 샤프 세트&rs
‘사실 보도라는 저널리즘의 본질과, ‘할 말은 한다’는 정론직필의 정신을 지켜나가겠습니다.’ 조선일보사의 소개말이다. 조선일보는 사실 보도라는 저널리즘의 본질을 지켰을까. 지난 17일 조선일보는 기사를 통해 양희동 건설노조원이 분신할 때 건설노조 간부가 방조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해당 기사는 독자 제보로 확보했다는 CCTV 화면과 익명의 목격자 진술에 근거해 작성됐다. 이 기사에는 분신 사건을 조사한 경찰의 인터뷰가 담겨있지 않으며 조선일보가 경찰에 취재를 요청하지도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2022년 2학기 서울캠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에서 중앙감사위원회(중감위)가 폐지되고 올해 중앙감사회의가 출범했다. 3월 6일 첫 회의도 진행됐다. 다만 중앙감사회의가 새로운 회계 가이드라인을 통해 회의의 의미를 실현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중감위가 폐지될 당시 서울캠 중앙비상대책위원장은 중앙감사회의의 주목적이 감사가 아니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회칙상 중감위와 중앙감사회의의 목적은 회비 사용의 신뢰 증진과 투명한 회비 집행으로, 동일하다. 제대로 된 감사 없이 신뢰 확보가 가능할까. ‘감사’의 사전적 의미
지난 17일 나는 영화를 좋아하던 한 친구에게 질문을 건넸다. “이번에 디즈니 영화로 인어공주 개봉하잖아. 보러 갈 거야?” 영화 를 향한 논란과 우려가 컸기에 영화에 애정을 가진 이에겐 그 작품이 어떻게 느껴질지 궁금해서였다. 친구는 나의 물음에 보러 갈 것이라 답했다. 그리고 대답을 이어갔다. “그 작품을 비판하는 대부분 사람들은 잘못된 관점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 캐스팅에 불만이 있다면 캐스팅을 한 관계자를 비판하는 것이 옳잖아.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그 배우를 향해 인신공격하고 있
대구에서 나고 자란 기자는 고향에 대한 사랑이 남다릅니다. 서울에 둥지를 튼 지 햇수로 3년이 됐지만, 아직도 동대구역으로 향하는 KTX에 몸을 실을 때면 가슴이 두근거리죠. 가족 모두 대구에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할머니네, 고모네, 삼촌네는 지하철 한 정거장 사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습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하는 이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기자를 한없이 든든하게 만들어 줍니다. 가족들이 대구에 있다는 점도 좋지만 대구를 연고로 한 삼성 라이온즈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사자 군단의 찬
지난 5월 15일자 중대신문 제2039호는 유독 더 풍부한 주제를 담고 있다. 학생들이 마주한 현실적인 문제와 더불어 사회와 삶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마주해야 할 문제들을 폭넓게 담아놓았다. 우리 주변에서 빠르지만 조용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다양하게 한 신문안에 대비되면서도 조화를 이룬다는 점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전체적인 주제의 구성을 살펴보자. 성소수자에서부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다룬 전시 ,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자본주의와 중앙대의 흔들리는 기초학문, 미래를 향한 연구소와 옛 시절의 서울캠퍼스 사진. 오늘을
로봇 저널리즘에 더해 생성형 AI가 기사를 쓰는 시대에 중대신문의 제2039호는 인간 기자의 존재 이유를 잘 보여주었다.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이들에게 귀 기울이는 것은 어느 시대이고 인간이 잘해야 하는 일일 것이다. 먼저 171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성소수자 인식 조사 결과가 의미 있게 다가왔다. ‘나의’ 커밍아웃을 친구나 가족이 받아들일 것이라는 데 긍정적으로 응답한 학생은 20% 미만이었던 반면 ‘내가’ 그들의 커밍아웃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한 응답자는 70%에 가까웠다는 사실이다
21세기의 기술혁명을 대변하는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가 등장한 지 수년이 지나고 이제는 우리의 일상에 친숙한 용어로 자리잡았다. 4차 산업혁명은 정보통신기술의 융합을 통한 ‘초지능’, ‘초연결성’의 특성을 가진 제2의 정보화 혁명으로 인간과 인간, 사물과 사물, 인간과 사물이 상호 연결되고 빅 데이터와 인공지능(AI) 등으로 대표되는 지식화 사회로의 변화를 말한다. 현재 우리 앞에 놓여 있는 4차 산업혁명은 이전의 기술혁신보다 더 큰 변화가 예상된다. 수십 년 내에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중대신문 ‘강단사색’ 코너의 원고 요청을 받고 컴퓨터 앞에 앉으니 주마등처럼 교수로 발령받았던 먼 과거로 내 기억이 되돌아간다. 교수로 생활하면서 이런저런 기쁜 기억과 슬픈 기억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통해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을 몇 자 적는다. 교수가 되고 나서 처음 1학년 지도교수를 맡게 되었다. 어느 날 지도학생 한 명이 갑작스레 진입하는 지하철에 부딪혀 생을 마감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지금도 미스테리하지만 사고라고 생각하고 너무나 큰 충격으로 울면서 뛰어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