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인 감정 실태 조사 “당신의 세 치 혀 때문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누나가 죽었습니다.”영화 에서 이우진은 주인공 오대수를 밀실에 15년간 감금시킨다. 가까스로 풀려나 복수심이 들끓는 오대수를 보며 우진은 30년 전의 그날을 다시 곱씹는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그날을 기억하면 여전히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쓴 위액이 식도를 타고 역류한다. 평범
누구를 위한 자기관리인가제품의 사양을 설명하는 ‘specification'은 이제 사람의 능력을 재는 척도가 되었다. 상품의 질을 보증하는 설명서처럼 스펙이 그 어느 세대보다 20대에게 중요해진 이유다. 당장의 취업과 면접에서 나를 돋보이게 할 ‘설명서’를 가꾸고 채우는 활동은 바로 자기관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다홍치마가 되기 위한 고군분투= 하지만
오늘의 재구성 모멸이라는 감정, 알고는 있지만 ‘나는 모멸당한 것 같아’라고 즉각적으로 반응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극히 사적이지만 자존심 때문에 공공연히 표출 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니까요. 하지만 모멸 주는 것을 단순히 누군가를 무시하는 일, 모멸 받는 것을 단지 속 좁게 기분 나빠 하는 일로 치부할 수 있을까요? 개인적인 감정이지만 모든 책임은 개
같이 가기보단 혼자 가는 게 쉽게 느껴지는 현실조별과제가 넘치는 대학에서 우리는 서로의 골칫거리가 된다 TV 프로그램 ‘미생’에서는 주인공 장그래(임시완)가 팀 프로젝트 중 자신의 파트너인 한석율(변요한)이 홀연히 출장을 떠나자 분노를 한다. 혼자 모든 부분을 도맡아 일을 진행하던 장그래는 ‘좀 더 섹시하게 아이템을 구성하라’는 한석율의 적반하장에 폭발하고
중앙인에게 프리라이더란조별과제라는 ‘버스’에 프리패스는 없다일반 승객이든, 프리라이더든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지난해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조별과제 잔혹사’란 콩트를 선보였다. 조모임 날마다 집안행사가 있다는 학생, 자료조사를 해 오랬더니 인터넷에서 ‘복붙’(복사+붙여넣기)해오는 학생, 잠수타는 학생까지.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겪어봤을 법한 인물들이
프리라이더라 내몰린 사람들, 섣부른 낙인에 속상함만 커져가조별과제 잔혹사 아래 감춰진 프리라이더 잔혹사를 들춰봤다 ‘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 이름 하나에 사람 팔자가 달려 있으니 쉬이 여기지 말란 말이다. 단순히 사람 이름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소위 ‘네이밍’(naming)이라 불리는 이름 짓기는 운명론을 믿지 않더라도 오늘날 그 중대성은 유효하
자유분방한 인문학 공동체함께 숨쉬며 고민을 나눈다인문학 공부에는 휴일도 없다사회와 소통하는 인문학 동아리 최근 한 초등학교 운동회의 달리기 사진이 화제가 됐다. 사진 속 다섯 명의 어린 학생들은 모두 손을 잡고 나란히 결승선을 향한다. 언뜻 보면 의아한 광경이다. 0.1초라도 남들보다 먼저 결승선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 경주의 목적 아닌가. 하지만 아이들은
남녀노소, 지위여하를 막론이곳에서는 모두가 ‘인문시민’삶이 무기력한 노숙인들도 인문학을 통해 활기 찾는다 저녁식사가 끝나면 부모와 자식들은 TV를 켜는 대신 외투를 걸친다. 바로 강의가 열리는 학교에 가기 위해서다. 이 요상한 일은 독일의 시민학교 ‘폭스호크슐레’에서 일어나고 있다. 독일에서는 대학이 아닌 동사무소나 시민단체에서 대중들을 위한 교육을 제공하
‘열풍(烈風)’. 말 그대로 뜨거운 바람이라는 뜻입니다. ‘한류 열풍’, ‘SNS 열풍’, ‘몸짱 열풍’ 등 매우 세차게 일어나는 기세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죠. 바람이 휙- 불고 가버리듯, 지금의 뜨거운 열기가 언젠가는 식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지금의 인문학 열풍도 언젠가는 ‘한 때의 바람’으로 기억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온기를 오래도
생산적인 인문학은 새로운 시대적 요구통섭과 융합으로서의 인문학 대학은 이에 대답할 때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우리가 영어를 ‘제1외국어’로 습득해야 함을 알았을까. 모든 국민이 영어를 배우고, 대학생들은 하나 이상의 어학자격증을 가져야 한다. 영어가 더 이상 스펙이 아니라 필수가 된 것은 사실 1세기도 지나지 않았다. 시대는 변화하고 그에 따라 요구되는
인문학에 쇄국정책은 없다 빗장 열고 융합해야 할 때고고한 인문학은 고독할 뿐 보통사람들의 인문학이 힘 얻는다 뭐든 시작이 어렵다. 헤엄칠 때는 추진력을 얻기 위한 첫 번째 팔 동작이 가장 힘겹다. 운동할 때도 몸이 운동에 적응하는 처음 일주일이 무척 괴롭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일단 첫 문장을 쓰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그리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글을
인문학도가 위태로우니 인문학이 기울어진다 공학 위에 ‘양념’이 된 인문학 학계 생태는 황폐해진다 “너 철학 전공해서 나를 어떻게 벌어먹여 살릴래?” 1975년 작 영화 에서 주인공 영자는 남자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영화는 산업화를 몸소 겪은 한 여성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지만, 40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과 비슷한 대사다. 경제개
창조 앞에 ‘극성엄마’된 사회진짜 인문학은 남아나질 않고 있어점점 맛있어 지는 인문학 레시피본연의 ‘쓴’ 맛은 잃고 있다 “꿈은 이루고 봐라.” 철학박사 강신주가 강연 중 이 시대 청년들에게 던진 멘트다. 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그의 말이 마치 정답이라도 되듯 고개를 끄덕이며 강연을 듣는다. 그렇지만 애당초 인문학은 의문을 제기하며 비판적으로 수용
어떻게 살 것인지 인문학적 고민새로운 가치 창출의 근원으로 각광주체들마다 원하는 인문학 상 달라합의된 청사진이 없다 인류의 발전에 세 가지 사과가 있다. 첫 번째는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 두 번째는 뉴턴이 발견한 사과다. 두 사과 모두 인류의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마지막 사과는 다름 아닌 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사과는 전 세계 사람들을 열광시켰
사라지는 인문학과와 줄어드는 인문학도들이제 인문학은 공합과 결합된 ‘융합’의 형태로 나타나 밖에서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는 상황에서 인문학의 본거지라 불리는 대학 내부의 모습은 과연 어떠할까. 대학 내에서는 인문학이 양분된 형태를 띠고 있었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정원 감축 등의 이유로 대학들은 구조개편을 시작했고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낮다고 판단된 인문학
오늘의 재구성문장의 끝에 ‘?’를 붙이면 인문학이 시작됩니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철학이며 윤리며 신경 쓸 새가 없죠. 굳이 관심을 가지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인문학적 사고는 사실 어렵지 않습니다. ‘왜?’라고 질문하는 것이죠. 너무나도 확고해 보이는 현상일수록 꽤 잘 먹힙니다. 사회가 인문학에 주목하게 되면서 인문학적 가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는데요
스마트폰과 일체화된 20대의 초상기술 발전보다 느린 의식 개선소수에게는 불이익의 가능성도사적 영역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하루 종일 정신이 없다. 시시콜콜 쏟아지는 카카오톡을 확인하고 페이스북의 잡다한 소식, 정보들을 확인하는 데 몇 시간씩 소비된다. 넘치는 정보와 연락의 홍수로 인해 그야말로 잠겨 죽을 지경이다. 언제부턴가 커뮤니케이션과 정보는 적정을 넘어
빨라진 소통 관계에 숨겨졌던 이들의 고통중독되지 않은 사람들은 차별받고 있었다 중독되지 않아 ‘문제아’가 됐다. 대부분의 사람이 잠에서 깨자마자 기지개를 켤 새도 없이 스마트폰을 확인한다. 대중교통 속 풍경엔 하나같이 고개 숙여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들로 가득하며, 어디를 가든 콘센트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스마트폰에 중독되지 않은
넘쳐나는 대화창들우리의 조급증은 늘어만 가무탈한 사회생활 위해차라리 중독되는 게 낫다 ‘요즘 따라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에게 온 카카오톡(카톡) 알림음이 폰을 울린다. 설레는 마음이 메시지를 확인하라고 요동치지만 이를 열 수 없다. ‘1’이 바로 없어지면 할 일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대화창을 선뜻 열지 못하는 정영진 학생(사회대·
오늘의 재구성 혹시 이번 추석 인사는 카카오톡으로 때우진 않았나요? 요즘은 ‘그놈의 까똑 까똑 꺼져줄래’라는 노랫말이 쓰이고 카톡 이모티콘을 실제로 흉내 낸 코미디가 흥행하는 현실입니다. 이는 아마도 스마트폰에 익숙한 우리 모두의 폭풍공감을 이끌어내기 때문일겁니다. 어쩌면 오늘의 주인공은 우리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매 순간 스마트폰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