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 학생 대표 선거를 지켜보고 있자니 한숨부터 나온다. 양캠 모두 이번 선거에서 정당성 있는 총학생회장을 세우지 못했다. 기대했던 서울캠 선거는 전체 투표율 47.1%로 결국 무산됐다. 대표없이 겨울을 맞게 됐으니 비대위 체제에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안성캠 또한 부정선거 논란으로 시끄럽다. 예술대와 산업대의 투표함에서 누군가 조작한 것으로 여겨지
발명왕 에디슨은 누구나 인정하는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도 모든 연구를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많은 실패를 겪기도 했는데, 특히 전구를 발명하기까지는 무려 2000번의 실패를 하였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기자가 물었습니다. ‘2000번이나 실패를 했는데 어떻게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셨습니까?’에디슨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ls
안성캠 총학생회장 후보자들의 공청회 소식을 다룬 선거특집은 학내언론의 역할에 충실한 중대신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의미 있는 지면이었다. 한편으로는 학보라는 매체가 중앙인들의 선거에 대한 무관심을 해소할 수 있을지 가늠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주제별 각 선본의 입장을 정리한 편집은 그래서 다소 아쉬웠다. 공정하게 두 선본의
“월요일, 당신의 한 표가 필요합니다”. 지난 주 중대신문의 1면 헤드라인이다. 선거 기간답게 많은 지면이 선거 관련 기사에 할애되었다. 지극히 당연하고 바람직한 현상이다. 선거에 관심을 갖고 학생들의 투표 참여를 독려해야 하는 것은 대학신문이 가져야 할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의무를 ‘얼마나 잘’ 이행했
우리 팀은 지난 10월부터 성평등 상담소의 공모전과 사회학과 전공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학내 자치기구의 성평등 실태를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활동을 통해 우리 학교에 여전히 다양한 불평등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우선 위계질서를 강요하는 소위 군대식 문화가 여전히 자리잡고 있었다. 학
가을은 “하늘이 높으니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하지만 요즘 말(馬)이 아니라 말(語)로 살찌고 있는 곳이 있다. 요즘 서점가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베스트셀러는 모두 말(語)과 관련 있다. 그러한 책들은 너무나도 생소한 말(語)인 “정의”, “도덕” 같은 형이상학적 개념어를 사용하
중앙대 체육부가 사용하는 경기장 시설이 선수들의 경기력을 향상시키는데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축구장엔 관중석이 없고, 봄철에는 잔디가 자라지 않아 맨땅에서 경기를 해야하는 상황이다. 대학리그에선 적수가 없는 농구부 또한 마찬가지다. 관중석이 없긴 매한가지고, 코트 바닥이 고르지 않아 부상우려가 있다고 한다. 웨이트 시설 또한 노후화되었다. 여기서 그치지
서울캠 53대 총학생회 선거가 말썽이다. 이틀 간 투표율 40%를 못 넘겨 결국 무산이 됐다. 미공영대의 선거인 명부 확인 절차가 미흡했기 때문이다. 다행이 투표연장과 재투표 결정으로 실수를 만회하는 것 같더니, 총중선관위 내부 의견충돌로 논의가 거듭됐다. 결국 미공영대 재투표, 연장투표로 결론났지만 자칫하면 비대위 체제로 방학을 맞이할 뻔 했다. 이번 선
내년 2월의 정년퇴임을 앞두고 마지막 학기 강의를 진행하면서 전공과목과 직접관련이 없는 잔소리 같은 이야기들을 학생들에게 자주 들려주곤 한다. 안성캠이 설립되면서 교수생활을 시작하였는데 27년간 몸담았던 산업과학대학과 동물자원과학과가 대학교차원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41년 역사를 끝으로 해체되는 때 정년퇴임을 하게 되었고 정들었던 안성에서도 옮겨갈 계획이라니
겨울의 문턱, 개인적으로 ‘도모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하루 하나씩 소소하게 도모함으로써 훈훈한 하루를 나는 것. 대학가의 훈훈함과 활기도 학생들이 작게라도 뭔가 도모하는 데서 시작됐던 것 같다. 학술행사, 체육대회 등 크고 작은 ‘도모 프로젝트’가 학내 게시판을 도배할 때 대학 내 활기도 덩달아 넘쳤다. 그
평소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의학부 교수에게 한 한기 동안 마음 한편에 은근히 압박을 가해왔던 ‘중대신문을 읽고‘의 마지막 원고다. 솔직히 시원섭섭한 기분이 든다. 그러면 학생자치를 포기한 학생들의 기분도 과연 이럴까? 내가 학교를 다녔던 70년대 말부터 80년 초반까지의 학생회 활동의 초점은 대부분이 정치적인 이슈였기에 공부에 치여
여느 이들처럼 나는 신입생 때의 ‘즐거운 학교생활’이 처참하게 평가된 성적표를 한 손에 들고 군대로 향했다. 처음 훈련소의 느낌은, 마치 중고등학교 수련회 같았다. 좋아하는 술도, 담배도 금지된 곳. 하지만 그 생각은 금세 바뀌었다. 훈련소는 나에게 동기 부여를 시켜주었고 절제하는 방법도 가르쳐 주었다. 7주의 훈련소 생활 후 2년간의
11월은 입시의 계절, 어느 때보다 추운 날씨이지만 중앙대는 어느 때보다 많은 수확을 얻었다. 신설 기숙사부터 구조조정을 통한 학과 개혁, 활발한 매체 홍보 등 학교의 변화가 약 9만 명의 지원자들의 마음을 잡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수치에 동요되지 않을 필요가 있다. 분명 외적으로는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으나 교내적으로는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
시험끝나고 돌아가는길수시보고 집에 가는 길비록 길은 꽉 막혔지만시험보고난 뒤 마음만은 후련합니다.
파편화, 탈정치화. 오늘날 대학사회를 설명하는 키워드다. 이제는 식상함을 넘어 당연한 이야기가 됐다. 파편화된 개인은 정치 활동에 무관심하고 자신의 앞길을 헤쳐나가기 바쁘다. 그런데 누구도 이를 두고 나서서 말릴 수도 없는 상황. 암울하지만 현재 우리 대학사회의 자화상이다. 탈정치화는 비단 여의도 정치에 대한 무관심만을 일컫는 게 아니다. 자신을 둘러싼 주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만, 일본 에도시대의 대표적인 화가 가츠시카 호쿠사이는 절친한 친구의 부탁으로 그림을 그린 적이 있습니다. 그의 명성을 잘 알고 찾아온 친구가 수탉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을 하였는데, 삼라만상을 그리겠노라 장담해온 그였지만, 수탉을 그려본 적이 없던 그는 친구에게 일주일 후에 오라고 했습니다. 일주일 후에 약속을 믿고 친구가 다시 찾아
새로운 총학생회 선출을 위해 많은 이들이 분주하다. 지면에서도 양캠의 차기 총학생회 선본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올해 총학생회들의 공과들에 대해 대학기획으로 다루었다. 하지만 뭔가 결정적인 것이 부족했다. 올해 양캠 총학생회의 사업들을 열거하고 ‘이건 잘 했고 저건 못 했다’는 식의 간략한 평가까지는 그럭저럭 정보전달이 됐다. 그러나
‘대학에서 인연 만드는 법’이라. 오호, 제목 좋고, 사진 리얼하고, 찬바람 부는 계절에 딱 맞는 주제다. 그래도 대학 신문인데, 가끔 이런 발랄함도 보여 줘야지. 솔직히 기성 언론 흉내 내며 근엄하게 구는 기사는 별로 재미가 없다. 하지만 기사 자체는 아쉽다. 우선 제시한 솔로 탈출 방법들이 다소 진부하다. ‘작업 방법&r
신문에서는 헤드라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기사의 핵심을 담으려는 노력을 한다. 최근 온라인에서는 시선끌기에만 치중한 헤드라인이 많지만 본질적으로 헤드라인은 기사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담아내야 한다. 15일자의 기사를 보면 ‘확 바뀌는 강의계획서’라는 기사가 있다. 하지만 이것만 봐서는 도무지 어떤 부분이 바뀌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대학생이 되어서 듣고 싶은 과목을 직접 선택해서 수업을 듣는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수업을 들으러 갔었는데 이제는 수업을 들으러 가는 게 너무 고역이다. 단지 점수를 얻기 위한 수업은 고등학교 때 끝난 줄 알았는데 대학교에 오니 2차전에 돌입한 것 같다. 많은 신입생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교양과목을 평소 배우고 싶었던 과목으로 신청한다. 하지만 수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