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되지 않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 전공 수업 시간에 이렇게 배웠다. 기막힌 신문을 만들 수 있는 공식인 줄 알았다. 편집장이 되고 나서 이 공식은 족쇄가 됐다. 평범하고 재미없는 기사 아이템은 제쳐 두고 매주 특이한 걸 찾기에 급급했다. 오로지 자극적인 제목과 독자를 놀라게 하는 기사가 필요했다. 결과는 암담했다. 야심차게 준비한 아이템 취재는 난항을 겪었고 아이템은 사라졌다. 빈칸을 채운 건 결국 주변부 이야기였다. 지루하고 눈길도 가지 않는 기사는 대충 읽고 넘어가기
기록의 힘은 무시무시하다. 우리가 조선시대, 아니 그 까마득한 옛사람들의 생활과 생각을 알 수 있는 건 모두 기록 덕이다. 수많은 사람이 세월에 묻혀 사라지고 뼈조차 남지 않아도 그들이 쓴 글만큼은 남아 우리 옆을 맴돈다. 과거 누군가 했던 위대한 생각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생명을 빛낸다. 멋진 글을 쓰고 싶었다. 정의감과 사명감까진 아니더라도 중요한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으로 신문사 문을 두드렸다. 두고두고 봐도 흡족한 글을 쓰고 싶었다. 글로 학교에 큰 물결을 일으켜 보겠다고 다짐했다. ‘펜은 칼보다 강하
여기 의자가 하나 있다.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는 곳에 홀로 놓여있던 의자다. 어쩌다 보게 된 이들이라도 선뜻 의자에 손을 뻗지 못했다. 그저 갸웃하고는 각자의 하루를 살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기 바빴다. 이번학기 기획부의 ‘생각의자’는 그렇게 탄생했다. 평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스쳐 지나쳤을지 모르는 의자의 주인을 떠올리기 위해. 휘황한 언행을 쓰지 않더라도 사회에서 ‘소외당한’ 구성원을 잠시 생각할 수 있게 의자에 손을 뻗었다. 대단한 일이라기보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돌아볼 수
이번학기부터 뉴미디어부는 학내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 카드뉴스 업로드하기 시작했습니다. 중대신문을 홍보하고 더 많은 매체를 활용하여 학생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함이었죠. 에브리타임 활동을 시작한 초기에는 반응이 좋았습니다. 방학 중에도 콘텐츠가 꾸준히 업로드되자 학생들은 중대신문을 격려하기도 했습니다. 계속되는 칭찬 속에서 ‘안성캠에서 살아남기’ 카드뉴스를 업로드 했을 때 일입니다. 카드뉴스에 댓글이 달렸다는 알림이 와 있더군요. 누군가 제 콘텐츠에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이 기뻐
“헤드폰을 머리에 쓰는 것마저도 일이야. Music은 내게 휴식이었는데, 언젠가부터 내게 숙직을 시키네… Music makes me cry.” 가수 휘성의 「돈 벌어야 돼」는 슬픈 노래다. 삶의 기쁨이었던 음악이 더 이상 즐겁지 않고 자신을 울게 한다며 털어놓는다. 그는 지난 2002년 데뷔해 「안 되나요..」 등 수많은 히트곡으로 인기를 누렸다. 휘성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덕업일치’에 성공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난 2014년 돌연 「돈 벌어야 돼」를 발표했다. 휘
‘담대함’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조르바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그리스인 조르바』에는 60대 광부 조르바가 등장한다. 어린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그는 현재에 충실한 인물이다. 그에게 중요한 건 오늘,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rdquo
기자가 군 생활을 할 때 같은 분대 최고선임이 킥복싱 선수였습니다. 같이 운동할 사람이 필요했던 선임은 갓 전입해 온 제게 운동을 가르쳐주겠다고 했죠. 얼떨결에 운동을 배우게 됐습니다. 운동 첫날, 선임은 먼저 몸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며 중심 근육을 단련시키는 맨몸운동을 가르쳐줬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벤치 프레스나 데드리프트 같이 기구 운동을 배우고 싶었지만 선임은 스쾃, 팔굽혀펴기, 플랭크처럼 지루하고 따분한 운동만 가르쳐줬죠. 그렇게 약 3개월 동안 맨몸운동만 했습니다. 기구 운동을 배우기 시작한 건 군살이 빠져 몸이 가벼워지고
“하지마, 힘들대.” 중대신문에 들어가려던 나에게 친구가 해준 말이다. 그 말을 무시해 지금까지 고통받고 있다. 친구의 말은 사실이었다. 정말 힘들었다. 주어로 시작해 마침표로 끝나는 문장 하나를 쓰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정보를 수집하고 수집된 정보를 가지고 끊임없이 토론했다. 밤을 새우며 쓰고 고치고 쓰고 고치고를 반복했다. 모니터 앞에서 엎드려 자는 날이 많았고 팔이 저린 채로 강의실로 뛰어 들어간 적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아무도 신문을 읽지 않는
일요일 새벽 2시. 신문사의 일주일이 마무리되는 시간입니다. 310관 지하 2층을 한주 내내 밝혔던 불이 꺼지고 기자들은 각자의 위치로 향합니다. 누군가는 지친 몸을 누이기 위해 집으로 향하고 누군가는 한주의 고단함을 소주 한잔에 풀어놓으려 발걸음을 재촉하겠죠. 그러나 꺼진 불은 오래지 않아 다시 켜집니다. 당장 다음 신문 기사의 주제와 방향을 정해야 하는 기자들의 손이 키보드 위를 바쁘게 오가기 시작하죠. 그렇게, 자연스럽게 새로운 신문사의 한주가 돌아옵니다. 새내기가 되자마자 중대신문에 들어온 지 벌써 2년이 흘렀습니다. 불 켜
뭣도 모르고 선배 뒤를 쫄쫄 따라갔다. 처음 간 취재에서 카메라 렌즈 뚜껑도 열지 않고 카 메라를 들이대 선배에게 두고두고 까였다. 어 리바리한 수습기자가 어느덧 부장 자리에 앉 아 기획 아이템으로 머리를 싸매고 있다. 임기 만료까지 남은 세번의 신문에 실을 아이템을 헤아리다 문득 지난 시간 동안 작성한 기사 목 록을 들여다본다. 학내 소식을 넘어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목 소리 높이는 기획부에 오랫동안 몸을 담다 보 니, 내 이름을 걸고 작성한 기사에는 다양한 사회구성원의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트랜스젠 더, 우울증에 신음하는 청년,
지난 9월 7일 금요일 오전 12시 47분. 잠을 자려 누운 순간 후배 기자에게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속보]서울 상도초등학교 병설 유치원 붕괴 위기’. 서울상도유치원은 기자의 자취방에서 도보로 불과 15분 남짓한 거리였다. 다음날 아침 급히 서울상도유치원을 찾았다. 인근 건물 옥상에 올라 바라본 유치원의 모습은 할 말을 잃게 했다. 창틀이 깨져 나뒹굴고 건물은 위태롭게 기울어져 있었다. 바로 옆 공사장 흙막이 콘크리트 벽은 뒤집어졌고 그 위로는 토사가 덮인,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
카페에서 과제를 하는 중이었어요. 옆자리에 앉은 누군가 불쑥 말을 걸었습니다. “저는 시각장애인입니다. 잠시만 도와주세요.” 노트북을 펼친 그는 구직 사이트를 열어둔 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습니다. 직업 선호도 검사를 진행해야 하는데 그게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죠. “잠시만요.” 기자는 그를 대신해 마우스를 잡았습니다. “직업선호도 검사 S형 맞아요?” 그가 찾던 항목을 열고 화면에 적힌 글자를 재차 확인했습니다. 그는 짧은 대답과 함께 고개를 숙여 보였습니다.
중학교 때 퓰리처상 사진전을 관람한 적이 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갔지만 북베트남 비밀요원을 즉결처형하는 남베트남군 장군의 사진, 세계무역센터에 여객기가 충돌하는 순간을 담은 사진, 국경이 철조망으로 막힌 상황에서 아이만이라도 건너편으로 건네는 사진 등을 보고 강렬한 충격을 받았죠. 사진전을 보고 나온 후부터 저는 보도사진가가 돼 사진전에서 본 사진처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사진을 찍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 꿈은 계속 이어져 왔고 보도사진가라는 직업을 조금이나마 직접 맛보고 싶어 중대신문에 사진기자로 지원하게 됐죠. 신문사
“개점휴업·직무유기라는 비판이 뼈아프다.” 문희상 국회의장의 정기국회 개회사 중 일부다. 한 언론에 따르면 지난 7월 26일 열린 제362회 국회 본회의 출석 의원은 280명이었으나 개의 시 재석 의원은 181명, 산회 시 재석 의원은 164명에 불과했다. 회의에 99명이 지각했고 116명이 중간에 나간 셈이다. 5000만 국민을 대표해 나랏일 하시는 분들도 회의 도중 나가는 판국에 서울캠 학생대표자들이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 중간에 나가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이번 전학대회 재적 대표자는 3
‘사랑’. 굉장히 가슴 설레고 예쁜 말이다. 소설에서도 영화에서도 노래에서도, 우리는 언제나 사랑을 말한다. 그러나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인정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어색하고 낯간지러워서 뿐만이 아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의 무게는 쉽게 그 표현을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더더욱 그런 사람이었다. 쉽게 정을 주지도, 쉽게 마음을 표현하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미련하기 짝이 없어서 내가 무엇을, 누굴 좋아하는지조차 몰라 ‘늦은
많이 변했다. 정문을 바라보며 엄마가 딸에게 말했다. 엄마는 30년 전 이 교정을 걸었다. 이젠 딸이 엄마가 걷던 교정을 걷는다. 옛날엔 교문이 있었는데 이젠 없네. 많이 변했다. 엄마는 두꺼운 담장을 두른 중앙대를 다녔다. 교문을 지나 수업을 들었다. 지난 2002년 중앙대는 이 담장을 허물었다. 중앙대가 시작이었다. 이어 대학들이 너도나도 담장을 허물고 지역사회에 교문을 열었다. 이젠 청룡연못 옆에서 어린아이가 뛰놀고, 중년 부부가 벤치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딸에겐 익숙한 풍경이다. 이제 담장은 없다. 정확히 말하면 눈에
선배가 그랬다. 길 위의 가로등 하나에서도 문제의식을 찾을 수 있다고. 그 만연한 것들을 이끌어다 기사를 쓰라고. 어리바리는 그날 각성했다. 주위를 기억하려 참 애썼다. 그의 휴대전화 속 사진첩을 보면 알 수 있다. 캠퍼스에 붙은 작은 딱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찍어두었다. 어리바리는‘기억에 대한 욕구’가 강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인간을 망각의 동물이라 부른다. 그만큼 인간은 쉽게 잊고 지우며 살아간다. 갈기갈기 찢기는 듯한 아픔을 마주해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는 것처럼. 게다가 스트레스가 심하면 기억력이 감퇴
흑석동에 뜨거운 뙤약볕과 함께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기자가 신문사에서 맞는 세 번째이자 마지막 여름이다. 카메라를 매고 캠퍼스를 돌아다니던 수습기자도 어느덧 한 부서의 부장이 돼 마지막 칼럼을 쓰고 있다. 2년 동안 신문 만드는 매주 주말마다 신문사의 불은 밤새 꺼지지 않았다. 고단한 신문사 임기 동안 나를 버티게 했던 것은 매주 일요일 아침, 소주 한잔 걸치고 자취방에 들어가서 하는 샤워였다. 주말 이틀 밤을 새면서 기름진 머리를 따뜻한 물에 감고 몸을 닦는다. 무엇보다도 마치 옛 중국 요순시절의 허유처럼 귀를 깨끗이 씻는데 공
9회 말 2아웃 상황.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온 9회지만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타이밍은 놓쳤고 서서히 패색이 짙어 보인다. 시간은 밤 11시를 향하고 있고 선수들 앞에는 몇 시간을 달려야만 도착할 수 있는 원정경기가 기다리고 있다. 매번 야구 경기를 챙겨보면서 이런 상황을 심심치 않게 본다. 그럴 때마다 종종 다음 경기를 먼저 생각하곤 했다. ‘역전도 못 할 텐데 차라리 빨리 지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게 낫지 않을까’, ‘총 144경기 중 한 경기 정도 지면 어떤가, 다음 경기를 잘하면 되지&r
‘여성혐오’는 ‘Misogyny’를 번역한 단어로 사회에 자리한 여성 차별적인 문화의 총체를 일컫는다. 단순히 누군가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감정을 뜻하는 ‘혐오’와는 다른 맥락이다. 보다 구조적이고 체계적으로 작동하는 불균등한 권력관계를 일컫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9일 서강대의 인권강연회 취소 사건은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를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라 볼 수 있다. 서강대 총학생회(총학)는 지난 10일에 인권주간 ‘만개’와 함께 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