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인모상(盲人摸象)’이라는 일화가 있다. 시각 장애인 네 명이 코끼리를 더듬으며 그 정체에 관해 토론했다. 꼬리를 만지던 사람은 “얇고 길쭉한 것이 밧줄이오.”라고 말했다. 옆에서 다리를 만지던 사람은 “밧줄이라니, 크고 단단한 것이 기둥이오.”라고 외쳤다. 과연 이들이 코끼리의 정체를 알아맞히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기자가 만나는 취재원도 맹인모상에 등장하는 시각 장애인과 같다. 취재원이 기자에게 전해주는 정보가 거짓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각자 입장에서 최대한의
새 학기를 코앞에 둔 지난해 8월 말이었다. 방학 동안 체중이 5kg가량 불어나 다이어트 계획을 세웠다. ‘매일 2시간씩 근력운동 하기, 3km 뛰기’ 등을 플래너에 적었다. 헬스장에 등록도 했다. 시작은 두려웠다. 우락부락한 ‘감찰반 형님’들이 자세를 지적하지는 않을까 겁이 났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에 위안을 얻어 운동을 시작했다. 막상 첫발을 떼니 순탄했다. 헬스장에서 수많은 운동기구를 하나씩만 사용해도 시간이 ‘뚝딱’ 흘러갔다.
신문사 일정을 마치고 밤 10시가 넘어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지하철 칸에는 늘 그렇듯 사람이 많았다. 한 아주머니가 이어폰을 끼고 동영상을 보면서 웃고 계셨다. 문제는 이어폰이 제대로 꽂히지 않아 동영상 소리가 지하철을 가득 메웠다는 점이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흘겨보기 시작했다. 얼굴 찌푸리며 쳐다보는 사람이 점점 늘어났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어폰이 잘못 꽂혔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이어폰 소리를 키우며 생각했다. ‘10분만 있으면 내릴 텐데 뭘….’ 환승역에 도착해 환승
친구들과 여행을 갔을 때 일입니다. 좋아하는 영화 음반을 사고 싶어 친구들이 밥을 먹는 사이 홀로 그 음반 재고가 있는 매장에 다녀왔습니다. 2시간 가까이 걸렸지만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때 사 온 음반에는 음악뿐 아니라 추억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CD를 넣으면 플레이어가 CD를 읽으며 작게 ‘지지직’ 소음을 냅니다. 그 찰나의 순간, 곧 흘러나올 음악을 기대하며 숨을 죽입니다. 곧이어 나오는 음악은 영화의 장면, 그 장면을 보며 느꼈던 감정, 그리고 음반을 사러 가던 기억을 살포시 건네줍니다. 플레이어 앞에
“안녕하세요! 중대신문 기자 정주ㄴ-”“저기요, 지금 저희 얘기하고 있는 거 안 보이세요?”차가운 눈빛과 가시 돋친 말투에 입이 안 떨어진다. 서럽다. 나를 소개하기도 전에 대차게 거절당했다. “짧은 인터뷰 도와주실 수 있나요?”“제가 이런 거 정말 질색하거든요. 진짜 못 하겠어요. 가볼게요.”앞에 있던 학생이 얼굴을 굳히며 자리를 뜬다. 미안하기까지 하다. 준비했던 인터뷰 내용은 이미 머릿속에 온데간데없다. 발을 옮기는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진
다시 월요일이다. 오늘 일정을 곰곰이 떠올려보자. 오전 수업을 듣고서 익숙한 사람과 함께 익숙한 메뉴로 점심을 먹을 것이다. 식사 후엔 또 어떠한가. 입안을 개운하게 한다는 명분으로 익숙한 카페에 들러 익숙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할 것이다. 다음 수업까지 시간이 남는다면 또다시 익숙한 공간을 찾아 익숙하게 시간을 때우지 않겠는가. 인간의 행동은 습관에 의해 형성된다. 색다른 시도를 해봐도 한두 번, 다시 돌아오기 마련이다. 타성이 무서운 이유다. 여기에 “아니야!”라고 외쳐보자. ‘갑자기?’라
지난 2016년 12월 중앙대 합격증을 받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당시 내가 생각하던 20살 대학생활은 꿈과 끼를 맘껏 발산할 수 있는 꽃밭이었다. 하지만 막상 대학생이 되고 떠밀려 입장한 곳은 자유방임주의의 치열한 경쟁 사회였다. 그 속엔 나와 비슷한 사람, 나보다 잘난 사람으로 가득했다. 스스로의 가치를 올려야 이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나를 더 치열하게 만들었다. 더 좋은 학점을 받고 더 다양한 스펙을 경험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노력할수록 점점 남보다 뒤처질까 두려워지고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사진에서 초점은 중요합니다. 하나의 장면이라도 초점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죠. 초점은 사진이 표현하는 바를 다르게 만들어줍니다. 이번 호에서 기자는 따릉이를 타고 서울 시내를 누비는 기획을 진행했습니다. 오늘 기자는 칼럼에서 서울시 공공 자전거인 ‘따릉이’의 부분 부분에 초점을 맞춰 보고자 합니다. 먼저 따릉이의 ‘기능’에 초점을 맞춰 보겠습니다. 따릉이는 하루 2만명 이상의 사람이 사용할 만큼 성공적으로 운영 중인 공공자전거입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너는 왜 기자가 되고 싶니?” 주변사람들이 종종 물어오는 질문이다. 왜 ‘하필’ 기자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속으로 프리다 칼로의 말을 떠올린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바뀌고, 움직이고, 회전하고, 떠오르고 사라진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고 여전히 변해야 하는 것들 투성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시작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목소리에서부터 온다. 재작년 대한민국의 온 거리를 환하게 밝힌 ‘촛불집회’부터 지난해 10월 시작되어 S
“다음 평가 때 ‘최상’ 등급을 받으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기자가 ‘2018 중앙일보 대학평가’ 기사를 맡으면서 학교 평가팀 관계자에게 건넨 질문이었습니다. 이내 우문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배점이 높은 평가지표에서 좋은 점수를 얻어야 합니다”라는 뻔한 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주요 언론사 소위 ‘조중동’은 각자 대학평가를 실행하고 있으며 그 중 중앙일보는 국내 언론 최초의 대학평가라 자부합니다. 대학은 평가 결과에
지난 18일, 대전광역시 시민들에게 재난문자가 도착했습니다. ‘금일 17:10분경 대전동물원에서 퓨마 1마리 탈출 보문산 일원 주민 외출 자제 및 퇴근길 주의 바랍니다.’ 대전에 사는 친구에게서 요란스러운 연락을 받았을 때 기자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채 30분도 되지 않아 퓨마는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후 실시간으로 퓨마를 추적하는 과정이 기사로 올라왔습니다. 마취시도 후 도망친 퓨마를 잡지 못했다는 기사를 보며 두 가지 걱정이 들었죠. 하나는 대전 시민의 인명피
지난 1일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대회 경기를 치른 선수들은 병역 특례를 누리게 됐죠. 국위선양 및 문화창달에 기여한 예술·체육 특기자는 군 복무 대신 예술·체육요원으로 복무 가능한 제도가 있기 때문인데요. 이 중 한 선수는 경찰청 야구단 입대를 준비했다가 포기하고 이번 아시안게임을 병역 혜택의 기회로 악용하려 했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체육계에서 시작된 이러한 병역 특례 논란은 예술계로 이어졌습니다. 최근 두 차례나 빌보드 차트 1위에
인권센터의 성희롱·성폭력 신고기한이 1년에서 10년으로 늘었습니다. 성희롱·성폭력 관련규정이 지난해 4월 개정되고, 기타 인권침해 관련규정은 2015년 7월 개정된 뒤 올 해 두 규정이 통합 및 정비된 결과입니다. 개정된 규정은 지난달 23일부터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개정은 이원화된 규정을 통합하면서 기존 규정의 맹점을 찾아 전반적으로 강화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자는 개정된 규정에서 새로운 맹점 하나를 더 발견했는데요. 바로 삭제된 예외조항입니다. 개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성희롱&m
기자 명함을 받은 지도 벌써 반년이 가까워 옵니다. 12번의 신문을 발행하는 동안 수많은 취재원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죠. 모든 취재원이 다 소중하고 기억에 남지만 그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한 취재원이 있습니다. ‘서울캠 생활관, 딱따구리 소음 해결 나서’라는 기사를 쓰기 위해 만났던 한 생활관 학생입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처음 딱따구리 기사의 취재지시를 받았을 때 황당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학교에 더 시급한 일이 많을 텐데 딱따구리가 집 짓는 것까지 기사로 써야 한단 말이야?’
기자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취재하러 다닐 일이 많습니다. 사진기자이기 때문이죠. 카메라를 들고 인터뷰를 요청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이거 얼굴도 나와요?”라고 되묻습니다. 얼굴이 나온다고 답하면 취재를 거절당하기 일쑤입니다. 사람들은 얼굴이 매체에 노출되는 걸 꺼립니다. 사진이 찍히면 삭제 버튼을 누르기 전까진 지워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죠. 이렇게 사진은 한순간을 포착해서 기록으로 남깁니다. 아마 이런 특징 때문에 사진이 언론에 활용됐을 겁니다. 언론에 사진이 들어가면 그 글은 큰 힘을 얻습니다.
기획부에서 ‘틀벗가기’를 맡고 있는 박수현 기자입니다. 틀벗가기. 혹시 이 단어가 생소하시다고요? ‘벗가기’는 테두리 밖으로 벗어나서 나간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틀벗가기에서는 먼저 틀에 갇힌 사람들을 찾아보고 누가 그들을 가뒀는지 즉, 틀이 생긴 원인을 알아봅니다. 마지막으로 틀의 패러다임을 전환해 틀을 어떻게 벗갈 수 있는지 살펴봅니다. 이번학기 기자는 사각지대에 있는 트랜스젠더를 주제로 기획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기자는 이들이 사각지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운동장의 벚나무가 온전히 녹빛이 되었다. 두어 달 전만 해도 길을 걷다보면 어깨 한 편에 연분홍빛 잎이 얹히었을 터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두 해째 보는 참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었고, 또 사귄 만큼의 사람들을 스쳐 보냈다. 바쁘다는 핑계로 집에 연락하는 횟수가 줄었다. 지금 걷는 기숙사 옆 가로수 길은 고등학교 때 기대했던 것과 완전히 같지도, 다르지도 않다. 그럼에도 바쁘게 남긴 발자국을 따라 많은 것들이 하나씩 하나씩 뒤에 버려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흙에 묻어나는 것들이 많아지자 길가의 가로등은 점차 어두워졌다.&lsqu
‘와, 이 친구는 여행 갔네. 좋아 보인다. 이 사람은 이렇게 많이 먹는데 날씬하다고? 얘는 너무 아름답다. 이 언니는 옷 진짜 잘 입는다. 감각을 타고났네. 그런데 나는…?’ 사람들은 행복해 보이는 지인들의 SNS를 볼 때 불행해짐을 느낀다. 지인들의 행복한 순간과 SNS를 보고 있는 나의 순간을 비교하고 부러워한다. 비교가 심해지면 자책한다. ‘지인들이 유의미한 시간을 보낼 때 나는 무얼 했는지. 아름답지도 않고 센스도 없어. 너무나도 평범해. 평범하다 못해 못났어. 나는 왜 이런 걸
지난 27일 문헌정보학과 전공기초 수업에서 약 40명의 학생이 사라지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 호그와트도 아니고 중앙대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이 신비로운 마법의 비밀은 바로 ‘교수’에 있다. 학계의 거장이라는 문헌정보학과 A교수는 자신이 언급한 소설책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40여 명의 학생을 결석처리 하겠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출석을 했음에도 결석이 되는 아이러니하고 마법 같은 상황에 놓였다. A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출결은 교수의 재량에 따라 처리할 수 있다며 문제가 되지 않는
가볍게 내뱉는 말에 상처받는 우리말을 내뱉기 전 언총을 떠올리자“네가 없는 게 나한테 도움 주는 거야”, “넌 키도 몸매도 괜찮은 것도 아닌데 공부는 더더욱 아니야. 너는 잘난 게 뭐가 있어?” 나는 다른 사람이 툭 건네는 ‘말’ 한마디에 웃고 운다. 그리고 웃게 하는 말보다 울게 하는 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심하게 울 때면 자책하며 괴로워한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그럴 것이다. 이렇듯 우리의 기분을 좌지우지하는 말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무거울 수밖에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