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해 올해 내 생활은 지난해 신입생 시절과 180도 다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숙사 생활을 하며 동기들과 함께 대면 강의를 들었던 지난해 달리, 올해는 본가에서 혼자 비대면 강의를 들으며 지루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지난해와 너무 비교되는 일상에 한없이 우울해지기도 했으며, 유일한 낙인 캠퍼스 생활을 하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들어서 은연중에 ‘올해는 정말 별로였다’고 생각을 해왔다. 하지만 올해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한 해를 되돌아보니,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이번 여름방학 동안 나 자신을 개혁했다. 아침저녁으로 정해진 시간에 운동을 했고, 사이의 시간에 독서를 했다. 잠깐, 여기서 누군가는 내가 무엇을 개혁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그저 나는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했기 때문이다.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질문을 하나 해보자. 개혁이란 무엇인가? 다음의 사례를 살펴보자. 재생 수에 따라 노래의 순위가 정해지는 음원 스트리밍 시장이 있다. 잘 작동되던 시장이었지만, 어느 날 몇몇 아이돌 그룹이 팬덤의 성원에 힘입어 음원 차트의 상위권을 차지했다. 소수의 그룹이 음원 시
소녀의 용기 한 소녀는 모자에 들어가 나오질 않는다 자신의 빛을 감춘 채 자신의 영혼 조각을 주머니에 숨긴 채 검은 모자에 숨어버린다 안개꽃이 산책하던 어느 날, 파랑새 한 마리 모자 속 소녀에게 다가와 하는 말 소녀, 그대는 세상을 등지지 마소서 그저 밝음의 씨앗을 마음껏 즐기소서 노을 빛 바람에 우아하게 누워있는 저 별빛처럼 요즘 거리를 걸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동자를 바라보면, 마치 한 맺힌 유리구슬 같이 슬픔이 서려 있다. 또, 눈에는 그동안 자신이 의식했던 타인의 모습이 겹쳐져 여러 개의 잔상으로 맺혀있다. 이들은 시간을
뜻밖의 제안이 왔다. ‘나도 한마디’에 글을 하나 써달라는 것이었다. 쓰는 것에 재주가 없어 거절하려 하였으나, 주제가 자유라는 점과 졸업 전에 한 번쯤은 이라는 생각에 수락했다. ‘무슨 이야기를 할까‘와 ’남는 건데 조금은 있어 보이게 쓰겠다‘는 부담감 사이에서 한 글자도 못 쓰고 있을 때, 노트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학생회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한 노트였다. 읽다가 근거 없는 자신감이 떠올랐고, 내가 느낀 학생사회의 변화에 대해 적기로 했다. 요즘은 모든 게 편리
나는 현재 작/편곡가로 활동 중인 음악대학 작곡전공 학부생이다. 예술을 만들어가는 모두가 고독한 시간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나에게 곡을 써내려가는 일은 마치 마음을 도려내는 것만 같은데, 순간의 나의 감정들을 오선지에 온전히 풀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나는 감정과 작품을 분리시키지 못한 채 내 상상력을 그대로 음악에 녹여내기 때문에 그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럽다. 그렇게 수 시간, 몇 날 며칠을 고민해서 곡 하나가 탄생하고, 나의 곡이 무대에서 연주자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될 때면 괴로웠던 시간들은 언제 그랬냐
2020년 2학기, 나는 휴학을 결심했다. 이 짧은 글에 모든 내용을 다 담을 수는 없겠지만, 2학년이 다 가기 전에 휴학을 하게 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마침 좋은 기회로 교내 언론에 별 볼 일 없는 휴학생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다. 설레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다. 제목 그대로다. 나는 휴학을 결심했고 이미 휴학에 대한 결재가 완료됐다. 입대 예정일은 내년 2월 중순. 그러나 나는 여전히 휴학에 대한 생각을 바꿀 의향이 없다. 주변에서 왜 이런 결정을 하게 됐냐고 물을 때마다 표면적인 이유로는 코로나
저는 안성에 사는 84학번 역사학과 출신 졸업생입니다. 중앙대학교 졸업생이자 안성시민인 셈입니다. 제가 졸업한 모교와 안성이 동시에 발전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이 편지를 씁니다. 동탄-안성-진천-청주공항간 국가철도 유치를 위해 안성 시민들은 ‘범시민유치위원회’를 작년 11월 발족하여 지금까지 1만3000여명 유치서명을 받았습니다. 충북 진천군도 별도로 1만1000여명 유치서명을 받았습니다. [동탄-안성-진천-청주공항]을 잇는 수도권 내륙선 철도는 총 연장 78.8km 구간에 국비 2조5000억원을 투입해
터무니없는 일이 반복된다면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외국인 유학생 등록금 인상과 관련한 대학본부의 세 가지 사건이 그렇다. 첫번째는 직접 겪었던 일이다. 18년 학내언론 중앙문화의 기자 신분으로 기획팀 장우근 팀장에게 유학생 등록금 인상 근거를 물었었다. 그는 지금껏 등록금 인상에 있어 근거를 대도 학생들은 “단 한번도 동의한 적이 없었다”며 “숫자로 뽑아낼 의미가 없다”고 답했다. 당당함이 놀라웠다. 두번째 일은 스스로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던 원칙마저 무너뜨린다. 대학본부는 유학생 등록금
필자는 ‘뉴 노멀’이라는 단어를 지난 2008년에 처음 접했다. 과거의 고금리, 고성장이던 세계 경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급격하게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처럼 특정 사건을 계기로 정착된 새로운 사회적, 문화적 환경을 뉴 노멀이라고 한다. 우리는 새로운 뉴 노멀을 맞이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전 세계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고성장에서 저성장으로의 변화였다면, 코로나19는 공유에서 언택트로의 변화다. 이전에 우리는 누구의 집을 빌리기도 했고, 차를 얻어 타기도 하며 재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나를 다른 장애인들과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주체성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남들과 다른 것은 당연하다. ‘장애인은 ~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를 다르게 바라본 것이다. 이런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것이 바로 장애인식개선교육이다. 지난 학창 시절 여러분은 거의 모두 장애인식개선교육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경험, 일반화 등 잘못된 인식은 생각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퍼진다. 내 경우를 이야기하자면, 내가 어렸을 때는 장애인이 왜 존중을 받아야 하는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는 지금, 막대한 자본을 동원해 조성한 공연 무대의 바리케이드 뒤에서 아티스트에 열광하는 학생들도 아직 많지만, 연인과 혹은 친구들과 길거리 문화를 즐기고 축제의 전 기간, 캠퍼스 곳곳에 걸친 기획전을 통해 축제를 기억하고 천천히 둘러보는 학생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광장의 여러 부스는 학업, 취업난으로 하루를 통째로 쓰기 다소 부담스러운 대학생들에게 짧은 공강 시간, 등하교시간에도 축제 분위기를 느낄 기회를 준다. 예전과 달리 무대 페스티벌 적인 전국적 대학 축제보다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주는 길거리
학생자치는 언제나 움직인다. 해마다 다른 기조를 내건 학생회가 등장하고 구성원은 교체된다. 사회에 어느 것도 달라지지 않는 것은 없음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고여있지 않고 흐르는 물이 건강하듯, 학생자치 역시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이 순환할 때 건강해진다. 그러나 흐름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틀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원칙이 없지는 않다. 학생자치에 원칙은 있다. 학생들이 안전하게 공부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 선출직이라는 명목으로 주먹을 휘둘러선 안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과연 중앙대 학생자치는 이 두 가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중앙대도 대면 강의를 세 번이나 미뤘다. 대학생들이 난데없이 온라인 개강을 맞은 것처럼 우리 생활은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마스크가 없으면 외출할 수 없고, 타인과 만남은 자제되며, 기침이라도 하면 경계의 시선을 받는다. 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재난 상황은 누군가에게 기회로도 작용한다. 발 빠른 이들이 마스크를 사재기해 값이 폭등했고, 품귀 현상이 일어났다. 마스크 사재기를 한 사람들에게 양심이 없다는 비난은 별로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기회를 잡은 것뿐이지
나는 주말마다 편의점에서 일한다. 누구나 편하게 방문할 수 있는 장소라 그런지 정말 많은 유형의 사람을 만나게 된다. 대부분 친절하게 대해 주지만, 가끔은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는 손님도 있다. 그중 제일 기억에 남는 손님은 나한테 심한 욕을 했던 아주머니다. 아주머니는 우리 매장에서 사지 않은 물건을 들고 와서 환불해 달라고 했다. 포스기의 구매 내역, CCTV 어디에도 아주머니의 흔적이 없어 당연히 환불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어떻게든 해 달라고 억지를 부리며 욕을 했다. 내 잘못이 아니기에 더 화가 나고 답답했다. 아주머니와
지난 1일 대학본부는 온라인 강의를 추가 연장했다. 대학본부는 학사 일정을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 결정하겠다고 했지만, 학생들의 의견을 직접 물어왔던 것은 단 세 차례의 간담회뿐이었다. 그마저도 지난달 30일 이루어진 총장간담회에는 중앙운영위원회(중운위) 위원 중 총학생회장 단 한 명만이 참석할 수 있었다. 개강 연기가 결정된 이후 두달 동안 중운위에서 대학본부를 직접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지난달 25일이 처음이었다. 처음부터 중운위에서는 지속해서 대학본부와의 대화를 요청해왔으며, 지난달 23일에는 중운위의 요구안을 전달했다. 그러
사람들은 대학교를 흔히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표현한다. 특정 이념에 휘둘리지 않고 학술적인 측면에 집중하게 해주는 대학교의 본 역할에 붙여진 별칭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별칭이 무색할 정도로 대학교가 변화하고 있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학업보단 놀기에 바쁘며, 배움을 위한 공부가 아닌 취업을 위한 공부를 하고, 취업을 위한 활동 쌓기만 심화되고 있다라며 한숨짓는 이야기였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질문이 떠올랐다. 어른들의 말처럼 대학은 오직 진리의 상아탑이어야 하는가? 우리에게 대학이란
졸업이 나에게 있어 화려하진 않지만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4년이라는 기간을 쉬지 않고 단번에 달려와서 일지도 모르겠다. 4학년을 마치고 내 삶이 갑작스러운 변화를 맞게 된 것도 아니다. 작은 일상의 변화들에 있어 졸업이 그 이유나 동기가 되었던 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이런 생각은 나를 ‘대학 졸업이 무슨 의미가 있지?’, ‘내가 학교를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이지?’라는 고민에 빠지게 했다. 지금부터는 앞서 제기한 의문에 대해 내가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을 적어보고자 한다
지난 2018년 중앙대엔 8건의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됐고, ‘충분히’ 성평등 해졌다는 학교는 어떤 이들에겐 여전히 안전하지 않다. 공론화된 사건만 8건이라니? 얼마나 더 많은 학우가 힘들어하고 있을지를 생각하며,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자 지난해 서울캠 성평등위원회(성평위) 위원장을 맡았다. 성평위에선 성평등 문화 확산을 위한 중앙대 학생회칙의 활용을 위해 을 제작했다. 도 제작해 배포했다. 가천대 한의과대학 학생회의 인권위
‘후회할 것 아니냐, 다시 생각해봐라’ 이 말은 필자가 건축학부 건축공학과로 재학하다 건축학과로 전과를 결심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안정적인 대기업 취업이 보장되는 건축공학과를 포기하고 왜 건축학과로 전과하느냐는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있었다. 그들은 오해하고 있다. 필자는 건축공학과를 포기하지 않았다. 필자의 꿈은 구조와 설계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건축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법률상 건축구조(structure)와 건축설계(design)를 한 사람이 겸업할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선과 악의 대립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선’을 의미하는 지킬 박사가 완전한 선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킬 박사는 자신의 쾌락을 위해 하이드라는 ‘악’을 탄생시키고 이 악을 숨겨주기 위해서 노력한다. 나 그리고 우리는 위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우리라는 존재는 ‘불안정한 선’을 의미한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사람들은 특정한 상황에서 ‘악의적인 행동’을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 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