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학기 기자에겐 새로운 취미가 생겼었습니다. 취재를 끝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복권 한 장을 구매하는 일입니다. 학업과 신문사 업무 병행으로 지친 기자에게 요행을 바라는 마음은 사치가 아니라며 복권방의 문을 매주 두드렸죠. 복권은 새벽을 지새우는 기사 마감과 조판 일정이 있어도 설레는 토요일 저녁을 기다리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복권은 행운을 가져다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요행은 한 학기 동안 지역보도부와 문화부 기자로서 학교 밖을 나섰을 때 일어났죠. 지역보도부 첫 기획기사로 성대골 에너지자립마을을 취재할 때였습니
종종 세계가 무성영화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지하철 안이 고요해지고 이어폰에서 터져 나오는 음악 선율은 사라진다. 몽롱한 정신으로 한 곳을 응시하다 고개를 들면 어느새 상도역에 도착해 있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후문 언덕을 오르고 수업을 듣다 집으로 돌아간다. 하루가 마치 각본 같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이런 상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이 모든 상황은 잘 짜인 연극이 아닐까.’ 공허함이 몰려왔다. 그래서 신문사 활동에 더욱 집착하게 됐다. 항상 새로운 이슈가 쏟아지고 다양한 취재원을 만날 수 있다는
‘미디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의미를 만들어낸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전공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입니다. 미디어는 세상의 무수히 많은 정보 중 극히 일부만을 선택해 자신의 관점대로 보도합니다. 따라서 하나의 사실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중요하다는 점을 배웠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겠다는 다짐으로 여론부 기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기자는 바라던 대로 하나의 주제를 두고 다양한 가치관을 들어보는 ‘2019 당신의 선택’이라는 시민 게릴
‘영혼 없는 대화’라는 말을 들어봤는가? 흔히들 진심이 담겨있지 않은 대화를 이렇게 표현한다. 영혼 없는 대화 속 가치 있는 상호 작용은 대개 이뤄지지 못한다. 영혼이 없다는 뜻은 집중하지 않는다는 의미고, 집중하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공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감이란 타인의 감정이나 의견에 본인도 이입하는 행위로 대화의 질을 결정하는 필수 요소다. 지난 7주의 신문 발행 기간 동안 기자는 문화부에 몸을 담았다. 자신만의 생활을 영위하는 족장부터 거리의 상인을 비롯한 다양한 관계자까지 다채로운 만남을 경험했다.
땅에 사는 동물이 바다에 뛰어들기란 어려운 일이다.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생태계로 들어간다는 자체가 하나의 모험이다. 지면을 주 매체로 삼던 기성 언론이 뉴미디어라는 새로운 생태계에 들어서는 일 역시 쉽지 않다. 언론사에 뉴미디어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상식이 됐다. ‘신문은 대중매체’라는 말이 무색하게 오늘날 대중들은 신문보다 인터넷에서 주로 살아간다. 글자는 분명 나름의 장점이 있으며 문자 매체가 사라질 일은 없겠지만 ‘지면’이 점차 줄어들고 있음은 분명하다. 반면 뉴미디어는
중대신문에 들어가게 됐다는 기자에게 학과 동기들은 “요즘 누가 신문을 읽냐”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돌이켜 보니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310관 1층 배부대가 완전히 빈 적은 없었습니다. 소속감 때문인지 동기들의 말에 속상하기도,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의문이 들었습니다. 항상 남는 신문을 위해서 그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일이 효율적인지에 대해서 말이죠. 하지만 그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취재과정에서 신문은 여전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대학보도부 정기자로서 처음 만났던 취재원
축하할 일이 생겼습니다. 드디어 중대신문 뉴미디어부의 목소리가 들어간 콘텐츠가 나왔습니다. 바로 ‘소담소담’입니다. 이번 학기부터 뉴미디어부는 직접 기획하고 취재해 독자적인 시사 콘텐츠를 만들자는 취지로 다큐멘터리 제작에 돌입했습니다. 영상이 글에 비해 파급력이 크고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상대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소수자의 이야기를 담기로 했습니다. ‘의약품 점자표기 의무화’를 주제로 첫 프로젝트가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뜨거운 첫 도전에 찬 물을 붓는 고비가 많았죠. 인
기자는 개강 후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문화부에 들어와 매주 기사를 준비하면서 학교 수업과 봉사활동, 영어 회화 과외를 병행해야 했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바쁘게 살아내고 나면 일요일에는 그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들을 봐야 했습니다. 다이어리에 일정이 쌓여갈수록 바쁘게 살고 있다는 뿌듯함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 쪽엔 무언가 찜찜한 느낌이 자리 잡았죠. 잘 하고 있는 건지, 등 떠밀려 살고 있는 건 아닌지 헷갈렸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어느 수요일이었습니다. 취재처는 전화를 받지 않고 수많은 상점
얼마 전 친구에게 선물 받은 무드등을 켜 봤다. 포장을 뜯고 기뻐한 지는 한참 지났는데 보름이 지나서야 전원을 눌러 보게 됐다. 그 동안 선물 받은 등을 켜 볼 시간도 없었나. 돌이켜보면 그것도 아니었다. 등이야 버튼 하나 딸깍 누르면 켜지는데, 전원을 킬 수도 없을 만큼 바쁜 삶을 사는 중은 아닐 테다. 선물을 가져오는 길에 ‘이 등을 처음 켜는 순간에는 그 아래서 책을 읽고 일기를 써야지’ 하고 다짐했다. 반드시 완벽한 새벽을 보내고 싶었다. 그 다짐이 자라난 순간부터 무드등 켜기는 숙제가 돼 버렸다. 책
‘무겁다.’ 첫 기사를 쓰면서 느꼈던 감정입니다. 취재지시를 받았을 때와 사뭇 달랐죠. 단어 하나를 선택하는 데도 조심스러웠고 매끄러운 문장을 만들기는 더욱 어려웠습니다. 머뭇거리던 손가락이 결국 멈춰버렸습니다. 자신감 넘치던 기자가 한순간에 어리숙한 소년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 명의 취재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소 서투르나 열렬히 목소리를 높이던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지키고 싶다”며 투쟁을 이어가고 있었죠. 기자는 그 사람의 목소리를 빌렸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모두
지난 두달 동안 ‘한·일 경제전쟁’이라는 키워드가 뉴스를 가득 채웠습니다. 한·일 외교 관계 속 수많은 일이 있었죠. 다수의 국민은 마음을 모아 불매운동을 일으켰고 일제 강제동원 피해 역사를 되새겨보자는 의지도 보였습니다. 기자는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이번 주에 일제강점기 안성에서 전개된 항일운동을 다루는 기사를 썼습니다. 무단통치의 어둠이 한반도를 덮었던 1919년, 안성의 항일운동은 한 줄기 빛과 같았습니다. 안성의 구국정신은 독립운동의 초석이 됐죠. 취재 과정에서 “사료
“당신은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해요.” 영화 를 보다 마음에 와닿은 대사다. 소설작가 ‘유달’은 까칠하고 무례한 성격으로 주변 사람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코넬리’만이 유달의 강박적인 태도를 보듬어줬다. 못난 자신에게 마음을 열어준 코넬리를 사랑하게 되면서 그의 괴팍한 태도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삶이 바뀌어 가던 어느 날 유달이 코넬리에게 어렵게 말을 꺼낸다. &
초등학생 때 알림장이 싫었다. 알림장에 적힌 숙제도 준비물도 아닌 짧은 메모 때문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알림장 검사를 할 때면 도장을 찍어주시며 메모를 남기셨다. 메모에 칭찬이 적힌 날이면 신이 나 학교에서의 하루를 세세히 부모님께 전했다. 하지만 “반찬을 골고루 먹지 않아요”와 같이 부정적인 문장이 적혀있는 날이면 어떻게든 핑계를 만들려 안간힘을 썼으며 유치한 핑계 끝에 선생님이 별로라는 결론까지 다다르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지금 여기 알림장을 챙기는 초등학생 대신 취재수첩을 든 기자와 취재원이 있다.
우리 동네 외국인 노동자 한 명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그는 정확히 매일 오전 6시45분, 내가 타던 통학 버스로 매일같이 출근하던 청년이었다. 근무 태만이 해고의 원인이었다지만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었다. 그 청년은 왜 실업자로 내몰려야 했나. 그날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는 한 유명 연예인의 결혼식. 아차, 우리 동네에서 외국인 노동자 부당해고는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메이저 언론은 물론 지역신문에조차 베트남계 노동자의 이름은 실리지 않았다. 사회 구조가 만든 부당함보다 연예인 결혼식이 ‘이슈&rsqu
취재를 위해 카메라를 메고 다니면 많은 시선을 받게 됩니다. 크고 눈에 띄는 DSLR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호기심 어린 눈빛 속에 숨은 불쾌감과 방어적 태도를 분명히 읽어낼 수 있습니다. 촬영을 위해 카메라를 들어 올리는 순간 그 눈빛은 노골적인 눈총으로 바뀝니다. 괜히 눈치가 보여 머뭇거리다 결정적 순간을 놓쳐버리기도 하죠. 지금은 적응이 돼 뻔뻔하게 촬영하기도 하지만 매번 쉽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최근 불법 촬영이 중대한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카메라를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습니다. 사진기자 역시 예외가 아니죠.
‘거·속·시, 소금물 농도 구하기’, 고등학교 졸업 이후 정말 오랜만에 보는 문제들이다. 서점에서 우연히 본 인·적성 고사 문제였다. GSAT, HMAT, SKCT 등 기업별로 시험 이름도 참 거창하다. 들어보니 대기업 취업을 위해서는 수많은 절차를 거쳐야 한단다. 인·적성 고사 인터넷 강의, 토론 면접 대비 수업 등 기업들의 채용절차가 복잡해지면 학생들도 그에 맞춰 준비하느라 바빠지는 모양이다. 우리는 전형적인 ‘피로사회’에 사는 현대인이
가계부를 정리하다 교통비 때문에 놀랐다. 지난달 교통비가 43만원이 나왔다. 방학 때 고향에서 가족들이랑 설날 지낸 것 외엔 별거 없었는데? 아 맞다! 집과 학교를 두 번 왔다 갔다 했다. 학교에 갈 때마다 왕복 약 20만원의 지출이 발생한다. 가계부를 적으면서 본인이 제주도민이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기억해낸다. ‘중앙대 제주향우회’는 비싼 교통비를 감당하면서도 서울에 온 같은 처지인 사람들의 모임이다. 회원들에게 서울에 온 이유를 물어봤다. 대부분 공통된 답을 해줬다. “말은 제주로 사람은 한양으로.
“네 딸이라니까, 네 딸!”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보며 수십 번은 외친 말이다. 모든 드라마에는 ‘고구마’ 장면이 있다. 시청자도 아는 사실을 주인공만 몰라 고구마를 입에 욱여넣은 듯 목이 탄다. 극이 전개되려면 꼭 필요한 장면이지만 매번 답답함을 느낀다. 고구마 장면을 애써 회피하는 이유다. “이 장면 끝나면 말해줘.” 답답함을 참지 못해 거실에 함께 누워 드라마를 시청하던 오빠에게 투덜거린다. 고통을 감내하고픈 생각은 없었다. 얼른 진실이 밝
‘맹인모상(盲人摸象)’이라는 일화가 있다. 시각 장애인 네 명이 코끼리를 더듬으며 그 정체에 관해 토론했다. 꼬리를 만지던 사람은 “얇고 길쭉한 것이 밧줄이오.”라고 말했다. 옆에서 다리를 만지던 사람은 “밧줄이라니, 크고 단단한 것이 기둥이오.”라고 외쳤다. 과연 이들이 코끼리의 정체를 알아맞히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기자가 만나는 취재원도 맹인모상에 등장하는 시각 장애인과 같다. 취재원이 기자에게 전해주는 정보가 거짓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각자 입장에서 최대한의
새 학기를 코앞에 둔 지난해 8월 말이었다. 방학 동안 체중이 5kg가량 불어나 다이어트 계획을 세웠다. ‘매일 2시간씩 근력운동 하기, 3km 뛰기’ 등을 플래너에 적었다. 헬스장에 등록도 했다. 시작은 두려웠다. 우락부락한 ‘감찰반 형님’들이 자세를 지적하지는 않을까 겁이 났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에 위안을 얻어 운동을 시작했다. 막상 첫발을 떼니 순탄했다. 헬스장에서 수많은 운동기구를 하나씩만 사용해도 시간이 ‘뚝딱’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