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형, 파리를 사랑하십니까?” “김형,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십니까?”. 1960년대 겨울, 서울의 허름한 선술집에서 만난 청년들의 대화. 그런데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괴이하다. 형체 없는 의미의 단순 배열이 대화의 주를 이룬다. 김승옥의 단편소설 에 등장하는 청년들의 대화다. 이들의 대화가 부자연스러운 데에는 이유가 있다. 연대가 소멸한 공간에 남겨진 냉소와 회의가 상실감과 허탈감을 유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대적 배경이 다른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소설을
유난히도 길었던 겨울을 보내고 새로이 맞이하는 봄. 봄 내음을 맡으면 새로움, 출발, 희망과 같은 노란빛 단어들이 떠오른다. 매해 돌아오는 봄일지라도, 사람들은 또 다시 설레는 마음으로 머릿속에 한 해를 그려본다. 그러나 올해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코로나19와 공존했던 지난 1년 동안의 시간이 여전히 끝나지 않은 상황 속에서, 다시 돌아온 봄에 우리의 마음은 더욱 무겁기만 하다. 봄의 설렘이 사라진 자리에는 지친 마음과 근심 걱정이 가득하다. 봄을 맞아 활기 넘쳐야 할 학교에는 학생이 없다. 올해도 교정을 거닐 수 없기 때문일까
“핸드폰 좀 그만 봐!” 엄마의 잔소리 혹은 당신이 다이어리에 써놓은 문구일지도 모른다. 이상하다. 무슨 법칙 마냥 ‘여기까지만 봐야지’ 다짐하는 순간 당장 클릭하고 싶은 콘텐츠가 눈에 띈다. 그렇게 신나는 인터넷 서핑을 즐기다가 훌쩍 지나간 시간을 확인하고 자괴감에 빠진다. 이게 과연 의지의 문제일까? 만약 중독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이라면? SNS를 들여다보자. 인스타그램의 돋보기, 페이스북의 워치 페이지, 유튜브의 추천 영상 목록. 이들은 모두 ‘알고리즘’ 아래서
에브리타임(에타) 내 악성댓글이 결국 한 대학생의 목숨을 앗아갔다. 우울증을 앓았던 서울여대 A학생은 지난해부터 위로를 얻고자 에타에 글을 올렸다. 그러나 돌아온 답글은 ‘티 내지 말고 조용히 죽어라’, ‘죽고 싶다는 말만 하고 못 죽네’였다. 10월 8일 그는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A학생은 ‘온갖 악플에 많이 괴로웠다’며 악플러를 처벌해달라는 유서를 남겼다. 현재 대학 커뮤니티 중에서 에타가 차지하는 점유율은 굉장히 높다. 대학마다 공식 커뮤니티가 있어도 에
드라마 속 착한 주인공. 그 옆엔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역이 있습니다. 악역이 없으면 드라마는 왠지 심심하게 느껴지죠. 두 역할의 대비는 드라마의 재미와도 연결되기 때문에, 시청자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선과 악을 명확히 인식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선과 악, 옳고 그름, 흑과 백을 명확히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수박을 반으로 쪼개듯 세상일이 단순했다면 기자의 고민도 금방 쪼개졌을 겁니다. 기자로서 가장 큰 고민은 기사의 방향, 즉 ‘각’을 어떻게 정하냐였습니다. 어떤 내용을 전달할지, 단순히 정보
식탁 앞에 앉기가 두렵다. 음식을 씹고 넘기는 것에 죄책감이 든다. 하지만 곧 음식 앞에서 이성을 잃고 미친 듯이 흡입한다. 거울 속 띵띵 부은 모습이 혐오스럽다. 결국 변기를 붙잡고 모든 걸 게워낸다. 섭식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의 일상이다. 우리 주변에 흔히 존재하는 그들은 왜 이렇게까지 음식과 몸에 집착할 수밖에 없을까? 최근 들어 ’대식가 먹방‘이 유행이다. 마른 몸매의 여성이 라면 20봉지를 거뜬히 해치우는 모습은 충격이면서 신기했다. 이후 수많은 대식 먹방 유튜버, BJ들이 쏟아져 나왔고 점점 대식의
많은 이들이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급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하려 노력 중이다. 하지만 지금, 지구는 어느 때보다 크게 비명을 지르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배달·택배 주문이 증가함에 따라 일회용품 쓰레기가 크게 늘었다. 환경부에 따르면 올해 1~6월 폐비닐은 약 11.1%, 폐플라스틱은 약 15.16% 증가했다. 올바르지 못한 분리수거도 한몫했다. 음식물이 묻은 포장 용기나 비닐은 재활용하기 힘들다. 재활용할 수 없는 쓰레기는 태우거나 그대로 땅에 묻어야 해서 지속적인 환경오염을 일으킨다. 무심코 쓰고 버린 종이컵
「대한민국헌법」 제1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중략)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평등’이 헌법의 핵심 원리임을 천명한 바다. 6월 29일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바로 이 평등을 구체화하는 법안이다. ▲성별 ▲장애 ▲종교 ▲성적지향 등 23가지 사유로 인한 ▲고용 ▲교육 ▲재화 이용 ▲행정서비스 분야에서의 차별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기존에도 「장애인차별금지법」, 「양성평등기본법」 등 개별적인 차별금지법이 존재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조심스러운 세상입니다. 2년 전, 풍경과 함께 손을 찍은 사진 게시물에 게시자의 친구가 ‘너 손 예쁘다’라고 댓글을 달았다가 논란이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게시자가 ‘예쁘다’는 말이 성희롱이라고 하자 누리꾼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졌죠. 이후 기자도 의도와 다르게 들려 오해할 만한 상황이 연출될까 봐 가까운 친구에게도 ‘예쁘다’는 말을 하기가 망설여졌습니다. 말에 악의가 없어도 듣는 사람이 불쾌했다면 불쾌한 말이 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ls
3일 코로나19 2차 재난지원금 선별 지급이 결정됐다.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인해 매출에 큰 피해를 본 자영업자 및 소상공인에 재난지원금을 지원하기로 가닥을 잡았으나 이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재정이 그리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미 약 14조3000억원 규모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바 있다. 1차 지급처럼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지원금을 지급하려면 국가는 빚을 내야 한다.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은 “1차 재난지원금 지급 때와 비슷하게 지원금을 지급하게 되면 100% 국채발행에 의존할 수밖에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 최숙현 선수가 숨진 지 2달째다. 진실을 밝혀달라는 최 선수의 염원은 어디로 가고, 체육계의 현실은 여전하다. 문제를 덮고 책임을 회피하는 체육협회. 사실을 알고도 방관했던 수사당국. 아직 갈 길이 멀다. 일벌백계하지 않으면 폭력의 굴레는 계속된다. 제2의 최 선수가 나오지 않도록 체육계의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다. 최 선수의 폭로는 체육계에 만연한 폭력 문제를 다시 일깨웠다. 그 이전에도 식사 중 자신에게 밥풀이 튀었다는 이유로 후배를 폭행한 일, 체중이 불었다는 이유로 빵을 먹고 토
스테이시가 기억에 남을 명연설을 하기 위해 연단에 오르자 장내는 일순간에 고요해집니다. 리사 심슨을 포함한 어린 소녀들의 사랑 ‘말리부 스테이시’는 미국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의 말하는 인형입니다. 리사의 기대가 무색하게 스테이시는 생뚱맞은 말만 내뱉습니다. “남자들이 우릴 좋아하게 화장품을 사자” “생각 많이 하면 주름만 늘어” 리사는 가족과 친구에게 스테이시의 발언을 지적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리사는 주변인의 외면에도 포기하지
사진을 매개로 휴머니즘을 추구한 윌리엄 유진 스미스. 그의 검지가 포착한 찰나의 순간은 세상을 이롭게 바꿨습니다. 신문이라는 매체에서 사진이 가진 파급효과는 엄청납니다. 사건을 포착해 한 장의 사진으로 보여주는 보도사진은 세상의 변화를 촉구하는 목적으로 사용되곤 하죠. 하지만 일부 보도사진에 빈곤 포르노적 요소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지난 1994년 퓰리처상 수상작인 「독수리와 어린 소녀」를 예시로 들어보죠. 작품에는 뼈만 남은 몸으로 한줌의 지푸라기를 부여잡고 생존을 갈망하는 소녀와 그녀의 죽음을 기다리는 듯한 독수리의 모
집에서 뒹굴뒹굴하다가 시계를 봅니다. “아 이제 수업 시간이지” 기자는 노트북을 켜 학교에 접속합니다. Zoom을 통해 강의를 듣다가 수업이 끝나면 창을 닫습니다. ‘띠링-’ LearningX에 새로운 과제 공지가 올라왔습니다. 마감기한을 확인한 뒤 학교와의 접속을 끊습니다. 이는 비대면 수업의 흔한 모습입니다. 학교는 이제 사이버 공간으로 변모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노트북을 끌 때, 중앙대를 향한 관심도 같이 꺼진 건 아닌가요? 이번주 중대신문에서는 서울캠 총학생회(총학)
예술가로서 참 살아남기 힘든 현실이다. 어쩌면 살아남는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할 수도 있다. 매년 젊은 예술가들이 큰 꿈을 안고 예술대학을 졸업한다. 그러나 사회초년생 예술가들이 자신의 세계를 펼치기에 현실은 만만치 않다. 방음이 되거나, 악기를 보관할 연습실, 사람만 한 화판을 둘 공간과 같은 환경을 갖춘 작업실의 월세와 재료비는 큰 부담이 된다. 더욱이 자신만의 창작물을 대중에게 발표하려면 창작 준비금이 없이는 시도조차 힘든 현실이다. 결국 살아남으려면 계속해서 돈을 써야 한다. 실제로 여러 문화재단에서는 예술가들을 위해 &lsq
그날 전 씨는 화덕에 몸을 던졌다. 전 씨는 ‘평화’ 마을에 있는 ‘낙원’ 파이 가게 제빵사였다. 들숨에 야근을, 날숨에 2교대 근무를 하며 재료를 옮겨 반죽하고 굽기를 반복했다. 점심은 공장에서 나오는 무말랭이에 조밥, 저녁은 집에서 가져온 주먹밥을 먹었다. 뼈가 닳도록 일하고 제대로 끼니를 챙기지 못한 사람들은 무말랭이보다 시들시들했다. 짧은 점심시간에는 억지로 공을 차고 놀아야 했다. 하루, 한 시간도 쉴 수 없었다. 마을에는 유명한 파이 거리가 있었다. ‘낙원’
‘이런 내 맘 모르고 너무해’ 이는 지난 2016년에 크게 흥행했던 노래 ‘TT’의 가사 중 일부입니다. 짝사랑하는 사람이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과 투정을 재치 있게 표현한 가사죠. 그런데 여기에는 모순점이 있습니다. 바로 솔직한 마음을 상대방에게 표현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상대방이 독심술사도 아니고 약간의 힌트라고 할 수 있는 행동과 말투 등을 통해 내 마음을 완전히 파악하길 바라는 심리는 욕심이기 때문이죠. 이처럼 누군가에게 솔직한 진심을 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솔직하기에
정부의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외로움과 답답함을 느낀다. 미열과 두통, 그리고 피로. 경미한 증상에도 매일 늘어니는 확진자 수에 코로나19 감염을 의심하며 극도의 공포와 불안에 떨게 된다. 코로나19 사태가 지속함에 따라 기자가 직접 겪은 경험이다. 이 이야기는 기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겪고 있는 이야기다. 재택근무와 실내생활의 장기화로 우울감과 무기력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
“피해자의 입장에서 두려움에 가득 차 있을 때 함께 분노해 주신 분들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함께 분노하면 바꿀 수 있다.” ‘미투운동’ 확산을 이끌었던 서지현 검사가 ‘n번방 성폭력 처벌’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최근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화제 되며 국민적 분노가 커지고 있다. 미성년자를 포함한 수십여 명에게 성 착취 영상물과 포르노 영상을 찍도록 협박하고, 그 영상을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판매하며 유포한 성범죄 사건이다. 며칠
다빈치교양대학의 필수교양은 다빈치형 인재상을 기반으로 한다. 필수교양은 졸업하기 전에 모든 학생이 이수해야 한다는 특징을 지닌 만큼 대학이 추구하는 방향, 즉 인재상이 교양 교육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다빈치교양대학`이라는 이름이 의미하듯 중앙대 필수교양은 넓은 식견을 갖춰 여러 분야의 지식을 융합하는 사고를 갖춘 다빈치형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뜻을 갖췄다. 하지만 대상이 다양한 전공단위 학생인 만큼 현재의 필수교양 강의는 하향 평준화됐다. 강의는 여덟 살에서 열여섯 살 사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설계한 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