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이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어질 때, 벌써 우리는 각각 2번의 봄과 여름, 1번의 가을과 겨울을 지난다. 특히 우리 과 동기, 새로운 후배와 가끔 이야기를 나누면 개중에는 학교를 와보지도 못한 학우들도 있는 것 같고, 또한 현재 상황이 대학교를 다니는 것인지, 혹은 사이버대학을 다니는 것인지 헷갈리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심심하지 않게 듣는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여러 커뮤니티와 동아리, 심지어 비대면 팀플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관계를 확장시켜 나갔다.
중대신문에서 기자를 하던 2014년, 나는 내가 만든 신문을 학교에 배부하는 일을 했다. 신문이 나오던 일요일 저녁, 100부짜리 신문 뭉치 13개를 수레에 싣고 건물 곳곳을 누볐다. 가끔 친구가 신문 돌리는 일을 도와줬는데 신문 각을 잡는 나를 보며 친구가 말했다. “어차피 아무도 안 보는데 대충해.” 이걸 만들려고 토요일 밤을 까맣게 새웠는데 너무 한 거 아니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친구의 말이 맞았다. 아무도 안보는 건 현실이었다. 지난 호의 신문은 일주일 내내 그 자리에 있다가 그대로 신문사로 돌아왔다.
‘등록금 환불’은 1년 반 동안 중앙대 학생사회의 주요의제로서 자리 잡고 있다. 등록금 환불과 관련하여 수없이 이야기를 해왔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구체적으로 등록금 환불의 당위성을 또 한 번 설명하기보다는, 그동안의 과정을 돌아보고 중앙대 학생자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나의 작은 의견을 남기고자 한다. 코로나19는 아이러니하게 ‘교육권과 등록금’의 의미를 학생자치에 각인시켜주었다. 그리고 1년 반 동안 비대면 학사 환경 속에서 교육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기
인생이라는 드라마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배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가족, 학교 등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이들과 잘 지내기 위해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회화 훈련을 시작한다. 나 역시 그렇게 만 23년을 보냈다. 다양한 사건이 있었지만 나름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놓치고 있었다. 평소 혼자 있는 시간을 참 좋아하는 편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강제로 늘어난 혼자만의 시간은 마냥 좋지는 않았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진짜 ‘나’의 모습을 바라보게
제로웨이스트 운동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중앙도서관 로비에 놓인 수많은 플라스틱 컵과 빨대를 본 이후였다. 사실 본인도 현대인의 삶을 살면서 ‘편리함’의 유혹에 항상 무너지는 나약한 존재이지만 환경을 위한 실천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였다. ‘내가 아니면 누가 먼저 시작할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산 것은 텀블러와 스테인리스 빨대였다. 간단해 보여도 텀블러와 빨대를 세척해 카페에 가져가기까지 귀찮음의 과정을 매일매일 겪어야 했다. 빨대용 솔도 사야 하고
아침 일찍 눈이 떠진 날이었다. 피곤함이 몰려왔다. 전날 밤 휴대폰을 하다가 늦게 자서 4시간도 채 못 잤기 때문이다. 다시 잠들지도 못한 채 아침 시간을 허비했다. 수업을 위해 학교에 가려 하자 속이 좋지 않았다. 잠시 누워있는 바람에 결국 지하철 시간을 놓쳐 택시를 탔다. 설상가상 따듯한 낮 기온에 차 안은 덥고 도로는 밀리고 속은 더 뒤틀렸다. 짜증이 몰려왔다. 수업은 베르톨트 브레히트에 관한 것이었다. 브레히트는 20세기에 활동한 독일 문학가로 희곡 시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약했다. 그의 작품 중 어느 것이든 배경지식이
“숲을 품은 제주도민, 제주도민을 품은 숲”. 윗말은 선흘리 마을에서 제주도민들이 ‘수익성만을 생각한 개발’이 아닌 숲을 배려해 ‘필요한 만큼만 사용’해 제주도 특유의 아름다운 자연을 보존하며 살아가는 생활상을 말한다. 이처럼 제주도민은 자발적인 의지와 노력으로 숲을 보존해 숲과 공존하며 살고 있다. 이에 따라 제주도민은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선흘리 마을 전체가 세계자연유산 등재지역으로 선정됐다. 이런 사실은 제주도민이 자부심을 갖고 자
2019년 8월 폭염 속, 서울대 청소노동자가 냉난방기와 창문 하나 없는 3.52㎡짜리 휴식공간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울산과학대 청소노조원 20명은 기본급 인상 요구안을 제시했으나 협상이 결렬됐고 재협상 요구 이후 전원 해고당했다. 홍익대 청소·경비노동자 130여명은 최저임금이라도 받기 위해 2010년 노조를 결성했지만, 한 달 후 전원 해고됐다. 중앙대 청소노동자 상황은 어떠할까? 2013년 9월 ‘빨간조끼 아줌마-아저씨’로 불리는 노조가 결성돼 파업에 돌입했다. 같은해 10월, 학내 노동자와 학
한달 전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전시를 보러 갔다. 전시 작품의 의미나 완성도를 떠나서, 선정된 4명의 작가 중 가장 자극적인 작품을 내놓은 작가는 단연코 정윤석 작가였다. 전시실 입구부터 세워진 19세 미만 출입금지 팻말을 지나 검은 가림막 사이를 들어가면 암실처럼 온통 어두운 공간에서 밝게 빛나는 정윤석 작가의 작품들을 발견할 수 있다. 작품성이 대단해 밝게 빛난다고 표현을 쓴 것이 아니다. 작품들은 스크린 속에서 말 그대로 빛을 발하며 관람객의 망막에 침투했다. 작품의 이름은 로, 중국의
어느 날, 지인의 연결로 학내 언론사인 중대신문의 기고 요청이 들어왔다. 평소 글을 쓰는 사람도 아니고 글재주가 있는 편도 아니어서 처음에는 망설여졌다. 주제가 자유라는 것 또한 나에게는 막연하게만 다가왔다. 그렇게 주제를 고민하고 있을 때, 나의 지난 대학생활을 돌아보게 됐다. 열심히 살아왔고 지금도 그 어느 때 보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음을 발견함과 동시에 나를 진득하게 돌아본 시간이 없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 기회에 나에 대해 돌아보고자 기고를 작성하기로 선택했다. 2019년 3월 중앙대 응용통계학과에 입학한 나는 여러 분야
“기회는 신선한 음식 같은 거야. 냉장고에 넣어두면 맛이 떨어져. 젊은이에게 제일 나쁜 건 아예 판단을 내리지 않는 거야.” 김영하의 소설 『퀴즈쇼』의 한 대목이다. 우리는 무수한 판단 속에 살아간다. ‘나’의 일은 작게는 오늘 무슨 식사를 할 것인가부터, 크게는 앞으로의 미래를 그려가는 것까지 많은 고민 끝에 결정한다. 하지만 주변의 사소하고 불편한 일에는 개입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나’의 시간과 ‘남’의 시간은 별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만물이 탄생하는 봄이다. 그중에서도 3월은 생명의 달로 일컬어진다. 많은 사람이 씨앗들이 싹을 틔우고 꽃들이 만개하는 아름다운 전경을 만끽하기 위해 나들이를 하러 가고는 한다. 글을 읽고 있는 독자 분 또한 꽃 축제를 즐긴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자 한다. 활짝 핀 꽃과 푸르른 나무를 볼 때만큼 시들어가는 꽃과 앙상한 나뭇가지에도 오랜 시간 눈길을 준 적이 있는가? 모든 생명은 늙고 죽는다. 자연의 섭리라고 볼 수 있는 이 흐름을 인간의 생애에 빗대어 다시 질문하고 싶다. 젊은이들의 청춘만큼 노
꽤나 줄곧 글을 자주 써오던 편이었다. 주제는 다양했다. 사회적 이슈 혹은 나 자신에 대해서 등. 어느 순간 바쁘다는 핑계인지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핑계인지는 몰라도 글을 쓰지 않게 됐다.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는 이제 관심을 갖지 않고 정치에 대해서는 방관하며 세상사에 대해서는 주식을 위한 경제동향 정도만 보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보다 어렸을 때 그토록 싫어했던 어른. 우리들이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라며 사회의 문제들을 쉬쉬하고 넘어가려던 그런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일지 모르겠다. 그러던 와중 지인이 말해왔다. 우리
‘나비효과’란 나비의 작은 날갯짓 하나가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뜻으로, 작은 사건이 예기치 못한 큰 결과를 불러오는 현상을 가리킨다. 내 소소한 행동들이 사회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생각에, 나비효과는 내게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최근 사과대 학생회 SNS에 게재된 게시물을 접하게 되었다. 코로나 사태가 경제와 사회뿐만 아닌 자연환경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배출한 의료폐기물이 야생동물에게 피해를 주고 있으며, 특히 일회용 마스크 사용이 급증하면서 폐마스크가 동
2020년 11월 30일, 제62대 서울캠 총학생회(총학) 성평등위원장으로서 임기 마지막 날이었다. 전 부총학생회장 성희롱 사건의 2차가해지목인 및 총학생회장의 파면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예정돼있었고, 중앙운영위원회 역시 해당 사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급히 날 호출했다. 정신없이 도착하느라 총학생회실(총실)에 있는지도 모른 채 회의실로 들어섰고, 논의 중 잠깐 총실을 나가려던 참이었다. 그때, 그 많은 사람들 중 2차 가해자도 함께 있다는 걸 알아챘다. 당황스러웠다. 분노는 그다음이었다. 사과는커녕 어떤 말도 꺼내지
수능을 대비하던 문과생 필자가 배웠던 양자역학이란 다음과 같다. 고양이가 죽었는데 살았대. 어? 고양이가 살아있긴 한데, 죽어있기도 하대. 그게 무슨 소리야. 고양이가 살아있는데 죽었다고? 그게 가능한 거야? 고양이는 죽으면 죽는 거고, 살면 사는 거지. 그리고 왜 슈뢰딩거는 굳이 고양이로 했대? 고양이가 죽으면서도 사는, 두 가지 상태가 공존하는 이유는 전자가 부딪힐 때만 보이는 투명 인간이기 때문이다. ‘관계성’ 이라는 특성에 따라 입자들의 위치는 모든 순간 기록되지 않고, 특정 순간의 위치만 기록되는 것인
인권 관련 업무를 하며 나의 인권 감수성이 부족한 순간들엔 부끄러울 때가, 때론 어떻게 하면 참여자의 인권 감수성을 일깨울 수 있을까 하는 살짝 깊이 있는 고민을 할 때가 있습니다. 아직 인권은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수용된 가치가 아닌듯합니다. 그래서 더욱 인권 감수성은 우리가 새롭게 배우고 꾸준히 익혀야 하는 사회적 감각일지도 모릅니다. ‘인권은 지키고 보호해야 하는 소중한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끝일까요. 인권이 마냥 자유롭고 따뜻하고 훈훈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끝일까요. 이것은 그냥 인권감성, &lsqu
일식(日蝕) 달이 해를 가리기 시작하자천지가 어두워진다.어둠이 빛을 밀어낸다.가만히 놔두어라,당장 비켜서거라. 아, 그 찬란한 빛을가리는 이유가 무엇이더냐? 너도 밤에 은은한 빛을 내어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밤길 잃어버리지 않게 도와주거늘,무엇이 부족해서 그러느냐? “인정받고 싶어요.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아무도 몰라줘요.”시무룩해진 달이 중얼거린다.심술부리는 아이를살살 어르고 달래자,뾰로통하던 아이는제자리로 돌아갔다.“제 소원을 들어주세요.”별이 보석처럼 쏟아지고모두가 잠든 어느 여름밤,아이
최근 학생사회는 학생 대표자가 공석이 되면서 비상대책위원회가 많아지고, 그나마 존재하는 학생회의 방향성도 희미해져가는 등 많은 문제를 직면했다. 학생회 방향성 상실의 원인으로는 3가지 정도로 추측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로 무분별한 탄압과 억압의 정책을 펼쳐온 정부와 대학본부라는 거대한 투쟁 대상이 사라졌다. 그간 존재해왔던 비민주적인 정부와 그 아래의 대학본부가 이제는 새로운 양상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본다. 이에 학우들은 투쟁의 필요성을 크게 체감하지 못하면서 학생회는 더 이상 필수적인 존재가 아니게 된 것이다. 둘째는 의제
며칠 전 잊고 있던 내용의 메일을 받았다. 지난해 참여한 징계권 조항 삭제 캠페인 “Change 915: 맞아도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진행 사항이었다. 징계권 조항 삭제가 마지막 관문 앞에 와 있으며, 국회 입법 예고를 통해 목소리를 전해달라는 요청이었다. 현행 「민법」 제915조는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친권자의 징계권 규정이 자녀에 대한 부모의 체벌을 허용하는 것으로 오인되며, 「아동복지법」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