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우리 사회는 무분별한 도시화를 겪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도시의 달동네나 좁은 골목길은 불도저가 점령해 버렸다. ‘외관상 아름다운’대한민국을 만들었을지 모르겠으나 한편으로는 재개발의 짙은 그늘이 드리웠다. 하지만 그토록 거센 재개발의 바람이 백사마을만은 빗겨 나갔다. 여전히 서울의 한 구석에서 1960년대 주거모습을 그대로 보존한 이
모든 아이들에게 이층침대는 꿈일 것이다. 높은 침대 위에서 보면 무엇이든 그렇게 멋지고 거대해 보일 수가 없다. 이층을 차지해 이불을 뒤집어쓰고 주변을 돌아보면 천장에 붙어있는 야광 스티커는 하늘의 별이다. 창 밖의 빛을 반사하는 거울, 깜빡깜빡 거리는 멀티탭의 불빛은 네온사인이고 책상과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장난감들은 나름의 스카이라인을 이룬다. 이층침대
별이 빛나는 밤, 오르세의 그림을 보며 잠에 들지 않고도 꿈을 꿀 수 있다 소설 의 여주인공 테레즈의 얼굴은 책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파리의 잡화상에서 턱을 괴며 생기 없는 얼굴로 손님을 맞던 그녀의 얼굴을, 라켕과 몸을 뒤섞으며 육체를 집어삼키던 악마적인 모습을, 모든 것이 차갑게 식은 후 찾아온 혐오와 죄책감이 섞인 그 병리적인 얼굴을
『차마 울지 못한 당신을 위하여』안 안설렝 슈창베르제, 에블린 비손 죄프루아 공저/민음인/188쪽 현대인들은 성공을 꿈꾸며 살아간다. 그 바램에 힘입어 ‘성공’은 인간의 영혼을 삼키고 조종하기에 이르렀다. 결과물이 좋을지라도 끝없는 인내 속에 데인 상처들은 망각 속에서 터지고 곪아 있다. 이대로는 위험하다. 『차마 울지 못한 당신을 위하여』(민음인 펴냄)의
서울의 밤은 옅은 남색처럼 부드럽기도 하고 흑수정처럼 화려하기도 하다. 사람들에게 서울의 밤은 화려한 네온사인 불빛 아래서 취기를 빌려 하루의 고단함을 털어놓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몰랐던 서울의 밤은 곱고 아름답기도 하다. 골목 구석의 불 켜진 심야식당과 동네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야경, 어둠이 내린 후 바라보는 예술작품이 그러하다. 옅은남색
불의 설법에서 붓다의 길을 찾다 첫 장을 펼치자 「서시」에선 ‘태초의 아픔이 있었다’라 소리친다. 붓다의 생애를 낱낱이 밝힌 『불의 설법』(서정시학 펴냄)은 태초의 씨앗과 비, 바람을 담으며 시적 이미지를 형성했다. 이를 풀어내는 시인은 나지막이 읊조린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은 진정 무엇인지 말이다. 수록된 시 중 「태어나는 괴로움」 일부에선 ‘별이 아프
냉철한 완벽주의자 선우는 자신을 죽이려던 강 사장 앞에 선다. 그리고 묻는다. “저한테 왜 그랬어요?” 짧지만 강렬한 질문에 강 사장은 답한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영화 의 이야기다. 답변을 듣고자 숨가쁘게 달려 온 선우에게 건낸 강 사장의 답변은 친절하지 않다. 조직 전체를 상대로 벌인 전쟁 끝에 들은 해명치곤 납득이 되지 않는다
『다시 읽는 밳석 시』 현대시비편연구회 저 / 소망출판/ 811쪽 고향을 사랑한 시인, 백석. 그는 자신이 태어난 평안북도 정주의 자연과 인간을 대상으로 토속적이고 향토색 짙은 서정시를 썼다. 현대 시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을 받는 그에 대해 지난달 현대시비평연구회가 『다시 읽는 백석 시』(소명출판 펴냄)를 발표했다. 시전집과 연구서의 성격을 겸하고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프레데리크 그로 저/책세상/320쪽 우리의 발걸음엔 언제나 목적지가 있었다. 무엇이든지 더 빨리 더 멀리 가는 것이 더 좋은 것이라는 오늘, 걷는다는 것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어쩌면 순진한 생각이라 할 수도 있다. 프레데리크 그로의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책세상 펴냄)은 방향이 뚜렷한 걸음에 익숙해져있는 우리들에게
재미로 꽃샘추위가 지나고 캠퍼스를 누비는 학생들의 옷차림이 가벼워졌다. 옷차림만큼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어디론가 떠나기 딱 좋을 때다. 재미로에는 어린 시절 동심이 깃들어 있고 우사단길에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친구와 연인의 손을 잡고 151버스에 올라보자. 회색 골목에 색채를 더하는동심 속의 만화들재미로와 재미랑에서추억의 만화를 피부로 느낀다 누구나 어
『편안함의 배신』마크 쉔, 크리스틴 로버그 공저/위즈덤하우스/320쪽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기술과 상품이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조금만 불편을 느껴도 짜증을 낸다. 스마트폰, tv, 컴퓨터, 자동차, 약 등등 우리의 삶을 즉각적으로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풍요가 더 커질수록 그 풍요가 없었을 때 겪는 상실, 혹은 불편에 대한 반응은 점점 더 민감해진다.
트로이 전쟁을 마친 오디세우스는 고국으로 돌아가기까지 10년 동안 바다 위를 방랑했다. 외눈박이 거인을 눈멀게 해 신들의 미움을 사기도 하고, 세이렌의 노랫소리 때문에 부하들을 잃기도 했다. 누구는 오디세우스의 장난기 때문이라고 다른 누구는 신들의 질투 때문이라고 하지만 또 다른 가능성으로 그의 세상에 대한 관심과 지적 호기심을 생각해본다. 사람의 생각이
워쇼스키 남매는 영화 에서 우리가 믿는 현실 사회는 디지털로 만들어진 환영으로, 실제 사회는 음울하고 차가운 기계로 뒤덮힌 디스토피아로 그려낸다. 그리고 주인공 ‘네오’는 진실에 눈을 뜰 수 있는 빨간 약을 택하고 기계사회를 구원하려 분투한다. 워쇼스키 남매의 두 세계가 진짜와 가짜로 명확하게 구분된다면 토마스 핀천의 세계관은 좀 더 모호하고 어
승자들이 지배하는 사회구조는잉여들을 만든다 문화와 연대를 통해서 패자가아닌 새로운 주체가 되다 [잉여사회 - 진단] 의 마지막 장면은 강렬하다. 주인공 현수는 대한민국 학교 X까라며 제도로서 자리 잡은 공교육을 쿨하게 거부한다. 그는 이소룡을 동경했고 쌍절곤을 휘둘렀다. 하지만 기성세대였던 아버지는 그에게 잉여인간이라고 했다. 공부해서 좋
모든 사람에게 헛된 희망만 심어주었던 부조리한 사회는 사람들을 잉여로 만들었다. 사회가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절망하지 않았다. 그들은 월간잉여를 구독하고, 웹진을 보고 때로는 실제 만나기도 하며 대안적 주체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황금연휴 막바지 노들텃밭에서 새로운 꿈을 꾸는 잉여들을 만나보았다. [잉여사회 - 증상] 황금연휴 노
시스루 의상이 보일 듯 말 듯해 더욱 섹시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오리지널 오브 로라』(문학동네 펴냄)는 그 전라를 드러내지 않아 더욱 섹시한 책이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완결 짓지 못하고 죽음에 이른 것이 그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오리지널 오브 로라』는 결말이 부재해 오히려 독자를 더욱 책에 몰입하게 한다. 나보코프는 성에 대한 가감 없는 접근과
『말의 표정들』 김예란 저 / 문학과지성사 / 442쪽 얼굴은 마음의 창이라는 표현은 얼굴 근육의 미세한 떨림과 마음상태의 긴밀한 상호 관계를 방증한다. 그렇다. 인간은 표정을 매개로 타인에게 감정을 전달한다. 인간의 얼굴에는 그의 의사가 자연히 스며든다. 표정이 있기에 사람 사이에는 소통이 오고 가며 관계가 형성된다. 표정을 인간 고유의 소통법 정도로 이
한남동 우사단길 한남동. 남쪽에는 한강을 바라보고 있고 북쪽에는 남산을 등지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 한남동은 사람들에게 흔히 부자동네라고 잘 알려져 있다.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고급빌라들이 곳곳에 있으며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상위 0.1%의 부자들이 이곳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남동에서 이태원 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한가로운 동물들의 몸짓과 물결치는 호밀밭에서 지친 일상을 위로 받다 새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드넓은 초원, 그 위로 양 떼들과 소들이 무리 지어 다니는 모습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저 멀리 강원도 대관령 목장까지 발걸음을 옮길 필요 없이 서울에서 차를 타고 한 시간만 움직이면 된다. ‘안성 팜랜드’에서 푸른 목장과 따뜻한 동물들을 만나 지친
아픔을 보듬어주는 숲의 평안함 나 자신을 비웠을 때 숲은 꿈을 채워준다 삶에는 두 가지 슬픔이 존재한다. 삶의 궤적과 함께하면서 항상 기저에 내재해있는 통시적인 슬픔과 갑작스럽게 일상에서 발현되는 공시적인 슬픔이 그것이다. 통시적인 슬픔은 나의 삶과 함께하기에 나를 따라오는 슬픔이고 공시적인 슬픔은 특정 순간에 발현되기에 내가 따라가는 슬픔이다. 나의 삶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