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만 6번 연기할 정도로 작은 일에도 진심인 사람, 이혜정입니다.’ 방송국 인턴 면접에서 최종탈락한 후,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지원한 중대신문 면접에서 했던 자기소개의 첫마디였다. 영화 동아리에서 엑스트라를 연기한 것도, 작은 일에 진심인 것도 사실이었지만 엑스트라를 자처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특별함에 집착하곤 했다. 영영 평범한 사람이 될까 무서웠다. 한편 엑스트라와 비슷한 말 중 ‘모브(モブ)’라는 단어가 있다. 창작물 속 등장인물을 제외한 이름 없는 엑스트라의 무리
이번 학기 여론부 꼭지 중 하나인 ‘보통의 이야기’, 저는 참 좋아합니다. 한 번쯤 지나쳐 갔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평생을 만나보지 못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일이죠. 비슷한 맥락으로 (유퀴즈)은 유일하게 챙겨봤던 프로그램입니다. 유퀴즈는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을 무작위로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데 초점을 맞췄죠. 퀴즈를 맞추면 상금 100만원을 주는 재밌는 코너도 있습니다. 이런 취지로 마니아층이 돈독한 유퀴즈는 최근 윤석열 대
지난 학기 사회부에서 활동한 기자는 여론부에 새 둥지를 틀었습니다. 사회의 주요한 논쟁을 다루면서 성장할 수 있었지만 공격적인 어투의 취재원에 조금은 지쳐있었기 때문이었죠. 그 화살이 기자를 향해있진 않았지만 온종일 부정적인 말을 듣다 보면 기운이 빠지기 일쑤였습니다. 그렇게 특유의 따뜻한 문장을 좇아 여론부를 선택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나치게 가벼운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여론부에서의 경험은 기자의 삶을 온전히 바꿔버렸습니다. 기자는 모든 것에 정답이 있다고 믿던 사람이었습니다. 불확실하고 모호한 것을 싫어하며
무력감을 느끼곤 합니다. 기자랍시고 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거든요. 학생인데 기자입니다. 어떨 땐 학생, 그리고 또 어떨 땐 기자죠. 학생 신분으론 접근이 어려운 정보들이 많습니다. 물밑에서 이뤄지는 일도 있기에 사실 그다지 아는 게 많지 않죠. 사전에 여러 자료도 찾아보며 공부하긴 해도 단기간에 심층적인 내용을 파악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잘 해내고 싶지만, 더 나아갈 수 없는 정보의 벽에 가로막혀 답답한 경우도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꺼내는 비장의 무기가 있습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돌진하는 거죠. 단순무식한 방법일진
요새는 반가운 얼굴들을 더 자주 본다. 대면 학사가 시작되며 보고 싶던 이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매일 함께 식사한다. 나 또한 식사를 핑계로 너에게 더 자주 연락한다. 그렇게 너와 만나면 자연스럽게 비건 식당을 찾거나, 비건 옵션이 있는 식당으로 향한다. 다른 친구들과 만날 때와는 다른 풍경이다. 여느 식당이 그렇듯, 들어서면 맛있는 냄새가 풍긴다. 육식 메뉴를 선택할 수 있더라도, 네가 입대는 음식이 아니더라도 최대한 덩어리째로 나오는 고기는 피하고 메뉴를 정한다. 메뉴가 나오면 맛있겠다고 호들갑 떨며 수다를 곁들인 식사를 즐긴다.
어떤 깨달음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온다. 거센 비바람이 불던 날, 평화로운 카페 안에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때였다. 한 여성이 카페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채 문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세차게 내리는 빗속에서도 한참을 머뭇거리는 그의 발걸음에 의아했으나, 이내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있음을 알아채고 불현듯 ‘혹시 이 카페 노키즈존(No Kids Zone)인가?’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너무나도 포근하게만 느껴졌던 카페 안의 시트러스 향이 괜스레 불쾌했다. 부끄러웠다. 누군가의 권리를 무심히 짓밟은 채 &lsqu
3월이다. 부쩍 따뜻해진 날씨 덕에 이제 패딩 점퍼를 입으면 덥다. 그동안 추위를 막아주었던 패딩 점퍼가 할 일을 마치고 옷장에 들어갈 때가 왔다. 열심히 살아온 것을 증명하듯 서너 달을 동고동락한 외투의 소매 끝에 때가 많이 꼈다. 매년 이맘때 겨우내 입었던 겉옷을 세탁소에 맡기면서 봄을 맞이해왔다. 세탁소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우리 가족이 오랫동안 단골이었던 세탁소 사장님이다. 세탁소 사장님과의 인연은 이사를 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기억한다. 몇 년 전 겨울에 이사를 갔던 우리 가족은 외투를 어느 세탁소에 맡길지 고민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평가하는 일은 어느새 유별난 일이 아니다. 유별나지 않아 그대로 무뎌졌을까?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 뿌리박힌 기준, 곧 모든 경계는 녹고 있는 빙하처럼 잔뜩 틈이 벌어진 채로 깊은 골을 만들고 있다. 남과 여의 경계, 흑과 백의 경계, 노와 소의 경계. 어떤 이들은 성급하게도, 자신과 상반된다고 정의한 것들은 서로의 속에 녹아들 수 없다는 결론을 짓곤 한다. 최근 이러한 배척은 소위 말하는 ‘물타기’로 번지기도 하며 수많은 갈등을 낳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세상에
‘학보사? 그거 하면 뭐 있어?’ 지난 1년간 매주 금, 토요일을 기사 마감과 조판으로 시간을 보내는 기자를 보고 주변 지인들이 하는 말입니다. 그럴 때마다 기자는 멋쩍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죠. 기자이기는 하나, 학생 신분에서 수행하기 때문에 학생이라는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학보사 조직이 대학 사회에서 위치가 애매한 점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대학본부의 행보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지만, 대학본부로부터 예산과 공간을 제공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종종 대학본부를 비판하는 논조로 기사를
가히 인간적인 세상입니다. 정확히는 인간 ‘중심’적인 세상이죠. 인간은 스스로 자연의 일부라며 주변의 동식물과 공존한다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인간은 동식물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필요와 선택에 의해 존재하고 있습니다. 참 ‘인간적인’ 모습이죠. 지난 학기 뉴미디어부에서 생태적 감수성 영상을 제작하며 환경 문제에 눈을 돌렸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폐어구, 공장식 축산업 등 사진 기획을 하며 환경 문제를 꼬집었죠. 대부분 기획 기사가 그렇듯, 문제의 원인과 해결방안을 찾아야
기자는 스포츠 ‘찐팬’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손을 잡고 처음 간 야구장. 시험 전날에도 달려간 축구장. 야간 자율학습을 내팽개치고 간 배구장. 기자의 삶에는 스포츠가 덕지덕지 붙여져 있었습니다. 그런 기자가 최근 스포츠와 거리두기를 선언했습니다. 요즘 들어 종목을 막론하고 스포츠맨십에 어긋난 행동을 보인 선수들이 많았죠. 지난해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NC 다이노스의 1차 지명자로 김유성씨가 지명됐습니다. 키 189cm에 150km의 공을 던지는 이 선수. 알고 보니 중학교 시절 후배를 폭행한 &lsq
기자는 인문대생이다. 그중에서도 소위 ‘돈 안 된’다는 어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무슨 일을 하면서 먹고살아야 할지 고민하던 기자는 우연히 12편의 독일문학작품을 읽었고 전공을 진심으로 애정하게 됐다. 그래서 수첩을 열었다. 인간과 세상에 관한 담론을 공부하면서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답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근대 이후 등장한 계몽주의 사상. 그에 부합한 합리적인 이성을 가진 사람이 되기 위해 『에밀리아 갈로티』(고트홀트 레싱 씀)속 인물들은 그 틀에 맞춰 사고하고 행
10월 26일,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냈던 노태우가 향년 8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한때 대한민국 정계 중심에 있었던 사람들이 점점 역사 속으로 스러지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박정희와 같은 날에 사망했다는 사실에 또 묘했다. 언론에서는 ‘1노 3김’ 시대의 종말이라고 표현했다. 처음에는 3김에 노태우를 포함하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정치인들이 생을 마감하고 있음을 말하고자 한 언론의 노력이 가상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들의 정치 행보에는 큰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
‘재드래곤’, ‘쁘띠거니’, ‘용블리’... 모두 한국 재벌을 부르는 별명이다. 재드래곤은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이름과 가수 ‘지드래곤’을 합친 것으로 여기엔 그의 사회적 지위에 나오는 감탄, 스타에 대한 동경과 우상의 이미지가 투영돼 있다. 쁘띠거니는 이건희 삼성 전 회장의 카리스마적 이미지와 대조되는 귀여움을 강조해 반전매력을 준다. 이 별명들은 재벌이 대중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가고 긍정적인 인상을 준다. 재벌의 고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보
‘삶과 삶 사이를 잇다. 당신의 삶 속으로 찾아갑니다.’ 이번 학기 여론부의 소개말입니다. 다채로운 삶을 생생하게 전달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주변을 둘러보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당신과 함께’에서는 직간접적인 체험을 통해 느낀 누군가의 삶을 재조명하고 ‘아리아리 동동’에서는 동아리라는 울타리 아래 학생들과 교감하며 소통하죠. 기자가 연 창 틈새로 누군가가 바라보는 세상이 조금이나마 움직이길 소망합니다. 그렇게 맺어진 유대감으로 단절된 저마다의 세상이 이어
언론은 비수도권에서 발생한 재난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지난해 7월 2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라는 글이 게재됐습니다. 청원인은 부산의 많은 지역이 침수되고 피해가 발생했지만 언론은 이를 주목하지 않았다며 수도권에 집중된 언론 보도를 멈춰달라고 전했습니다. 이어 27일, 부산에 폭우가 쏟아졌지만 재난 방송을 제대로 하지 않은 재난주관 방송사인 KBS를 제재해달라는 청원 글이 게시되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청원 글에 공감하며 동의를 표현하기도
팬데믹 후 처음 개최된 올림픽인 만큼 많은 사람이 열광했던 2020 도쿄 올림픽도 어느덧 폐막 한 지 1달이 돼간다. 승패나 성적과 상관없이 선수들의 도전과 노력은 그 자체로 가치 있지만, 이번 올림픽에서 유독 돋보였던 쾌거로는 한국 양궁 대표팀의 금메달 석권과 여자배구 대표팀의 4강 진출이 떠오른다. 특히 여자배구 대표팀은 2012 런던 올림픽 이후 9년 만의 4강 진출이었고 주장 김연경 선수의 마지막 올림픽이라는 점에서도 더욱 각별하고 의미 있는 결과를 냈다. 이렇게 올림픽에서 걸출한 실력을 뽐낸 여자 선수들에게는 응당 붙는 수
아침에 눈을 뜨면 자연스럽게 네이버를 킨다. ‘코로나19 확진자’를 검색하고 날씨도 확인한다. 다시 메인으로 돌아온 뒤 스크롤을 내리며 많은 기사 중 몇 개를 선택해 읽는다. 유튜브를 볼 때도 예외는 아니다. 무수한 뉴스 콘텐츠 중 끌리는 영상을 골라 시청한다. 추천 동영상 알고리즘을 따라가며 시간은 계속 흐른다. 어느새 출처가 불분명한 가짜뉴스 영상을 보게 됐었다. 하루에도 셀 수 없는 사건들이 발생하고 뉴스와 기사는 쏟아져 나온다. 이용 매체가 편리해지고 많아졌으며 정치나 사회 등에 관해 사람들이 제시하는
“적당히 일해. 자칫하면 매몰될걸.” 기자로 선발돼 처음 교육을 받으러 가던 날, 평소 친분이 두텁던 대학 선배와의 식사 자리에서 나온 말이다. 기자에 임하는 첫날의 설렘은 선배와의 대화에 차갑게 식었으나 이윽고 물음표로 바뀌었다. 조언이라는 선배의 표현에 ‘매몰’이라는 단어는 꽤 오랫동안 머릿속에 맴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월요일에 돌리는 취재처 연락, 화요일부터 시작하는 취재, 목요일에 작성하는 초고와 수많은 피드백, 토요일에 임하는 조판까지. 하루하루를
기자는 지금 프랑스 파리에 있습니다. 통행금지와 봉쇄 조치를 겪는 ‘이시국’ 교환학생이 다른 도시와 국가를 넘나들긴 쉽지 않은 일. 오늘도 프랑스 수도권을 꿰뚫는 십수 개 메트로(métro) 노선과 기차, 트램(tramway), 에흐으에흐(RER) 등 지하철에 유유자적 몸을 싣습니다. 서울 9호선이 개통할 때 이미 109주년을 맞은 파리 지하철은 사뭇 지저분합니다. 모두가 입 모아 똥오줌 냄새까지 진동한다고들 하니 엉망진창이라는 수식어가 딱 맞죠. 특히 열차에 오르내릴 때마다 연식을 실감하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