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일해. 자칫하면 매몰될걸.” 기자로 선발돼 처음 교육을 받으러 가던 날, 평소 친분이 두텁던 대학 선배와의 식사 자리에서 나온 말이다. 기자에 임하는 첫날의 설렘은 선배와의 대화에 차갑게 식었으나 이윽고 물음표로 바뀌었다. 조언이라는 선배의 표현에 ‘매몰’이라는 단어는 꽤 오랫동안 머릿속에 맴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월요일에 돌리는 취재처 연락, 화요일부터 시작하는 취재, 목요일에 작성하는 초고와 수많은 피드백, 토요일에 임하는 조판까지. 하루하루를
‘피노키오’는 동화 『피노키오의 모험』(콜로디 씀) 속 주인공 이름이다. 몇 년 전 동화 피노키오에서 영감을 받아 ‘피노키오 증후군’을 가진 주인공이 기자가 되어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 가 방영됐다. 피노키오 증후군을 앓는 주인공이 거짓말을 할 때면 딸꾹질을 한다는 설정이다. 국내 언론은 불신의 시대를 겪고 있다. 기자를 흔히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인 ‘기레기’라고 표현한 지도 오래다. 기자는 허위 사실과 과장된 기사를 무분별하게 써내면서 사회를 혼란스
최근 대학평의원회(대평)가 발표한 ‘2021학년도 대학·병원 예산(안) 자문 결과’와 관련해 대평 내부적으로 의견 대립을 보이고 있다. 특히 예산 자문 결과의 만장일치와 관련한 대평 구성원들의 의견 대립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대평은 대학교육에 관한 중요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설립된 필수적 법정기구다. 그러나 현재 대평은 중앙대의 필수적 법정기구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다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만장일치라는 표현을 자의적으로 사용한 후 평의원들의 동의를 얻으려 한 의장의 행동은 적절치 않다. 대평 의
‘결정장애’, ‘잼민이’. 차별적 표현이라는 수식어가 무안할 정도로 친숙하다. 이에 5월 24일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국민 청원이 제기됐으나 반대의 목소리도 존재했다. 아무리 차별적 표현이라도 ‘표현의 자유’가 선행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표현과 자유 둘 다 틀렸다. 표현의 자유는 ‘보편적 권리’일 때 빛을 발한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쓰는 표현이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표현, 즉 언어가 지닌 특성을 고려
인생이라는 드라마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배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가족, 학교 등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이들과 잘 지내기 위해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회화 훈련을 시작한다. 나 역시 그렇게 만 23년을 보냈다. 다양한 사건이 있었지만 나름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놓치고 있었다. 평소 혼자 있는 시간을 참 좋아하는 편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강제로 늘어난 혼자만의 시간은 마냥 좋지는 않았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진짜 ‘나’의 모습을 바라보게
제목의 ‘아리’는 ‘아리아’를 뜻한다. 이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드는가? 어떤 의미로 들리는가? ‘아리아’는 인공지능(AI) 스피커를 부르는 이름인데, 그 이름을 불러 놓고 ‘착하다’는 느낌을 덧붙이다니, 이게 무슨 말이던가! 국어학 전공자로서 직업병(?)이 있는지라 주변 사람들의 언어생활에 관심이 많다. 위 문장은 올해 초, 제법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 부모와 함께 가던 아이가 한 외침이다. 아이는 이제 막 말을 잘하기 시작한 듯했다
루이자 메이 올컷의 소설 『작은 아씨들』을 다룬 ‘화석 작품, 어떻게 녹았나’를 흥미롭게 읽었다. 기사는 시대를 초월해 사랑을 받은 소설과 영화 안팎을 비교하면서 두 작품의 차이를 살뜰하게 살폈다. 원작이 토대하는 19세기 말 남북 전쟁 직후 미국과 영화 (2019)이 나온 21세기, 성장 서사와 여성 서사가 중심을 이룬 테마, 1·2부로 구성된 원작의 연대기 구조와 플래시백, 플래시포워드 등 시간 이동 장치를 도입한 영화의 비선형적인 플롯이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는 걸 알 수 있다.
‘너 이거 봤어?’하고 친구가 내민 것은 유튜브 동영상이었다. 화면을 가득 채운 거북이의 얼굴을 향해 뾰족한 핀셋이 다가가더니, 콧구멍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친구는 침통한 투로 상황을 설명했다. ‘거북이 코에 빨대가 꼈대...’ 그 이후로 카페에서 빨대를 집을 때마다 신경이 쓰였다. 콧구멍에 깊이 박힌 빨대를 뽑아내는 공감성 고통이 적나라하게 떠오르는 탓이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마음과 행동은 별개고 그런 행동엔 늘 이유가 따랐다. 텀블러를 놓고 와서, 가방이 무거워서, 너무 차가
플라톤의 동굴이란, 동굴 속에 갇힌 우리가 진리라고 믿고 보는 것들이 사실 동굴 속에서 본질인 이데아에 빛을 비춰 생긴 그림자와 같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 플라톤의 동굴 개념은 사진에 관해 논할 때 자주 등장하곤 한다. 사진이 본질을 인식하는 인간의 개념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사진의 발명 이후, 사람들은 ‘보다’라는 행위를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보는 것은 더 이상 경험의 영역이 아닌 증명과 기록의 영역이 됐다. 사진의 등장으로 보는 행위는 시의성이 사라지고 체험은 기록으로 대체 가능해졌기에, 이제
기자는 지금 프랑스 파리에 있습니다. 통행금지와 봉쇄 조치를 겪는 ‘이시국’ 교환학생이 다른 도시와 국가를 넘나들긴 쉽지 않은 일. 오늘도 프랑스 수도권을 꿰뚫는 십수 개 메트로(métro) 노선과 기차, 트램(tramway), 에흐으에흐(RER) 등 지하철에 유유자적 몸을 싣습니다. 서울 9호선이 개통할 때 이미 109주년을 맞은 파리 지하철은 사뭇 지저분합니다. 모두가 입 모아 똥오줌 냄새까지 진동한다고들 하니 엉망진창이라는 수식어가 딱 맞죠. 특히 열차에 오르내릴 때마다 연식을 실감하곤 합니다
제로웨이스트 운동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중앙도서관 로비에 놓인 수많은 플라스틱 컵과 빨대를 본 이후였다. 사실 본인도 현대인의 삶을 살면서 ‘편리함’의 유혹에 항상 무너지는 나약한 존재이지만 환경을 위한 실천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였다. ‘내가 아니면 누가 먼저 시작할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산 것은 텀블러와 스테인리스 빨대였다. 간단해 보여도 텀블러와 빨대를 세척해 카페에 가져가기까지 귀찮음의 과정을 매일매일 겪어야 했다. 빨대용 솔도 사야 하고
2012년 홍콩여행 중에 알게 된 한 유럽인의 역사적 견해는 필자의 강의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한국인이 일본에게 갖는 반감을 문제로 지적하면서 식민지 방식이지만 일본이 고대부터 한국에 철기문화를 전수해주었고, 한국의 근대화에 일조했으니 역사적으로 본다면 한국인은 일본을 마냥 부정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필자가 놀란 것은 이 논리에 일본의 고대사 왜곡인 ‘임나일본부설’이 마치 정설처럼 깔려 있었다는 것이다. ‘임나일본부설’은 2010년,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에서 사실이
올해 환경단체 그린피스에서 발표한 가정용 플라스틱 실태 조사에 따르면 배출된 플라스틱의 약 71.5%가 식품 포장재에서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수치는 일상에서 사용되는 대부분의 플라스틱이 포장재로 이용된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무분별한 포장재 사용으로 발생하는 환경파괴는 예전부터 꾸준하게 논란이 됐다. 특히, 명절마다 등장하는 선물세트의 과도한 포장, 제품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되는 스티로폼 박스는 환경보호에 앞장서야 할 인간들의 무책임함을 보여준다. 상품 보호라는 포장의 기본적인 기능이 이미 퇴색된 지 오
비평이 일상이 된 시대임은 분명하다. 작가와 독자의 경계가 모호해진 현재 문화예술이 그렇듯, 비평에도 전문성이 비평가에게만 한정되기는 어려운 시대다. 굳이 전문적인 매체를 통해 깊이감을 지닌 평론을 게재하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SNS 등의 플랫폼을 통해 작품에 대한 비평을 충분히 개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비평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아진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양적 성장에 비례하는 질적인 수준의 함양에 대한 노력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개인의 의견이 단순 감상이 아닌 비평의 영역
비대면 현상이 지속되는 2021년 1학기다. 동기와 선후배 사이의 소통, 동아리와 축제를 비롯한 대학 생활의 일부분이 축소된 것뿐만 아니라 정보를 전하는 창구 역시 줄어들었다. 여러 커뮤니티 사이트가 존재하지만 학교 소식을 접하기엔 한계가 있다. 이에 중대신문이 전하는 구체적인 교내외 정보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된다. 중대신문 제1992호는 이러한 면모를 잘 보여준다. 1,2면에서 전학대회 성과와 변화를 간략한 표와 구체적인 서술로 요약했다. 전학대회까지의 과정과 결과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비참여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필자는 학생총회
식당에서, 대중교통을 타다가, 타인의 이야기 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대화는 유독 투자에 대한 것이다. 투자 정보를 공유하고 투자 기법을 전수하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영끌 투자’라는 말을 들은 바 있다. 원래의 의미가 무엇이었건 모든 일상, 대화, 그리고 생각을 투자 차익에 집중하고 있는 현상을 표현하는 데 ‘영혼까지 끌어모은 투자’라는 말 만큼 적절한 것은 없는 듯 하다. 영끌투자는 적절한 선택일까? 애석하게도 타당하다. 자산에는 내재가치가 있다고 믿어져왔다. 이 수준을 넘어 시장가치가
제1991호 중대신문은 학생들에게 유익한 많은 정보를 담고 있었다. 학생 사회에서 일어난 다양한 일들에 대한 객관적 보도, 보도기획을 통해 알아본 공통 교양 과목의 목적과 필요성, 이번주 동안을 통한 동작구와 안성의 유익한 지역 정보, 문화, 사회, 생활면 등 다양한 내용이 실려 있었다. 특히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한번쯤은 생각해볼 만한 문제들을 다수 다루었다는 점에서 뜻깊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사회, 문화면에서 다뤄진 다양성에 대한 기사들이었다. 젠더 갈등과 성 소수자 혐오 문제가 사회 전반의 문제
중대신문 제1991호에서 흥미롭게 본 것은 뉴미디어의 탐사보도 ‘끓는 냄비 속 개구리 되지 않으려면: 생태적 감수성’이었다. 현재 우리 현실에 자리잡아가고 있는 젠더 감수성처럼 왜 ‘생태적 감수성’이 긴요한지를 다각적 차원에 보여주는 좋은 콘텐츠였다. 1가지 아쉬운 점은 이 문제를 다소 지나치게 ‘다각적’이고 보편적 차원에서 접근함으로써 기존의 콘텐츠와 크게 차별화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대신문’은 ‘중앙대 학생’이라
아침 일찍 눈이 떠진 날이었다. 피곤함이 몰려왔다. 전날 밤 휴대폰을 하다가 늦게 자서 4시간도 채 못 잤기 때문이다. 다시 잠들지도 못한 채 아침 시간을 허비했다. 수업을 위해 학교에 가려 하자 속이 좋지 않았다. 잠시 누워있는 바람에 결국 지하철 시간을 놓쳐 택시를 탔다. 설상가상 따듯한 낮 기온에 차 안은 덥고 도로는 밀리고 속은 더 뒤틀렸다. 짜증이 몰려왔다. 수업은 베르톨트 브레히트에 관한 것이었다. 브레히트는 20세기에 활동한 독일 문학가로 희곡 시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약했다. 그의 작품 중 어느 것이든 배경지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