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혐오다. 그리고 차별이다. 9월 30일 대학별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서울캠 성평등위원회(성평위) 폐지를 주장하는 연서명이 게시됐다. 학생 300인 이상의 연서명을 받아 8일에 열리는 서울캠 확대운영위원회에 안건으로 상정하겠다는 것이다. ▲학생자치예산 독식 ▲남녀갈등 조장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기구 등을 폐지 사유로 제시하며 성평위 폐지는 대학 내 성평등 문화에 대한 부정, 반대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성평위 폐지는 대학 내 성평등 문화를 향한 ‘부정’과 ‘반대’다. 성평위 관
당신은 한번이라도 차별을 겪어본 적이 있는가?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차별을 경험했을 것이다. 이번 중대신문 제1999호 기사들의 특징은 ‘차별’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글에서는 세대 차이를 다룬다. 세대 간 갈등과 차별은 계속 반복돼왔고, 피할 수 없는 문제이다. 또한 우리 사회의 성장을 저해하는 큰 요인이다. 그 세대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담겨있는 글이었다. 안성캠 시설 개선 공사의 아쉬움에 대한 기사도 눈에 띄었다. 양캠 차별에 관련된 문
학교에서 장애인을 마주친 적이 있느냐고 물으면 학생 대부분이 거의 본 적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학교 대부분이 장애 학생을 적은 수로 입학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중앙대는 서울캠과 안성캠을 합쳐 1년에 8명 이하의 장애 학생을 최종 선발할 수 있다. 전형에 추가합격이 없기에 누군가 입학을 포기하면 다른 장애 학생들에게 기회는 돌아가지 않은 채, 장애 학생 수는 계속 감소한다. 그러다 보면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은 만날 기회를 잃고 결국 캠퍼스 내 공존이라는 단어는 허울만 남게 된다. 물론 다음해부터 중앙대는
“사랑? 웃기지 마. 이제 돈으로 사겠어.” 드라마 에서 탄생한 명대사다. 사랑을 돈 주고 살 수 있을까? 비록 사랑은 돈 주고 사지 못하더라도, 친절과 미소를 돈 주고 사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자주 가는 분식집에는 이런 문구가 적힌 스티커가 붙어있다. ‘감정노동자도 우리의 가족입니다.’ 소위 말하는 ‘갑질’로부터 고객응대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고객응대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또 다른 장치가 있다. 2018년 10월 18일부터 근로자들을 향한 욕설 또는
코로나19가 우리 일상을 바꿔 놓은 지 2년이 돼 간다. 지난해 대학 생활의 첫 학기를 맞은 필자는 대학 생활의 묘미로서 다양한 전공과 비전을 가진 학생들과 교류를 기대했으나 전염병의 창궐로 좌절됐다. 그러던 중 중대신문 제1998호에서 이런 상황을 타개할만한 해결책으로써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제1998호에서 흥미롭게 읽은 기사는 스타트업 대표 재학생의 인터뷰와 흑석 캠퍼스타운 사업을 다룬 보도였다. 특히 후자는 창업을 지원하는 흑석캠퍼스타운 사업에 참여한 학생들의 피드백과 성과를 다뤘다. 필자는 두 보도에서 여러 학생의 비
종이책 vs 전자책, 당신의 선택은? 이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나의 답은 언제나 고민할 필요도 없이 종이책이었다. 그런데 요즘 이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단번에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2019년 11월 이후 세상이 너무나 달라졌다.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질병이 창궐해 마스크 없는 외출을 상상할 수 없게 됐고, 친구들을 쉽게 만날 수 없게 됐으며, 대면보다는 비대면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더 잦아졌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나에게 끼친 커다란 영향 중 하나가 바로 전자책이다. 평소의 나는 전자책이나 오디오북보다는 종이책을 선호해왔다
만나면 반가웠던 배달 오토바이, 택배 차량이 캠퍼스 안으로 들어오면 위험한 시한폭탄이 된다. 최근에는 전동킥보드(킥보드)까지 위협에 가세하고 있다. 그들의 위협은 캠퍼스가 ‘도로 외 구역’이라는 핑계로 정당화되고 있었다. 캠퍼스 내 도로는 ‘도로’를 흉내 낸 광야에 불과하다. 「도로교통법」 제2조 1항에 따르면 도로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 또는 차마(車馬)가 통행 할 수 있도록 공개된 장소로서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할 필요가 있는 장소’로 명시한다. 그러나 캠퍼스
언론은 비수도권에서 발생한 재난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지난해 7월 2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라는 글이 게재됐습니다. 청원인은 부산의 많은 지역이 침수되고 피해가 발생했지만 언론은 이를 주목하지 않았다며 수도권에 집중된 언론 보도를 멈춰달라고 전했습니다. 이어 27일, 부산에 폭우가 쏟아졌지만 재난 방송을 제대로 하지 않은 재난주관 방송사인 KBS를 제재해달라는 청원 글이 게시되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청원 글에 공감하며 동의를 표현하기도
코로나19로 사회가 정지한 지도 1년이 한참 넘었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으로 영업시간 제한부터 사적 모임 인원 제한까지 여러 규제가 만들어졌다. 뉴스나 기사를 보면 팬데믹으로 경제가 위축됐음을 자주 확인할 수 있었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경제적 고통을 호소할 때 필자는 개강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느꼈고, 이전처럼 지인들을 마음 놓고 만날 수 없는 불편함에 불평을 늘어놓았다. 이제는 무뎌진 것일까?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경제가 위축돼 소상공인들이 위기에 내몰렸다는 기사를 접했을 때 심각성을 인지했다. 예상보다 코로나19는
지난해 5월 서울 우이동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이 유언을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한 입주민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경비원은 한 입주민의 주차된 차량을 밀어 이동시켰다는 이유로 지속적으로 폭행과 협박에 시달렸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아파트 경비원, 청소 노동자, 배달 노동자의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직업에 귀천을 두고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며, 자신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이유만으로 갑질과 같은 탄압을 부리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관련 처벌법을 통해 가해자를 처벌하고 있지만 이는 단지 처벌을 위한
‘학보사와 기성 언론사를 비교해 서술하시오.’ 필자가 학보사 입사 당시 출제된 논술 문제다. 오랜 기억을 더듬어 보니 ‘학보사는 청년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와 같은 말을 썼던 것 같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당시 허둥지둥 작성한 답안을 돌이켜보니 꽤 괜찮은 말인 듯하다. 청년들이 만드는 청년들을 위한 신문. 기성 언론과는 다른 학보사만의 매력 중 하나일 테다. 중대신문 제1997호 사회면은 그러한 학보사의 매력을 잘 보여준다. 해당 면에서 얘기하는 기본소득은 이미 기성 언론에
이윽고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이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어질 때, 벌써 우리는 각각 2번의 봄과 여름, 1번의 가을과 겨울을 지난다. 특히 우리 과 동기, 새로운 후배와 가끔 이야기를 나누면 개중에는 학교를 와보지도 못한 학우들도 있는 것 같고, 또한 현재 상황이 대학교를 다니는 것인지, 혹은 사이버대학을 다니는 것인지 헷갈리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심심하지 않게 듣는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여러 커뮤니티와 동아리, 심지어 비대면 팀플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관계를 확장시켜 나갔다.
얼마 전 기분에 이끌려 퍼스널 컬러 검사를 받았습니다. 무지갯빛 휘황찬란한 천들을 얼굴 밑에 대며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흘깃. 얼굴을 보고 답이 정해진 듯 척척 이 색은 좋고 저 색은 나쁘다는 둥 선악을 나누더랍니다. 여름 라이트, 나름 신기했지만 기자는 이 결과를 믿지 않습니다. 과연 색을 ‘좋은 색’과 ‘나쁜 색’ 2가지로만 나눌 수 있는 걸까요? 정신없이 흘러간 30분 동안 보여진 모습은 무척 단편적입니다. 다른 조명에서는 또 다른 색이, 다른 옷이 어울릴 지도 모릅니다. 생각 끝에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지.” 마리 앙투아네트가 굶주린 시민들에게 했다고 전해지는 이 말은 그녀를 사치와 향락의 이미지로 만들었다. 하지만 라는 교양 프로그램을 통해 마리 앙투아네트의 오해와 진실을 알 수 있었다. 해당 프로그램에 따르면 마리 앙투아네트는 신분제도 조롱이 담긴 공연에 거부감이 없을 정도로 개방적인 사고의 소유자였다. 또한 서민들에게 친숙해지기 위해 슈미즈(속옷)스타일의 옷을 입고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이렇게 이미지 개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프랑스 혁명 이후 그녀에 관한
2009년 6월부터 운영한 카레 전문점입니다. 사장님의 비법이 담긴 카레 가루를 이용한다고 하는데요. 비건이 먹을 수 있는 메뉴는 ‘버섯구이카레’, ‘버섯볶음밥’, ‘버섯볶음우동’이 있었습니다. 기자는 팽이버섯, 맛타리버섯, 새송이버섯 등과 각종 채소가 들어간 버섯구이카레와 버섯볶음밥을 주문했는데요. 센 불에 빠르게 구워 버섯의 수분과 향이 살아있었습니다. 달걀을 먹는 채식 단계인 ‘오보’는 ‘버섯오므라이스’를 먹을 수 있다고
코로나19로 집콕이 일상이 된 시기에 신문은 내가 그리고 우리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창이 된다. 내가 속해있는 사회 그리고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 또는 이슈의 현장을 다 알 수 없고, 직접 갈 수 없기 때문에 나 대신 그 사건 사고 현장과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담아 보여주기 때문이다. 대형 사건·사고나 이슈가 터지면 기사에는 큰 제목과 가장 잘 나온 사진을 배치한다. 사진은 그 기사의 간판 역할을 한다. 뛰어난 사진 한 컷은 기사를 읽게 하는 마중물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는 우리
일주일 전부터 주위에서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주변 주택가는 연이어 화재가 발생했고, 집 앞에선 무단횡단하던 고등학생이 차에 치이는 사고가 있었다. 하지만 모두 내가 직접적으로 당한 사고가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저 지인들에게 “이런 일이 있었대. 조심해야겠어”라고 흘려버리는, 입방아 거리에 가까웠다. 그런 의미에서 제1996호 중대신문은 ‘사고’에 대한 나의 무관심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1면에 실린 310관(100주년기념관) 에스컬레이터 사고 기사부터
에버렛 테일러 치버는 62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14권의 소설을 썼다. 그는 소설로 127명의 인물을 만들어냈고 ‘적어도 자신은’ 모든 인물을 기억했다. 『게임을 망치는 자』. 치버가 ‘완성’한 소설 제목이다. 구상부터 정리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는 등장인물들의 배경, 취향, 외모까지, 심지어 눈동자 색까지 구상했다. 주제는 분명했고, 인물은 현실감이 있었으며 대화는 효과적이었다. 아주 사소한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그건 모든 게 치버의 ‘머릿속’에만 있다는 거
중대신문에서 기자를 하던 2014년, 나는 내가 만든 신문을 학교에 배부하는 일을 했다. 신문이 나오던 일요일 저녁, 100부짜리 신문 뭉치 13개를 수레에 싣고 건물 곳곳을 누볐다. 가끔 친구가 신문 돌리는 일을 도와줬는데 신문 각을 잡는 나를 보며 친구가 말했다. “어차피 아무도 안 보는데 대충해.” 이걸 만들려고 토요일 밤을 까맣게 새웠는데 너무 한 거 아니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친구의 말이 맞았다. 아무도 안보는 건 현실이었다. 지난 호의 신문은 일주일 내내 그 자리에 있다가 그대로 신문사로 돌아왔다.
첫 칼럼을 쓴지 벌써 5개월이 지났습니다. 하루는 긴데 항상 돌아보면 시간은 훌쩍 지나간 듯 보입니다. 약 5개월 전 이곳에 우울증에 대해 적었습니다. 암울한 시기를 지나 꽤 잘 살고 있다고 적었죠. 하지만 그 글이 무색하게 또 몹시 아픈 시기가 오기도 했습니다. 인생은 좋은 시기와 그렇지 않은 시기의 반복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사실 ‘시기’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좋은 날과 그렇지 못한 날의 반복, 혹은 좋은 찰나와 그렇지 못한 찰나의 반복. 시시한 말이지만 좋은 찰나를 음미하고 기억하는 게 우리의 몫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