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보내던 어느 날, 중대신문 기고 요청을 받았다. 전공을 제외하고는 관심 있는 분야가 특별히 없었기에 글의 주제를 무엇으로 할지 머리를 쥐어짜던 중, 의대 전공과목 중 인상 깊었던 ‘의사와 사회’ 과목이 떠올랐다. 이 수업에서는 좋은 의사가 갖추어야 할 자질에 대해 배웠지만, 의대생이기 전에 사회 구성원 중 하나로서 대인관계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도 많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약지 손톱 주위 피부가 곪아 병원에 가서 손톱을 뺀 적이 있다. 손톱을 빼는 것이 대단히 위험하거나 힘든 수술은 아니지만, 손톱
여우네 집에 초대받은 두루미를 기억할 것이다. 접시에 든 수프를 먹지 못하는 두루미를 의아해한 여우. 두루미가 먹지 못했던 것까지 대신 먹었다고 전해진다. 직접 물어본 적은 없기에 속내야 모르지만 여우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설마 두루미를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그랬기야 했겠는가? 아마도 손님맞이 음식 준비에만 신경을 쓰느라 본의 아니게 그릇까지는 미처 준비가 미흡했던 걸지도 모른다. 선량한 존재도 경험의 한계를 초월해 타인을 이해하는 건 쉽지 않으니까. 유학생들과 우연히 한 팀이 돼 ‘팀플’을 해본 적이 있다
얼마 전 이사 온 동네에는 천이 흐른다. 천을 따라 난 긴 산책로를 걷다 보면 중대백로와 흰뺨검둥오리를 만날 수 있다. 마주치면 피하기 바빴던 비둘기 떼와 달리 이런 야생동물은 가까이서 볼수록 신기하다. 처음에는 왜가리나 청둥오리쯤으로 생각했는데 실은 독특한 수식어를 가진 백로와 오리였다. 흰뺨검둥오리 1마리가 가만히 있길래 조용히 다가가 후추 알처럼 까만 눈망울, 줄무늬가 나 있는 얼굴, 노란 부리 끝, 진한 오렌지색 다리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청둥오리처럼 얼굴이 푸르지 않네’라고 생각하던 찰나 저만치 예닐
기고문 청탁을 받고 중대신문 제2008호를 읽어 봤다. 부끄럽지만 학교 신문을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면은 교내 이슈뿐만 아니라 사회적 이슈까지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특히 문화면에서 젠더 감수성이 결여된 광고를 다룬 기사를 보며 아직도 우리 사회에 잘못된 고정관념이 만연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처럼 중대신문은 무심히 지나쳤던 문제에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반면 뉴미디어 콘텐츠는 아쉬운 점이 보였다. 9년 만에 돌아온 팟캐스트 ‘CAUON AIR’는 한국 신진 작가의 작품에 대해
역대 최소 득표 차로 제20대 대통령 선거(대선)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당선됐다. 정권교체 여론이 다수였음에도 접전이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2030’의 표심이 ‘혐오 정치’를 심판했다는 분석도 존재했다. 그간 국민의힘은 ‘세대포위론’이라는 이름으로 반성평등 정서를 공략했다.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부터 윤석열 당선인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주장했다. OECD 국가 중 성별 임금 격차 1위인 한국의 대선 후보가 구조적 성차별의 존재를 모를 리 없다. 모른다면
또다시 중앙감사위원회(중감위)의 정기감사가 실시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제2대 중감위 인력이 모두 사퇴한 지난 학기에 이어 감사 공백이 발생한 셈이다. 현재 중감위가 학생사회에서 갖는 위치가 모호하다는 점은 명확하다. 별도로 공간조차 제공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더불어 중감위원장과 중감위원은 피감사기구로부터 선발된다. 이렇듯 중감위의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여건은 독립적인 감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중감위의 기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독립적인 중감위원 선발권을 보장해줘야 한다. 일부 학생들은 각
어떤 깨달음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온다. 거센 비바람이 불던 날, 평화로운 카페 안에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때였다. 한 여성이 카페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채 문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세차게 내리는 빗속에서도 한참을 머뭇거리는 그의 발걸음에 의아했으나, 이내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있음을 알아채고 불현듯 ‘혹시 이 카페 노키즈존(No Kids Zone)인가?’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너무나도 포근하게만 느껴졌던 카페 안의 시트러스 향이 괜스레 불쾌했다. 부끄러웠다. 누군가의 권리를 무심히 짓밟은 채 &lsqu
3월이다. 부쩍 따뜻해진 날씨 덕에 이제 패딩 점퍼를 입으면 덥다. 그동안 추위를 막아주었던 패딩 점퍼가 할 일을 마치고 옷장에 들어갈 때가 왔다. 열심히 살아온 것을 증명하듯 서너 달을 동고동락한 외투의 소매 끝에 때가 많이 꼈다. 매년 이맘때 겨우내 입었던 겉옷을 세탁소에 맡기면서 봄을 맞이해왔다. 세탁소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우리 가족이 오랫동안 단골이었던 세탁소 사장님이다. 세탁소 사장님과의 인연은 이사를 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기억한다. 몇 년 전 겨울에 이사를 갔던 우리 가족은 외투를 어느 세탁소에 맡길지 고민
지난해는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의 대학 수업이 비대면으로 진행되고 각종 행사가 취소되는 등 서로 간의 접촉을 최소화하며 생활하였다. 그러다 보니, 신입생이었던 나에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결국, 집에서 강의만 듣고 아무런 대학 생활도 하지 않으며 한 학기를 흘려보낸 채로 방학이 찾아왔다.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고 꿈에 그리던 대학에 입학했지만, 하나의 학기를 마친 나는 반년이 지났음에도 아무 생각 없이 놀기만 했던 입시가 막 끝난 시절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느꼈다. 학교는 물론 학과에 대한 소속감도
아쉬운 소리지만, 지면 검색 과정부터 녹록지 않았다. 웹사이트에 들어갔지만, 마주한 것은 학교 출판물·자료와 뒤섞인 중대신문 지면이었다. 가까스로 찾았지만, PDF 파일이 없었다. 확대·축소 기능도 자유도가 떨어졌다. 지면 PDF 수요가 많진 않겠지만, 대부분의 학보사가 PDF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분명 의외다. 조속히 접근성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 주된 인상은 ‘콘텐츠가 풍부하다’였다. 덕분에 읽는 재미를 잡았다. 보도 역시 드라이하게 주요 사건들을 잘 정리해서 전하고 있다. 다만 분
「대한민국헌법」 제24조는 모든 국민의 선거권을 보장한다. 그러나 모두가 투표장 앞에서 평등한 것은 아니다. 특히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은 선거공보와 방침은 불친절하다. 선거철마다 후보들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나라를 만들겠다 하지만 실상 투표과정에서조차 배제되고 있다. 우선 장애인은 후보자의 선거 공약과 정보에 접근하기 어렵다. 제20대 대통령선거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선거공보를 모두 제출한 후보는 12명 중 단 3명뿐이었다. 한자어와 외래어가 가득한 선거 공보물은 발달장애인에게 불친절하다고 지적돼왔지만 여전히 시정되지 않았다. 대선후
최근 대학별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는 대면 학사를 이전에 경험한 세대, 일명 코로나 학번이라고 불리는 세대로 분리돼 분열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대면 학사를 경험하지 못한 학번을 ‘고등학교 N학년’으로 낮춰 표현하는 등 이들의 갈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게시물이 올라오기도 했다. 개인의 문제를 특정 학번 전체의 문제로 일반화하는 모습이 비춰졌다. 이번 학기는 대면 학사로의 과도기다. 어느 정도의 혼란은 이미 예기됐다. 비대면 학사로 인해 선후배 간 교류는 사실상 사라졌다. 이에 정보를 획득할 창구가 사라진 학생들은
3월입니다. 매서웠던 추위가 가고 하나둘씩 옷차림이 가벼워지고 있습니다. 가벼워지는 옷차림과 달리 아직 마스크는 벗어내지 못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함에도 불구하고 최근 2년간 맡지 못했던 향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바로 새 학기의 향기입니다. 대면 학사가 시작됐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으로 운영됐던 학사가 끝을 맺고 많은 학생이 강의실에 발을 들였습니다. 강의실이 처음인 학생도 다수입니다. 상상 속 캠퍼스 라이프와 달랐던 온라인 대학 생활을 청산하고 밖으로 나올 기회가 주어진 것인데요. 다만 모두가 얼굴을
전쟁은 가공할 파괴와 참혹한 인명 살상을 초래하는 비극적이고 야만적인 사태다. 전투에 참여하는 병사들은 물론 무고한 민간인들이 살상되고 극심한 고통을 받게 됨을 우리는 수많은 전쟁 사례에서 목격해왔다. 그래서 전쟁의 비극을 막으려는 이들이 움직인다. 전쟁 발발 이전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미·러 양국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막고자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다. 물론 마크롱이 인도주의적 측면에서만 움직인 것은 아닐 터다. 복합적인 정치적 계산이 당연히 깔려 있을 테고 복잡한 국제정치 역학관계에
중대신문 기고 청탁을 받고 뭘 얘기할까 고민하다가 오래전 기자초년병 시절 들은 얘기가 떠올랐다. “기자가 갖춰야 할 자질이 무엇일까.” 당시 신문사 주필께서 질문을 던졌다. 취재력과 문장력이란 대답은 쉽게 나왔다. 하지만 주필은 ‘균형감각’을 강조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란 말을 덧붙였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미디어 환경도 크게 달라졌다. 하지만 세 가지 항목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본다. 특히 균형감각의 중요성은 더욱 필요하고, 강조해야 하는 부분이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지 벌써 2년이 지나면서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중 하나가 소비행태의 변화와 소득·소비 양극화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소비 활동이 비대면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온라인을 통한 거래가 급증하였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전체 소매업에서 차지하는 온라인쇼핑 비중이 39%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온라인쇼핑에서 플랫폼의 영향이 커지며, 플랫폼 기반의 온라인쇼핑이 대세가 되고 있다. 또한, 비대면 시대와 함께 배달시장이 급성장하며 배달의민족을 중심으로
개강이 다가왔다. 드디어 펼쳐진 대면 학사에 사람 냄새가 나는 풍경이 벌써 눈에 그려진다. 새내기들의 기분 좋은 혼란이 예상된다. 대면 학사를 처음 경험해보는 기존 재학생의 혼란도 있을 것이다. 이들을 끌어안기 위해 학교에서는 매년 교내 시설과 대학 문화를 소개하는 가이드라인을 배포한다. 학교생활의 빠른 적응과 원활한 학교 운영을 위함이다. 총학생회, 단대 학생회, 학과(부) 학생회 등 여러 단위에서 정보를 쉽게 전달하려 노력한다. 가이드라인이 가지는 의미는 그것이다. 사회의 규칙을 유지하고 소속감이 있는 단체 내에서 확실한 안정을
서울 주요 15개 대학 중 10곳이 총학생회를 구성하지 못했으며 총학생회 미구성의 가장 큰 원인은 입후보자 부재와 투표율 미충족이 대두되고 있다. 중대신문 제2005호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서울캠 또한 올해 총학생회를 구성하지 못했다. 서울캠 총학생회가 구성되지 못했다고 하니, 학생자치에 대한 걱정이 앞서게 된다. 학생자치는 교내 의사결정에서 학생들의 필요를 학교에 전달하는 가장 대표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다. 학생자치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한다는 건 학생들의 목소리가 학교 운영에 반영되지 못함을 의미한다. 또한 학생자치를 이루기 위한
대학 신문은 학내 구성원들이 학내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접할 수 있는 것을 제1의 목표로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통신 기술의 발달, 익명 커뮤니티 등장 등의 이유로 과거와 비교했을 때 현재 신문이 설 자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중앙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대학 신문이 사라지지 않은 이유는 단순할 것이다. ‘내가 애정을 가지고 속해 있는 단체의 소식을 공정하고 구체적으로 접할 수 있다’가 주된 이유일 것이다. 총학생회, 학사 운영 등의 기사는 위 이유와 일치하며 나 또한 흥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