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부활전 없이 탈락만 가득한 교육 현장 ‘입시’말고 무엇을 할 수 있나 교사도 괴롭다 ‘입시’말고 무엇을 할 수 있나 교사도 괴롭다‘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 참 많이 쓴다. 백면서생, 탁상공론하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이익은 정점에서 과대포장되고 문제는 정점에서 과소평가 된다. 그래서 현장을 들여 보는 일이 중요하다. 수많은 교육과정 개편과 입시 위주의
대학교 1학년, 나는 어떤 인간인가 ‘NEWS 모자이크’는 하나의 시사 사안을 모자이크의 한 조각으로 보고 이 사안들의 함의를 모아 새로운 이야기를 끌어내 보는 기획입니다. 연관성 없어 보이는 작은 조각들이 전혀 다른 큰 그림을 만들어내는 모자이크와도 같은 셈이죠. 이번주 NEWS 모자이크는 독일을 달군 17세 소녀의 트위터를 한 조각으로 해서 ‘입시만을
대학입학으로 모든성공 여부 결정짓지 말아야교육계 스스로도 문제해결 위해 노력 필요 “보라! 인간들은 일종의 지하에 있는 동굴에서 어두컴컴하게 살고 있는 것과도 같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 나오는 수인 (囚人)들은 동굴 벽에 비친 자신들의 그림자를 실체라고 생각하며 산다. 손발에 묶인 사슬을 끊고, 동굴 밖으로 탈출하고 나서야 비로소 눈에 보이던 세상이
찬성 “자유로운 비판 수용이 대학 권위를 살리는 길” 반대 “무리한 비판은 결국 구성원들만 피해 입어” 말은 또 다른 말을 낳는 법이다. 영화 의 오대수가 17년 동안 군만두를 꾸역꾸역 먹어야 했던 것도 그놈의 말 때문이었다. 우진이 친누나와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는 대수의 대수롭지 않은 말들로 인해서 그는 다시금 말을 할 수 없게 됐다. 대수의
게시물 검인실험 때로는 한 끝 차이가 엄청난 결과를 낳는다. 1도의 각도는 우주선의 궤도를 바꾸고 시험에서의 1점은 당락을 결정하기도 한다. 비난과 비판의 차이도 그 한 끝이다. 대학 사회 안에서 대학본부를 비판하는 것은 모호하고도 어려운 일이다. 각기 생각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중앙대의 ‘한 끝’은 무엇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진입 장벽이 낮아
교수들이 말하는 대학 비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17세기 관념주의 철학자 데카르트의 말이다. 다른 모든 사물은 의심할 수 있어도 그와 같이 의심하고 있는 나의 존재는 의심할 수 없다. 의심하는 것, 다시 말해 사유하고 있는 순간에 나는 존재하는 것이다. 비판도 생각이다. 내 나라 대통령의 정책부터 지금 내 손에 들린 커피까지, 모든 것을 의심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