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강까지 2주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여름방학 때 무엇을 할지 다들 기대에 부풀어 있을 텐데요. 그전에 잠깐, 종강을 맞이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관문이 있습니다. 바로 기말고사입니다. 오는 16일부터 2014년 1학기를 마무리하는 기말고사가 시작됩니다. 이맘때쯤 도서관엔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학생들로 가득하죠. 그 가운데 지쳐 잠들어 있는 학생들도 듬성듬성
요즘 학내 곳곳에선 각 학과 학생회에서 주관하는 주점이 열리고 있는데요. 주점하면 신나는 음악이 빠질 수 없겠죠. 음악에 취해 흥에 겨워 몸을 흔드는 학생들도 종종 보입니다. 70년대의 중앙대 학생들도 지금 학생들 못지않게 풍류를 즐길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당시 학생들은 트위스트, 고고 등 최신 유행 춤을 추며 청춘을 만끽했는데요. 장재인 동문(약학과 6
진선미와 지덕체를 겸비한 미인을 뽑는 미인선발대회가 1969년 중앙대 캠퍼스에서 ‘미스승당선발대회’라는 이름으로 열렸습니다. 40년이 흐른 지금과 비교해 봐도 예나 지금이나 미의 기준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반윤구 동문(체육교육과 69학번)은 “캠퍼스 내에서 인물이 좋은 사람들이 미스승당선발대회에 나갔다”며 “대회에 수상한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보
지금의 서울캠에는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있지만 34년 전 캠퍼스에는 사뭇 다른 ‘봄바람’이 불었습니다. 학생들은 1980년 5월 14일 ‘계엄철폐’를 외치며 영신관 앞을 행진했습니다. 이날 모인 2,000여명의 중앙대생들은 캠퍼스를 돌아 영등포역에 집결했는데요. 이곳에서 서울대, 숭전대(현 숭실대) 학생들 수천 명과 합류해 시청까지 나아갔습니다. 시위에 참
1991년 의혈대동제 행사에서 학생들이 인간 구조물을 쌓고 있는 모습입니다. 동기들끼리의 협동정신을 엿볼 수 있는 활동인 것 같은데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예대의 체육대회인 ‘대동제’는 여전히 매년 열리고 있습니다. 사진전공의 한 졸업생(07학번)은 “대동제에서 구기종목이 메인행사라면 기와밟기라는 코너행사가 있었다.”며 “사람을 밟고 지나가야 하는 놀이기 때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농사일 와중에 먹는 새참의 맛이 대표적이죠. 25년 전 농활을 갔던 당시의 학생들에게도 그 맛은 잊지 못할 추억입니다. 그럼에도 1990년대 당시의 농활의 모습은 지금과는 많이 다른데요. 출발 전 아동반, 부녀반, 아저씨반, 장로반으로 나뉘어 그 특색에 맞게 일을 부여받았습니다. 90년대 농활을 갔던 이지훈 동문(
어느덧 중간고사가 2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텅 비었던 도서관은 이맘때쯤 다시 시험공부를 하려는 학생들로 북적이곤 하죠. 50년 전에도 지금처럼 중앙대 학생들의 학구열은 여전히 뜨거웠는데요. 1964년 서울캠 중앙도서관 열람실에서 시험공부에 여념이 없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이시나요? 2009년 리모델링으로 인해 오늘날 학술정보원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지만 열람
1947년 서울캠 청룡연못에 설치된 무대에서 ‘캠퍼스 모드쇼’가 열렸습니다. 참가자들은 당시 최신 유행의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을 한껏 선보였죠. 유행은 돌고 돈다더니 사진 속에 보이는 학생들의 옷차림은 40년이 흐른 지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최신 유행 스타일로 맞춰 입고 트위스트나 고고춤을 추던 70년대 대학생들, 이들에게도 자유와 낭만에 대
스마트폰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요즘 같지는 않지만 예전 중앙대 학생들도 한 스마트했답니다. 1984년 11월 16일 중앙대는 국내 최초로 서울-안성 간 시외버스 14대에 어학 실습 시스템을 도입해 이동교실을 운영했습니다. 이동교실에는 오디오와 헤드셋이 설치돼 영어 회화 학습이 가능했는데요. 하루에 천여 명의 학생들이 1시간 10분 동안 이동하면서 유익한
여기가 중앙대 맞나요?드넓은 잔디밭에 커다란 건물이 여유롭게 들어선 사진 속의 전경은 바로 여러분이 다니고 있는 50년대 말의 서울캠퍼스 모습이랍니다. 안성캠퍼스가 생기기도 전인 아주 옛날이지요. 현재와는 많이 다르지만, 지금까지 그 모습을 유지한 건물들이 몇몇 눈에 띄네요. 영신관 앞에는 루이스가든이, 본관 앞에는 청룡상이 세워지기 전의 청룡호수가 보입니
영신관에 얽힌 오래된 이야기 와인이 오래되면 좋은 향을 내는 것처럼 건물이 오래되면 지긋한 세월의 멋을 풍기죠. 1938년 5월에 완공된 영신관은 올해로 76년째 중앙대 정문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 영신관을 짓기 위해 당시 임영신 여사는 각고의 노력을 들였다고 합니다. 지을 당시 일제의 압박 때문에 건축 자금을 위한 기부금이나 모금활동이 불가능했습니다. 그
‘결코 답이 없는 고민과 불안에 힘들어할 때에도 난 버스를 탔지’란 노랫말처럼 수많은 중앙대 학생들의 청춘과 함께한 84번 버스의 모습입니다. 84번 버스는 1970년대부터 2004년 노선체계개편 전까지 중앙대 학생들의 추억을 실었습니다. ‘중대버스 84번’이란 별명으로 불리던 84번 버스는 2004년 151번 버스라는 새 이름을 얻었는데요. 지금도 151
중앙대 합격자들이 입학처에서 합격증을 교부받는 모습입니다. 03학번 이후 학생들에게는 생소한 풍경인데요. 웹서비스로 변환돼 합격증을 인터넷으로 출력할 수 있게 된 03학번 이전에는 일상적인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그때는 합격자가 본인의 수험표를 들고 와 직접 합격증을 받아갔습니다. 사진 속 설레던 신입생들은 이미 까마득한 고학번 선배님들이실 텐데요. 그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