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흔히 정보화 시대라 부릅니다. 여러 전자기기와 밀접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매일 다양한 사건들을 알게 됩니다. 이 과정은 매우 간단합니다. 주머니 속 휴대폰으로 인터넷 뉴스를 볼 수도 있고, 커뮤니티에 접속해 여러 게시글을 보며 세상을 바라볼 수도 있죠. 그것의 참과 거짓은 인식하지 않은 채로 말입니다. 최근 울산에서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던 개가 8살 아이를 공격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지나가던 택배기사의 도움으로 아이는 무사했습니다. 유튜브에는 해당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이 올라왔고,
7월 6일 일본 정부가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에게 후생 연금 탈퇴 수당을 보내왔습니다. 77년 세월이 지난 노역의 대가는 긴 세월 그대로 지급됐습니다. 단돈 99엔. 한화 약 967원으로 1000원에도 못 미치는 액수입니다. 액면가 그대로, 물가 상승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지급한단 건 어떠한 상식인가요. 자국민에게는 올바르게 적용되고 있는 개정된 후생 연금 보험법이 어째서 한국인 강제 동원 피해자들만은 피해 가는 것인지요. 77년 전 강제 동원 피해자가 약 1년 반 동안 흘린 땀방울의 대가는 오늘날 껌값도 안 되는 값어치로 변모
폭우 속 컨트롤 타워는 없었다 탁상공론 아닌 현실적 대책 마련하길비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 하룻밤 새 약 7명이 숨졌다. 115년 만의 기록적 폭우였다. 8일 서울특별시(서울시)에는 시간당 최대 141.5mm에 달하는 비가 내렸다. 이수역, 대치역 등이 물에 잠겼고 강남 일대 도로에는 수십 대의 침수 차량이 즐비했다. 10개가 넘는 자치구에서 산사태 경보·주의보를 발령하기도 했으며 도림천 등은 범람했다. 재난은 예견돼있지 않았나. 전날 기상청은 최대 300mm 이상의 예상 강수량을 대통령실에 전달했다. 그럼에도 윤석열
필자가 작년 9월 중앙대에 부임한 뒤 1년이 지났다. 학교 시스템에 적응하고 강의와 연구를 준비하느라 많은 시간을 연구실에서 홀로 보내며 분주히 하지만 다소 외롭게 지냈다. 지난 학기 대면 수업이 재개됐지만 대형 강의를 맡은 탓에 학생들과 직간접적으로 만날 기회도 좀처럼 만들기 어려웠다. 학생들 역시도 비슷하게 지냈던 듯하다. 21학번 새내기 교수로서, 수업시간 주로 필자의 말을 들어주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수업 바깥에서 쏟아내는 다양한 ‘그들의’ 이야기가 늘 궁금했다. 대학 때를 돌이켜보면 수업이라는 것
희노애락(喜怒哀樂). 감정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사람들은 오랜 옛날부터 자신이 다양한 감정을 지니고 있음을 자각했다. 희(喜), 노(怒), 애(哀), 락(樂) 각각이 혼합되고 새로운 감정이 만들어지며 감정의 개수를 셀 수 없게 되자, 우리는 ‘감정 스펙트럼’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기쁨’이라는 스펙트럼의 시작부터, ‘분노’와 ‘절망’이라는 스펙트럼의 끝까지, 다양한 감정을 순서대로 나열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감정의 다양성을 이유로, 같은 상황을
오랜 시간 대학에 재직하면서, 참 많은 존경하는 선배 그리고 동료 교수님들을 뵐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 중에서 아마도 저에게 가장 큰 가르침을 주신 분은 이제 머지않아 정년퇴임을 하시는 국어국문학과 이찬욱 교수님이십니다. 제가 언제 교수님을 처음 뵙게 됐는지 기억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직접 가까이에서 교수님을 뵙게 된 것은 교내 축구대회에 참여하게 된 15 ~ 16년 전쯤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우리 중앙대에는 매년 가을 개교기념일 행사로서 이사장배 교내 축구대회가 열려 왔습니다. 교수팀, 의대팀, 직원팀 그리고 부속학교팀
필자가 몸담은 학생자치는 학우들에게 책임을 지는 자리이다. 사업의 내용과 진행 상황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려야 할 의무를 지며, 학우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수용해야 한다. 인권복지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학생자치기구에서는 소통창구를 운영하고, 주기적으로 홍보물을 게시하며, 매 학기 학생대표자회의에서 사업 보고와 질의응답을 진행하지만, 소통에 여전한 갈증을 느끼는 이들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평소 발행하는 공지나 홍보물에는 제한적인 내용만을 담을 수 있다. 확정되지 않은 사항이나 핵심적이지 않은 내용을 포함한다면 되려 혼란을 일으킬 수 있기
돌아온 5월은 즐겁고 활기찼다. 중앙인에게는 대동제가 다시 찾아왔다. 지난 2년 동안 주문처럼 외던 ‘일상회복’이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중대신문도 청룡들이 즐긴 봄축제의 현장을 1면에 담으며 그 순간을 함께했다. 축제는 물론 303관(법학관) 식당 운영이 재개했다는 반가운 소식과 스쿼시 등 스포츠 활동을 다루는 기사까지. 중대신문 제2017호에 담긴 일상회복이 반갑고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이제는 정말 팬데믹의 상처가 아물 것 같아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그러나 더 나아진 것만 같은 지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냥
필자는 이번 학기 개강 첫날 코로나19에 확진됐다. 설마 하던 마음은 불안으로 바뀌고 학생들의 건강만 염두에 둔 학교의 일방적인 대면 수업 결정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학생들과는 달리 자가 격리 후에도 후유증 기침으로 비대면 수업을 계속해야만 했고, 결국 병원에서 처방한 약을 먹고서야 나아졌다. 학기 초 전격 대면 수업으로 예견치 못한 상황이 드러났다. 자가 격리 중인 학생, 첫날부터 확진된 교직원, 정보가 없어 우왕좌왕하는 신입생, 아직도 한국에 오지 못한 유학생 등으로 여전히 학교는 어수선했다. 누가 신입생이고 선배인지 서로 경계
20년 전, 나는 주거공간과 사무실로 사용해오던 2층 주택을 헐고 5층 다세대 주택을 지었다. 옥상 공간을 전용으로 사용하고 싶어 공용계단을 4층까지만 두었다. 4층 현관문에 들어서면 실내계단을 통해 5층으로, 5층 거실에서 옥상정원까지 이어지게 설계를 했다. 옥상정원은 거실의 높은 층고와 눈높이 이상의 가벽을 이용해 3면의 시야를 주변 건물로부터 차단하고 저 멀리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도록 한쪽 면만 시야를 확보했다. 그 앞에는 작은 화단을 만들었다. 다세대주택의 프로토타입에서 조금 벗어난 이 건물의 허가를 받는데 꽤나 애를 먹었
행복. 이렇게 원초적인 단어를 되게 오랜만에 보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그러할지도 모른다. 죽음, 삶, 행복이란 무엇인가 하는 고민거리들은, 성인이 된 지금은 답을 내리는 시간이 짧아진 것 같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점차 커가면서 이 질문에 대한 답과 생각들이 매번 바뀌어 가는 나를 마주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아, 나를 알아갈 수 있는 게 바로 행복이구나! 인격과 가치관을 형성해나가며 ‘나’라는 사람을 세워간다는 것이 사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원초적인 행복이 아닐까? 그 예시로,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며 더욱
현행법상 의료급여 수급권자 중 노숙인은 지정된 병원만을 이용해야 한다는 제약 사항이 있다. 몸이 아플 때 흔한 동네 병원에 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위급 상황에서도 지정된 병원에만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차별의 제도화이자, 의도적인 의료접근권 배제다. 노숙인 1종 의료급여 수급권자는 전국에 333명. 이중 서울특별시 외 지역 노숙인은 11명뿐이다. 지방자치단체(지자체)에서 정한 시설에서만 의료급여를 신청할 수 있는 구조에서, 해당 시설이 없는 지자체도 있다. 의료급여 신청권이 제한됐기에 비서울권 노숙인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은 건 당
1월부터 비건 학식 운영이 중단됐다. 대학본부는 교차 오염을 방지할만한 조리기구와 조리원 인력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을 원인으로 언급했다. 게다가 비건 학식 수요 역시 부족해 운영에 제한이 있다고 전했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학사와 일부 대면 학사로의 전환 등 비건 학식 운영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채식은 개인의 선호와 취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념의 자유와 건강권, 행복추구권으로 존중돼야 한다는 점에서 비건 학식이 꼭 필요하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권리와 가치에 대한 배려는 형편이 될 때 제공하는 게 아니
“우리 삶에는 시간의 점이 있다. 이 선명하게 두드러지는 점에는 재생의 힘이 있어, 이 힘으로 우리를 파고들어 우리가 높이 있을 때는 더 높이 오를 수 있게 하고 우리가 쓰러졌을 때는 다시 일으켜 세운다.” 윌리엄 워즈워스의 에 있는 구절입니다. 시간의 점은 인생의 순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억으로 삶의 원동력을 찾는 그런 ‘순간’을 말합니다. 기자는 바야흐로 지난해 수습기자 시절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수습기자 시절, 선배 기자가 내준 인터뷰 과제 덕분에 판사인 외숙모를 취재한 적이
중대신문에 입사한 이유는 뚜렷했습니다. 취재 경험을 쌓으며 사진기자로서의 능력을 확인하는 것. 입사 후에도 목표는 계속 바뀌었습니다. 정기자 시절엔 ‘취재력이 뛰어난 기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밀려오는 취재와 학업에 숨이 차 후회하면서도 매주 월요일마다 내 기사를 확인할 때 살아있음을 느꼈습니다. 정기자 생활이 끝나고, 원하던 사진팀을 꾸리게 된 나의 이상향은 ‘사진을 잘 찍는 작가’로 옮겨갔습니다. 보도사진이라는 틀을 벗어난 새로운 사진기획을 보여주고자 했죠. 정확하게는 사진면의 존재 이
기자는 이번 학기 서울캠 신문 배부를 맡았습니다. 일요일 저녁마다 캠퍼스를 돌며 남은 신문을 수거하고, 새 신문을 채웁니다. 신문이 담긴 수레를 끌고 캠퍼스를 돌아다니면 힘들긴 해도 좋은 일이 생기곤 합니다. 어느 날은 과 동기를 우연히 만났는데 선뜻 도와주겠다고 한 적도 있죠. 하지만 역시 가장 기분 좋은 일은 신문이 많이 남지 않은 배부대를 마주했을 때입니다. 중대신문 기자들이 일주일 동안 열심히 작성한 기사가 많이 읽혔으리라 생각하면 힘이 솟죠. 신문 배부를 하며 가장 힘든 점은 캠퍼스의 가파른 경사입니다. 특히 정문 인근 1
언론 집필에 있어 중요한 덕목은 많다. 중대신문은 중앙대라는 공간과 학교라는 점에서 편집에 있어 균형감은 다른 덕목 보다 특히 더 중요하다. 예를 들면 동문은 중대신문을 받을 때마다 모교에 대한 근황을 궁금해하며 신문을 펼쳐 볼 것이다. 그렇지만 동문이 궁금해한다는 이유로 중앙대 관련 기사만 쓰다 보면 중대신문은 지역 소식지가 될 수 있다. 또한 시중의 종합일간지와 같이 정치, 사회, 문화, 국제 이슈 위주로 신문을 발행하면 독자들은 굳이 중대신문을 찾아볼 이유가 상대적으로 희박해진다. 독자에게 읽히고 싶은 내용과 독자가 읽고 싶은
기고 청탁을 받은 후 중대신문 제2016호를 찬찬히 살펴봤다. ‘서울캠 부지 용도 변경’과 ‘강의 재사용 문제’에 관한 기사를 통해 캠퍼스 내 사건과 현상들에 대한 학생들의 비판적인 시각을 접할 수 있었다. 일상에서 동기들과의 단순한 대화 소재에서 그칠 수 있는 문제들을 기사로 재조명하고 문제 제기를 하는 중대신문의 날카로운 시선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서울특별시장 후보 간담회 특집기사나 대학생의 성 고민 등 대학생들의 최근 관심사와 고민거리를 엿볼 수 있는 장도 다채롭게 펼쳐져 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