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몸담은 학생자치는 학우들에게 책임을 지는 자리이다. 사업의 내용과 진행 상황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려야 할 의무를 지며, 학우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수용해야 한다. 인권복지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학생자치기구에서는 소통창구를 운영하고, 주기적으로 홍보물을 게시하며, 매 학기 학생대표자회의에서 사업 보고와 질의응답을 진행하지만, 소통에 여전한 갈증을 느끼는 이들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평소 발행하는 공지나 홍보물에는 제한적인 내용만을 담을 수 있다. 확정되지 않은 사항이나 핵심적이지 않은 내용을 포함한다면 되려 혼란을 일으킬 수 있기
돌아온 5월은 즐겁고 활기찼다. 중앙인에게는 대동제가 다시 찾아왔다. 지난 2년 동안 주문처럼 외던 ‘일상회복’이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중대신문도 청룡들이 즐긴 봄축제의 현장을 1면에 담으며 그 순간을 함께했다. 축제는 물론 303관(법학관) 식당 운영이 재개했다는 반가운 소식과 스쿼시 등 스포츠 활동을 다루는 기사까지. 중대신문 제2017호에 담긴 일상회복이 반갑고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이제는 정말 팬데믹의 상처가 아물 것 같아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그러나 더 나아진 것만 같은 지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냥
필자는 이번 학기 개강 첫날 코로나19에 확진됐다. 설마 하던 마음은 불안으로 바뀌고 학생들의 건강만 염두에 둔 학교의 일방적인 대면 수업 결정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학생들과는 달리 자가 격리 후에도 후유증 기침으로 비대면 수업을 계속해야만 했고, 결국 병원에서 처방한 약을 먹고서야 나아졌다. 학기 초 전격 대면 수업으로 예견치 못한 상황이 드러났다. 자가 격리 중인 학생, 첫날부터 확진된 교직원, 정보가 없어 우왕좌왕하는 신입생, 아직도 한국에 오지 못한 유학생 등으로 여전히 학교는 어수선했다. 누가 신입생이고 선배인지 서로 경계
20년 전, 나는 주거공간과 사무실로 사용해오던 2층 주택을 헐고 5층 다세대 주택을 지었다. 옥상 공간을 전용으로 사용하고 싶어 공용계단을 4층까지만 두었다. 4층 현관문에 들어서면 실내계단을 통해 5층으로, 5층 거실에서 옥상정원까지 이어지게 설계를 했다. 옥상정원은 거실의 높은 층고와 눈높이 이상의 가벽을 이용해 3면의 시야를 주변 건물로부터 차단하고 저 멀리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도록 한쪽 면만 시야를 확보했다. 그 앞에는 작은 화단을 만들었다. 다세대주택의 프로토타입에서 조금 벗어난 이 건물의 허가를 받는데 꽤나 애를 먹었
행복. 이렇게 원초적인 단어를 되게 오랜만에 보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그러할지도 모른다. 죽음, 삶, 행복이란 무엇인가 하는 고민거리들은, 성인이 된 지금은 답을 내리는 시간이 짧아진 것 같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점차 커가면서 이 질문에 대한 답과 생각들이 매번 바뀌어 가는 나를 마주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아, 나를 알아갈 수 있는 게 바로 행복이구나! 인격과 가치관을 형성해나가며 ‘나’라는 사람을 세워간다는 것이 사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원초적인 행복이 아닐까? 그 예시로,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며 더욱
현행법상 의료급여 수급권자 중 노숙인은 지정된 병원만을 이용해야 한다는 제약 사항이 있다. 몸이 아플 때 흔한 동네 병원에 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위급 상황에서도 지정된 병원에만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차별의 제도화이자, 의도적인 의료접근권 배제다. 노숙인 1종 의료급여 수급권자는 전국에 333명. 이중 서울특별시 외 지역 노숙인은 11명뿐이다. 지방자치단체(지자체)에서 정한 시설에서만 의료급여를 신청할 수 있는 구조에서, 해당 시설이 없는 지자체도 있다. 의료급여 신청권이 제한됐기에 비서울권 노숙인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은 건 당
1월부터 비건 학식 운영이 중단됐다. 대학본부는 교차 오염을 방지할만한 조리기구와 조리원 인력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을 원인으로 언급했다. 게다가 비건 학식 수요 역시 부족해 운영에 제한이 있다고 전했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학사와 일부 대면 학사로의 전환 등 비건 학식 운영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채식은 개인의 선호와 취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념의 자유와 건강권, 행복추구권으로 존중돼야 한다는 점에서 비건 학식이 꼭 필요하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권리와 가치에 대한 배려는 형편이 될 때 제공하는 게 아니
“우리 삶에는 시간의 점이 있다. 이 선명하게 두드러지는 점에는 재생의 힘이 있어, 이 힘으로 우리를 파고들어 우리가 높이 있을 때는 더 높이 오를 수 있게 하고 우리가 쓰러졌을 때는 다시 일으켜 세운다.” 윌리엄 워즈워스의 에 있는 구절입니다. 시간의 점은 인생의 순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억으로 삶의 원동력을 찾는 그런 ‘순간’을 말합니다. 기자는 바야흐로 지난해 수습기자 시절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수습기자 시절, 선배 기자가 내준 인터뷰 과제 덕분에 판사인 외숙모를 취재한 적이
중대신문에 입사한 이유는 뚜렷했습니다. 취재 경험을 쌓으며 사진기자로서의 능력을 확인하는 것. 입사 후에도 목표는 계속 바뀌었습니다. 정기자 시절엔 ‘취재력이 뛰어난 기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밀려오는 취재와 학업에 숨이 차 후회하면서도 매주 월요일마다 내 기사를 확인할 때 살아있음을 느꼈습니다. 정기자 생활이 끝나고, 원하던 사진팀을 꾸리게 된 나의 이상향은 ‘사진을 잘 찍는 작가’로 옮겨갔습니다. 보도사진이라는 틀을 벗어난 새로운 사진기획을 보여주고자 했죠. 정확하게는 사진면의 존재 이
기자는 이번 학기 서울캠 신문 배부를 맡았습니다. 일요일 저녁마다 캠퍼스를 돌며 남은 신문을 수거하고, 새 신문을 채웁니다. 신문이 담긴 수레를 끌고 캠퍼스를 돌아다니면 힘들긴 해도 좋은 일이 생기곤 합니다. 어느 날은 과 동기를 우연히 만났는데 선뜻 도와주겠다고 한 적도 있죠. 하지만 역시 가장 기분 좋은 일은 신문이 많이 남지 않은 배부대를 마주했을 때입니다. 중대신문 기자들이 일주일 동안 열심히 작성한 기사가 많이 읽혔으리라 생각하면 힘이 솟죠. 신문 배부를 하며 가장 힘든 점은 캠퍼스의 가파른 경사입니다. 특히 정문 인근 1
언론 집필에 있어 중요한 덕목은 많다. 중대신문은 중앙대라는 공간과 학교라는 점에서 편집에 있어 균형감은 다른 덕목 보다 특히 더 중요하다. 예를 들면 동문은 중대신문을 받을 때마다 모교에 대한 근황을 궁금해하며 신문을 펼쳐 볼 것이다. 그렇지만 동문이 궁금해한다는 이유로 중앙대 관련 기사만 쓰다 보면 중대신문은 지역 소식지가 될 수 있다. 또한 시중의 종합일간지와 같이 정치, 사회, 문화, 국제 이슈 위주로 신문을 발행하면 독자들은 굳이 중대신문을 찾아볼 이유가 상대적으로 희박해진다. 독자에게 읽히고 싶은 내용과 독자가 읽고 싶은
기고 청탁을 받은 후 중대신문 제2016호를 찬찬히 살펴봤다. ‘서울캠 부지 용도 변경’과 ‘강의 재사용 문제’에 관한 기사를 통해 캠퍼스 내 사건과 현상들에 대한 학생들의 비판적인 시각을 접할 수 있었다. 일상에서 동기들과의 단순한 대화 소재에서 그칠 수 있는 문제들을 기사로 재조명하고 문제 제기를 하는 중대신문의 날카로운 시선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서울특별시장 후보 간담회 특집기사나 대학생의 성 고민 등 대학생들의 최근 관심사와 고민거리를 엿볼 수 있는 장도 다채롭게 펼쳐져 있다는
여러 차례 음주운전을 하거나 음주 측정을 거부한 자를 가중처벌하는, 이른바 ‘윤창호법’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헌법재판소(헌재)에서 내렸다. 지난해에도 유사한 조항을 위헌으로 본 헌재가 그 입장을 유지한 셈이다. 현행법상 재범 기간이나 인명 피해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음주운전에 가중처벌을 부여했다. 이에 헌재는 음주 치료 등 비형벌적 수단에 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일률적으로 가중처벌하는 건 형벌의 기능을 넘어선다며 위헌 근거를 제시했다. 이로써 윤창호법은 사실상 그 효력을 잃게 됐다. 예견된 수순이었다. 2018년
발달장애 가정이 또다시 죽음으로 내몰렸다. 23일 40대 여성이 발달장애를 가진 6살 아들과 숨진 채 발견됐다. 최근 2년간 부모가 발달장애 자녀와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시도한 사례가 최소 20건에 달한다. 2014년 정부는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면서 발달장애인의 더 나은 삶을 약속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발달장애 가정이 오랜 시간 요구한 것은 단 하나, 24시간 돌봄 체계 마련이다. 현재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나 이용 가능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더불어 인력 또한
코로나19는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다행히 현재 사회는 코로나19 이전과 포스트 코로나의 균형을 찾아 조화로운 미래를 그리려 노력 중이다. 사회는 개개인의 총합으로 구성된다. 각자의 상이한 도덕 원칙은 늘 첨예하게 충돌하며 ‘윤리적 딜레마’를 형성한다. 팬데믹 속에서도 이런 딜레마는 예외 없이 발생했다. 과열된 팬데믹 상황에서 조금은 벗어난 현재, ‘백신’에 대한 의견을 중립적으로, 그저 담백하게 풀어내고자 한다.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코로나19 백
십수 년 전 나는 이곳 안성캠에 있었다. 매 학기 기말고사 시즌이 되면, 진도가 꽉 막혀버린 전공 실기 작곡 과제를 밤새워 작업했다. ‘나는 재능이 없는 걸까?’ 자책하기도 하며, 재능의 부족을 시간으로 채우려는 듯 무수히 많은 밤 캠퍼스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밤거리를 걷다 보면 막힌 생각이 정리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튀어나오곤 해서 다시 작업할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캠퍼스 밤길을 걷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나 나무가 보여주는 풍경 때문이었다. 사람이 없는 텅 빈 캠퍼스의 밤. 열기가 식은 거
“안녕하세요, 중앙대학교 학보사 중대신문 송다정 기자입니다.” 필자가 취재할 때 취재원에게 항상 먼저 건네는 말이다. 얼마 전 청와대 개방을 맞아 사진부와 함께 취재를 다녀왔다. 취재하던 중 커다란 카메라를 지닌 한 분이 다가와 갑작스레 인터뷰를 요청했다. ‘청와대가 74년 만에 개방했는데, 청와대를 둘러본 소감이 어때요?’, ‘정부에 앞으로 바라는 점이 있나요?’ 등의 질문을 받았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기자는 그간 취재원에게 질문하는 건 익숙했지만, 취재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