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로 돌아온 여성에게공포영화보다 무서운건 현실이었다 보통 귀신이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처녀 귀신’의 이미지다. 하지만 실제 기록으로 전해지는 것 중 여귀가 나오는 서사는 「장화홍련전」과 ‘아랑 전설형 설화’로 대별될 만큼 그 종류나 수가 많지 않다. 한국의 대표 귀신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처녀 귀신이 귀신의 표상이 된 것일까. 나아가, 왜 한국에선 여성들이 귀신이 된 것일까. 억압 속에서 돌아오는 것은 이에 답을 하기 위해선 인간이 무엇에 공포를 느끼는지 알 필요
클리셰는 자주 반복돼 습관처럼 쓰이는 설정을 말합니다. 자주 쓰였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으로 당연시됐다는 것을 뜻하겠죠. 이번 학기 문화부는 클리셰를 들여다보고 그 의미들을 파헤쳐 보려 합니다. 이번 주 클리셰는 바로‘여성괴물’입니다. 여러분은 '귀신'이란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전설의 고향의 구미호부터, 머리를 풀어헤친 처녀 귀신까지. 수많은 여성 귀신들의 이미지가 떠오르실 텐데요. 왜 '보통의 인간'은 남성으로 상상되는 반면 '보통의 귀신
아빠가 아빠가 되는게 재미있는 세상 ‘아버지에게 아이를 맡기면 안 되는 이유’라는 제목의 사진 시리즈가 SNS상에서 화제가 됐었다. 편안히 TV를 보기 위해 아이를 벽에 붙여놓는다든가, 아이에게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장난을 치는 사진들이 주를 이뤘다. 아버지에게 아이를 맡기면 ‘이런 꼴’이 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아버지와 아이의 조합이 특별한 것이 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유달리 아버지의 육아가 자주 보이는 곳이 있다. 바로 TV 예능이다. 최근 나,
사랑과 희생은어머니의 본능이 아니다 ‘인형 옷 입히기’는 인형에게 자신이 원하는 옷을 입히는 놀이다. 인형이 입는 옷은 전적으로 옷을 입히는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 어떤 옷이 입혀지더라도 인형은 그저 미소를 띠고 있을 뿐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모성애의 모습과 유사하다. 사회가 여성에게 ‘모성애’라는 옷을 입힘과 동시에 어머니는 미소 띤 자애로운 얼굴을 한 채로 사랑과 헌신으로 무장을 해야만 했다. 어쩌다 여성은 ‘모성애’라는 옷을 입게 됐으며 이는 여성에게 어떤 억
클리셰는 자주 반복돼 진부해진 설정을 말합니다. 자주 쓰였다는 것은 그만큼 사 회적으로 당연시됐다는 것을 뜻하겠죠. 이번학기 문화부는 클리셰를 들여다보고 그 의미들을 파헤쳐 보려 합니다. 이번 주 클리셰는 바로‘모성애’입니다. 흔히들 모성애는 본능이라고 얘기합니다. 열달 동안 한 몸이었기에 어머니와 자식 간엔 아버지가 절대 알 수 없는 유대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죠. 하 지만 과연 모성애가 본능일까요? 왜 미디어에서 어머니는 숭고하거나 기이한 형태 로 드러날까요? 엄마라서 그래야 하고엄마라서
‘두 여인을 화합시키기는 것보다 유럽 전체를 화합시키는 편이 쉽다.’ 루이 14세가 한 말이다. 이 말에 대한 책임을 지려면 루이 14세는 당장에라도 유럽 전체를 화합시켜야만 했다. 여성들은 서로 연대해 여러 가지 의미를 이룩해 나가고 있고, 이러한 모습이 콘텐츠에도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콘텐츠 속 여성 간 연대를 들여다봤다. 함께할수록 선명해진 ‘나’ 는 드물게 멤버가 모두 여성인 예능프로그램으로, 꿈에 투자하는 계모임 ‘꿈계’를 통해 서로 돌
흐려진 본질 위싸우는 여성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 중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진 헤라. 하지만 제우스의 끊임없는 불륜에 골머리를 앓는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사람들은 그를 ‘질투의 화신’이라 부른다. 그의 모든 처사 또한 질투로 함축되고 그 대상은 제우스의 불륜 상대에게 한정된다. 제우스의 권력이 절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제우스 옆의 여성만을 응징할 수밖에 없던 헤라의 사정은 질투라는 이름 아래 가려질 뿐이었다. 작은 파이 위의 결투 인터넷 커뮤니티 속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는 글엔 ‘여적여 어디 안
클리셰는 자주 반복돼 진부해진 설정을 말합니다. 자주 쓰였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으로 당연시됐다는 것을 뜻하겠죠. 이번학기 문화부는 클리셰를 들여다보고 그 의미들을 파헤쳐 보려 합니다. 이번주 클리셰는 바로 ‘여자의 적은 여자(여적여)’ 입니다. 수많은 콘텐츠에서 여성캐릭터는 질투하며 서로를 적대시하는 존재로 그려져왔죠. 미디어 속에서 여성이 ‘여적여’구도로 묘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과연 여성의 적은 여성일까요? ‘여적여’ 클리셰를 분석해봤습니다. 여주인공은 여전히
“보그를 루브르 박물관으로 만들어봅시다!(Let`s make Vogue a Louvre!)” 세계적인 패션잡지 보그의 수석 포토그래퍼 에드워드 스타이켄이 한 말이다. 이후 보그엔 명화에서 영감을 얻은 수많은 사진들이 실렸다.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사진들이 실린 보그지는 그 자체로 하나의 박물관이 됐다. 세계적인 잡지 보그의 아카
“인생을 보고, 세상을 봐라” 잡지 를 기획하며 헨리 루스가 내건 슬로건이다. 잡지 는 아름다운 보도 사진에 사람들의 삶을 담아냈다. 그리고 그 삶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세상을 전했다. 예술의 전당에서 개막된 에는 잡지 에 담긴 1000만 개의 사진 중 132점이 전시됐다. 세계 각국에서 담은 132개의 순간은
“카메라가 시인의 머리와 시인의 눈이 되지 않는 한 좋은 사진은 나오지 않는다.” 미국의 영화감독 오스 웰즈의 말이다. 사진이 담고 있는 예술적 가치는 이 한마디로 설명된다. 카메라가 세상에 처음 탄생했을 때, 카메라는 사람들의 모습과 역사를 담는 기록의 도구일 뿐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국제 미술 전시회인 베니스비엔날레에 걸리는 작품의 절반 이상이 사진과
『발가락이 닮았다』는 1932년 발표된 김동인의 단편 소설이다. 소설 속 노총각 M은 아내가 낳은 혼외자와 자신의 발가락이 닮았다며 눈물겨운 합리화를 보인다. 하지만 이제 노총각 M처럼 발가락이 닮았다며 상황을 합리화시킬 필요가 없어졌다. 더이상 혼외자를 기르는 상황이 멀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재혼 가족, 입양 가족, 주거공동체 등 콘텐츠가 보여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혈연의 얕은 신화흔히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은 운명에 비유되곤 한다. 피는 타고나기에 개인의 힘으로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콘텐츠에서 “그래도 네 혈육인데 어쩌겠니”라는 말로 주인공에게 상대의 악행을 용서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혈연은 운명이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사고를 전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혈연이 과연 ‘운명’일까. 인간
클리셰는 자주 반복된 설정을 말합니다. 자주 쓰였다는 것은 사람들이 별 이상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사회적으로 당연시 돼왔다는 것을 뜻하겠죠. 이번 학기 문화부는 이 클리셰를 들여다보고 그 의미를 파헤쳐 보고자 합니다. 두 번째 클리셰는 바로 ‘혈연’입니다. 한국드라마에서 출생의 비밀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닙니다. 누구나 예측 가능하죠. 출생의 비밀이
“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다”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르트르의 유명한 명언이죠. 사르트르의 명언은 이제 콘텐츠에까지 적용됩니다.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이 등장했기 때문이죠. 콘텐츠에서도 선택은 굉장히 중요한 장치가 됐습니다. 그저 원하는 이야기를 선택해서 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제는 이야기의 진행 방향을 수용자
벽을 넘은 연극으로나의 벽을 넘어서다 당장 내일이 공연인데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연출가가 잠적했다. 막장과도 같은 이 이야기는 단순한 설정이 아니다. 연극 에서 관객들이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다. 지난 7월 22일 수원SK아트리움에서 열린 공연에서 이 막막한 현실을 직접 마주해봤다. 연극을 ‘출발
관찰과 경험 사이 그 어딘가오늘도 수많은 연극이 무대에 오른다. 관객들은 무대에서 펼쳐지는 연극을 보며 극 중 인물이 돼 극을 이끄는 상상을 한다. 최근 대학로에 관객들의 이런 상상을 실현해줄 작품이 등장했다. 바로 관객참여형 코믹 추리 수사극 다. 연극 에는 ‘관람’보다는 ‘체험’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안녕하세요! 저는 …입니다.” 자기소개할 때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말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가장 먼저 이름을 알려준다. 가장 기본적이고, 또 중요한 정보이기 때문이다. 이름의 중요성은 영화나 문학 작품에서도 이어진다. 그런데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작품이 있다. 영화 ,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펴냄) 그리고
정체성을 담은 나침반 삶의 길을 안내하다내가 사는 세상 속 나를 보여주는 거울 이름은 한평생을 사람과 함께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좋은 이름을 지어주려 한다. 아이의 이름은 학교, 직장 등 사회 어디에서나 따라다니고 심지어 죽어서도 묘비에 기록된다. 언제 어디에서나 함께 하는 동반자와 같은 이름. 이름은 도대체 무엇이고 인간에게 평생 어떤 영향을 줄까
클리셰는 자주 반복돼 진부해진 설정을 말합니다. 자주 쓰였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으로 당연시됐다는 것을 뜻하겠죠. 이번학기 문화부는 클리셰를 들여다보고 그 의미들을 파헤쳐 보려 합니다. 첫 번째 클리셰는 바로 ‘이름’입니다. ‘이르다’라는 말의 뜻이 ‘무엇이라고 말하다’라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름은 ‘나’는 무엇이라고 말해주는 단어라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