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5일 SPC 그룹 계열사인 SPL 제빵공장에서 청년 노동자가 끼임 사고로 숨졌다. 이후 8일 만에 또다시 노동자의 손가락이 끼여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10월 21일 허영인 SPC 그룹 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하며 안전 경영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지 이틀 뒤 재해가 재발한 것이다. 10월 15일 사고로 숨진 청년 노동자는 공장에서 하루 11시간 동안 일하면서도 충분한 휴게 시간을 보장받지 못했다. 또한 끼임 사고를 예방하기 위함이었던 2인 1조 작업 역시 이뤄지지 않기도 했다. SPL은 사고가 발생한 다음 날에도 사고
중앙감사위원회(중감위)가 결국 폐지됐다. 2019학년도 2학기 서울캠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에서 중감위 회칙이 제정된 지 약 3년 만이다. 이에 중앙감사 체제의 순기능 이행의 대체 방안으로 중앙감사회의가 구성됐지만 이는 감사에 목적을 두지 않는다. 학생사회 내 회계 문제는 지속적으로 존재해왔다. 2019년 서울캠 축제 플리마켓 보증금 및 입점비에 대한 회계 내역 부재가 지적된 바 있다. 2020년 해당 문제는 재점화됐고 총학생회장은 통장 내용 공개의 필요성을 인정했지만 끝내 규명되지 않았다. 안성캠도 마찬가지다. 2020년에만
선과 악의 경계에 대한 생각이 많던 요즘, 중대신문의 ‘어릴 적 동경했던 영웅의 이야기’와 ‘자, 이제 누가 악당이지?’ 기사를 접했다. 명쾌한 예술 키워드 설명과 함께 새로운 사고의 물꼬를 틔워줘 잊고 있던 신문의 가치를 다시금 새길 수 있었다. 어렸을 때 읽은 동화들은 선과 악의 대비가 극명하기만 했는데, 커가면서 우리는 실제 사회뿐만 아니라 사실은 옛날의 그 동화들조차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에 서 있는 인물들이 생각보다 많음을 깨닫게 된다. 기사에서 ‘인간은 악을 나쁘다고
개인적으로 지난 학기까지 모든 수업을 비대면으로 진행하다 약 2년 반 만에 학생들을 만나게 됐습니다. 코로나19로 멈춰버린 시간 동안 우리의 삶에는 큰 변화가 있었고 이전에는 익숙했던 것들이 익숙하지 않은 일이 되었습니다. 태블릿 화면이 아닌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보며 하는 수업은 저의 일상이었지만 두 달이 지난 지금도 당연한 일상이 어색합니다. 한동안 많은 사람 앞에 서본 적이 없다 보니 80명의 학생이 있는 강의실에 들어서기 전에는 묘한 긴장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8월부터 학과장을 맡게 됐는데 코로나19 이후 입학한 학생들이 끊어
정해진 기준보다는 ‘나’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시대가 왔다. 바로 평균 실종의 시대이다. 『트렌드 코리아 2023』(김난도 씀)을 읽기 시작했다. 저자는 2023년 우리나라의 모습을 10개의 키워드로 정리하고, 이것이 어떠한 시장과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를 예측한다. 평균 실종, 체리 슈머의 등장, 인덱스 관계 등이 그것들이다. 나는 오늘 그중 ‘평균 실종’에 주목하고자 한다. ‘평균 실종’이란, 집단을 대표하는 평균값이 무의미해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평균 실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랭보, 그는 자신의 유명한 에서 시인은 세상과 미래를 바라보는 ‘투시자’가 돼야 하고 이를 위해 “모든 감각을 오랫동안 광대하게 그리고 이치에 맞게 착란”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즉, 가능한 기존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토대 위에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삶과 문학에 있어 요즘 용어로 기존 골조는 놔둔 채 일부만을 보수하는 ‘리모델링’이 아닌 전면적인 해체를 통한 ‘재건축’인 셈이다. 시인 랭
OTT 플랫폼 중 하나인 TVING에는 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다양한 이유로 이별한 커플들이 한 집에 모여 지나간 연애를 되짚고 새로운 인연을 마주하며 자신만의 사랑을 찾아가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죠. 해당 프로그램의 두 번째 시즌이 10월 28일 막을 내렸습니다. 방영하는 동안 어느 자리에 가나 관련 이야기가 나오고, TVING 주간 유료가입자 기여도 1위를 15주 연속 기록하는 등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출연자들의 연애를 보며 사람들은 공감했습니다. 여러 근거를 가지고 최종 커플을 추론하기도 했죠.
언론은 개에 자주 빗대어지곤 한다. 감시견(Watch Dog)과 애완견(Lap Dog). 반드시 개가 돼야 한다면 두 선택지 중 어떤 개를 선택할 것인가. 정치권력, 경제권력, 그리고 사회권력 등 각종 권력을 날카롭게 감시·견제할 줄 아는 감시견? 아니면 주인의 따듯한 품 안에서 재롱떨며 간식을 벌어 먹고사는 애완견? 이왕 해야 하는 개라면 필자의 선택은 단연 감시견이다. 스스로 20대 초반은 곧 중대신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펜데믹에 따라 장기화한 비대면 학사로 아직 이렇다 할 것이 이밖에 없어서이기도 하겠
올해 초, 나는 중대신문 수습기자에 지원하려 했었다. 지원서 작성까지 마쳤을 때, 면접 일정을 맞출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그렇게 야심 찼던 도전은 흐지부지 막을 내렸다. 가끔 주변에서 중대신문에 대한 얘기가 들려오면 홀로 간직하고 있는 작은 추억을 회상해보는 것이 전부였다. 갓 입학한 새내기 시절에는 대학교에서 신문을 발행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신문지는 짜장면 먹을 때만 썼던 내가 그런 걸 알 리 없었다. 그러니 ‘차별을 회고하며’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은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글쓴이는 지하철을 기다리
회사 생활을 하다 중앙대에서 교육을 위한 새로운 길을 처음 내딛던 약 2년 전이 생각난다. 열의 넘치는 학생들을 만나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학교에 나왔지만, 코로나19 시대의 시작과 함께 황량한 캠퍼스와 텅 빈 강의실만이 나의 첫 출근을 반기고 있었다. 학생들의 반응을 통해 강의를 발전시켜 보고자 했던 나의 계획은 녹화 강의로 대체됐고, 학생들의 진로와 고민을 위한 다양한 상담들은 단 한 번의 만남 없이 모두 이메일로 해결돼 버렸다. 무려 약 2년간의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중앙대 학생들의 다양한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게 도와준 유
2022년 여름, 중앙대의 인도네시아 사회봉사단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매년 여름마다 인도네시아 대학의 한국어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 봉사를 진행하고 양국의 문화를 교류하는 행사다. 해당 프로그램은 약 10년 넘게 이어져 왔다. 그런데 올해는 이전 기수에 비해 유난히 특별한 점이 있었다. 바로 비대면으로 해외 교육 봉사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모두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는 첫 발발 후 지금까지도 일상 곳곳에 여파를 미치고 있다. 이제는 비대면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을 모두가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그리고 안부를 묻는다. “잘 지냈어요? 어떻게 지내요?” “별일 없이 잘 지내요, 늘 똑같죠.” 그렇게 대화가 이어진 통화가 끝난 뒤, 문득 ‘나는 늘 똑같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떠올랐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늘 똑같을 리는 절대 없다. 아마도 뭔가 바뀌는 걸 귀찮아하는 성격이라 무심결에 그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습관이라 할까, 익숙해지면 잘 바꾸지 않는다. 물건을 사면 망가질 때까지 쓰고, 같은 물건을 구해서 다시 쓴다.
“언론은 민주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이다. 시민의 의사 결정에 도움을 주는, 정확하고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우리 방송 언론인의 의무이다. 따라서 우리는 취재와 보도를 함에 있어서 시민의 편익과 안녕을 가장 우선할 것이다.” 방송기자연합회 강령의 전문이다. 9월 22일 윤석열 대통령이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7차 제정공여회의’ 회의장을 나서며 한 발언이 논란이다. 대통령실은 ‘바이든’이 아닌 ‘날리면’으로 말한 것이라 해명했다. 이후 그
오늘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어릴 적 제 별명은 ‘호기심 대마왕’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토론하고 질문하는 것을 좋아해 항상 “왜요?”라는 물음표를 달고 다녔죠. 이러한 열정의 화살표는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분야로 향했습니다. 학보사에 지원하게 된 것도 돌아보면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비롯됐죠. 남들처럼 거창하게 ‘기자의 꿈을 이루고 싶다, 기성 언론사에 취업하고 싶다.’ 이러한 것들은 전혀 없었습니다. 학생기자로 활동하
9월의 마지막 날에 친구의 추천을 받아 새로운 성격유형 검사를 했습니다. 저의 기질을 고양이로 비유하여 알려주는 검사였죠. 설명을 읽으며 너무 정확하다며 놀라기도 했고 한편으론 안도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예상한 저와 다르지 않았으니까요. 저는 그동안 참 많은 심리검사와 성격유형 검사를 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불안감이 들거나 사람들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저를 설명해 줄 무언가로써 말입니다. 어쩌면 저에 대한 이해를 다른 도구의 힘을 빌려 해왔던 건 아닐까요. 사진첩 속 다양한 검사의 유사한 결과들을 보며 친구들과의 대화가 떠올
피곤한 내가 눈을 뜬다. 쇠가 쇠와 맞물리는 소리, 이어폰 너머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 은근 까마득히 멀어지고 있는 2019년에 나는 대학교 새내기였다. 지금껏 살던 울산이 아닌 서울. 하늘에서 표류하다 멀뚱히 추락한 사람처럼 나는 어디에서든 어둑하니 서 있기만 했다. 학교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자취하면서, 자가용이 없으면서도 무릎이 좋지 않았던 나에게 서울은 단연 지하철의 도시였다. 그러니 나는 1학년이 채 끝나기도 전부터 소음만 참아내면 멀미도 없이 빠르게 도착하는 지하철을 ‘괴성을 내는 철의 괴물’이라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을 손쉽게 검색하여 알아볼 수 있는 시대. 온라인을 통해 세계의 다양한 언론 매체들이 전달하는 기사들을 총망라하여 검색해볼 수 있는 시대. 소위 말하는 21세기 ‘정보화 사회’라지만, 대학 언론에서 생산되는 신문에는 여전히 대학신문만의 매력이 있다. 눈 맑은 젊은 세대들의 고민과 관심을 엿볼 수 있고, 대학생 기자들의 파릇한 열정을 느낄 수 있으며, 그래서 급변하는 사회의 흐름과 방향을 좀 더 일찍 느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어느 나라의 어느 대학교에 방문하든 교내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