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가시겠습니까?” 물음에 대한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 자동차 바퀴살은 이미 도로 위를 질주한다. 마치 처음부터 알고 가는 것처럼 말이다. 기자는 늘 택시를 타면 난감한 상황과 마주하곤 한다. 낯선 택시기사의 질문과 눈빛. 이후 기자는 우유부단하기 그지없는 대답을 쏟아낸다. “최대한 빠른 길로 가주세요.” 툭 내뱉어 놓고 돌이켜보면 참 바보 같은 대답
“나는 언론의 중립이라고 자위하면서 음흉한 속을 감추는 것보다 편파적인 게 백배는 낫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이렇게 불공평한데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결국 강자 편을 들라는 말 아닌가. …이게 공정한가. 이게 정의인가.” 이 책 한 대목에 반했다. 문장 하나하나를 혀에 굴려볼 때마다 찌릿찌릿했다. 기자란 이렇게 근사한 거구나 싶었다. 이렇게 마음껏
기자는 안 할 거다. 물론 기자가 되고 싶다 해도 어느 언론사가 받아주겠냐 싶지만 지금은 굳이 기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다. 지난 2년(수습기간을 제외하면 1년 6개월)간의 중대신문 기자 생활을 되돌아보면 잦은 밤샘작업과 스트레스로 육체와 정신 모두 건강하지 못했다.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나로썬 힘겨운 시간이었다. 그나마 2년이었기에 망정이지 이 일을
지난 할로윈데이. 8살짜리 조카 녀석이 공주님 옷을 입고 온 집안을 들쑤셨다. 작아서 신지도 못하는 인형의 구두까지 구겨 신고 말이다. 어찌나 재잘거리면서 다니던지 귀가 따가울 정도였다. 기자는 조카 녀석의 입을 막아보고자 백설공주와 신데렐라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보았다. 단, 지금까지 우리가 익히 알던 이야기와는 정반대로 말이다.기자는 독일의 사회철학자인
지난 3월, ‘세상에 쉬운 일 하나 없더라’며 신문사 생활의 고충을 털어놓던 기자는 벌써 임기만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처음 신문사에 입사하던 날로부터의 2년이 눈 깜짝할 사이 훅 지나갔다. 그 사이 기자에겐 신문사 증후군이란 게 생기고 말았다. 신문사 증후군. 신문사 때문에 생긴 병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겠다. 스트레스를 가져다주는 아주 몹쓸 병이다. 이로
“자료를 안 넘겨줘요.” 대학보도부 차장 시절 취재를 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었으며 항상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말이었다.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은 사건을 취재할 때면 그 무력감은 배가 된다. 아무리 기자의 역량이 뛰어나더라도 부정을 위해 직접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무기가 없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펜이라는 무기는 사실 눈앞에 놓인 부당함에 무력하다
“나는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 미국의 제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이 남긴 말이다. 견제와 비판을 숙명으로 삼은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200여 년 전 미국 대통령은 언론 없는 사회의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지금 대학언론은 위기를 맞닥뜨렸다. 올해 3월 연세대에선 대학본부가 학보사에 재정 압박을 가해 연세대 학보 연세춘추의 백
요즘 저마다 다른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어느 날은 웃고, 어느 날은 울었다. 채 더위가 물러서지 않은 캠퍼스에 슬쩍 가을풍경이 녹아든 것처럼, 기자의 일상엔 많은 것이 혼재해 있었다. 명백하지 않은 사실이 뒤얽혀 기자를 혼란스럽게 했다. 말하자면, 요사이 기자는 사소한 방황을 치른 셈이다. 하지만 어지러운 것이 비단 기자만은 아닌 듯하다. 최근 몇 주 간
혹시 그림책 『100만 번 산 고양이』를 읽어본 적이 있는가. 그림책 작가 사노 요코의 작품으로 요상한 얼룩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다. 백만 년이나 죽지 않고, 백만 번이나 죽고, 백만 번이나 산 기묘한 얼룩 고양이. 백만 명의 사람이 얼룩 고양이를 귀여워했고, 백만 명의 사람이 얼룩 고양이가 죽었을 때 슬퍼했다. 그러나 얼룩 고양이는 단 한번도 울지도 웃지
고등학교 2학년 시절 꽤나 공부를 못하던 친구 A가 있었다. A의 신기한 점은 옆에서 보면 입이 벌어질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는데 반해 성적표가 나오면 입이 다물어진다는 점이었다. A는 수업시간에도 열심이었고 자습도 빠지지 않았기 때문에 성적 부진의 원인을 시원하게 찾아내기 어려웠다. 하지만 당시 담임을 맡은 선생님은 유달리 A에게 엄격했다. 노력에 비해 결
취미는 사랑이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하던 기자는 이번학기 여론부장이라는 과분한 자리에 앉아 중앙대 이모저모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새 코너를 구상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던 지난 여름방학. 아이디어와의 긴 싸움을 하던 내게 “중앙대 학생들의 취미생활을 들어보는 건 어떨까요?”라던 후배기자의 한마디가 들려왔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이거다!
수험 스트레스를 앓던 고3의 기자에게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만 공부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유난이야!” ‘유난 떤다’는 말은 한순간 기자를 부끄럽게 했다. 그 말 한마디에 기자를 짓누르던 무수한 고민들은 곧 아무 것도 아닌 것, 누구다 다 견뎌내는 성장통 쯤으로 치부되었다. 고3 시절, 스트레스를 못 이겨 수능을 한 달 앞둔 달력을 벅벅 찢으며
시작이자 끝이다. 부장으로서 시작이요, 중대신문 기자로서 끝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1년 반을 몸담아온 중대신문에서의 기자생활도 이번 학기면 끝이 난다. 지금 그 끝의 시작에 서 있다. 기분이 참 묘하다. 제갈량도 그랬을까.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전쟁터에 나가면서 황제에게 출사표를 올릴 때의 심정이 지금 필자가 가진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이번학기 보도부장으로서 열세번 대학보도 지면을 꾸렸다. 지난 13주를 돌아보는데 생각나는 게 구조조정, 공동대책위 등 인문사회계열 구조조정에 관련된 것들뿐이다. 나는 거의 매번 구조조정 기사를 썼다. 늘 ‘구조조정’이 머리 위를 동동 떠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만하다. 목요일 오후에 듣는 전공 수업이 하나 있는데 다들 목요일에 시간이 맞아서 그랬던 것
어느덧 6월이다. 봄내음을 한껏 들이켜기도 전에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2013년의 절반이 눈 깜짝할 새 사라졌다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바쁘고 바쁘게 지냈던 나날들이었다. ‘시사학술부’라는 거창한 이름을 내걸고 부장이라는 막중한 위치에서 삐질삐질 땀을 흘리던, 지난날의 기자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이번학기 마지막 신문 제작만을 남겨두
동부 원주 강동희 감독의 승부 조작설이 한참 화제가 됐을 때 농구 전문 잡지 편집장 칼럼란엔 이같이 쓰였다. ‘믿지 않으려 했다.’ ‘지금도 믿지 않는다.’ 당시엔 승부조작이 기정사실화돼 갔는데 우리나라 프로농구계를 대표하는 스타가 승부조작을 했을 리 없다며 믿지 않겠다고 쓴 것이다. 이 말이 매서운 비판보다 농구를 사랑하는 팬과 농구 선수를 비
축제 포스터가 붙었다. 동아리방들이 모여 있는 학생회관이 어수선해지고, 연예인 초청 공연 소식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온 캠퍼스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매년 돌아오는 행사지만, 해마다 설렘은 수그러들 줄 모른다. 친구들이 차려놓은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선·후배들과 어울려 게임을 즐기고, 너나할 것 없이 어깨동무하고 유명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느라 이
언젠가부터 어떤 경우에나 예우를 지키는 것이 불필요하고 불편하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면, 명분상의 예우는 불필요하다고 느꼈다. 초등학교부터 늘 학교에서 예우범절을 교육받은 우리가 예우에 대한 무언의 압박을 크게 받아 명분상의 예우를 ‘굳이’ 차리는 경우는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말로 ‘예우’가 필요한 때는 따로 있다. 지난 2일 서울캠 교양학관 앞에서
바야흐로 봄이 왔다. 계속되던 꽃샘추위에 소식이 없던 꽃망울들도 하나둘 얼굴을 내밀고 반갑게 봄을 맞이했다. 따스한 봄 햇살이 교정을 감싸는 4월, 난데없이 차가운 바람이 불어 닥쳤다. 바로 지금 중앙대를 들끓게 하는 ‘뜨거운 감자’ 인문사회계열 구조조정의 바람 말이다. 아시아문화학부의 비교민속학전공과 사회복지학부의 아동복지전공, 청소년전공, 가족복지전공이
반신반의했다. ‘정말 가능할까?’라는 고민은 친구와의 내기로 이어졌다. 고백컨대 기자는 가능하지 않다는 쪽에 커피 한 잔을 걸었다. 결국 커피 한 잔을 사줘야 하는 꼴이 됐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7년 만에 처음 성사된 ‘학생총회’였으니까. 학생총회 성사는 정말 가능한 일이었다. 학생총회가 열리기 전, SNS에는 학생총회를 홍보하는 각종 글이 넘쳐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