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가 끝난 뒤 처음 접한 중대신문은 축제 이야기로 가득했다. 축제에 관한 기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소음문제’를 다뤘던 기획기사였다. 중대신문은 축제로 인한 소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호 간의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옳은 소리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한다면 소음문제 일부가 해결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해와 배려라는 아름다운 요소로만 마
지난주 중대신문 사람 면에는 대학생들의 행복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행복, 그거 별거 아니지’라는 기사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실 대학생들에게 행복이란 거창한 무언가에서만 얻을 수 있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길을 지나다 마음에 드는 음악을 듣거나, 날씨 좋은 날 연인의 손을 잡고 걷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쉽게 행복에 젖을 수 있다. 때때로 행복은 그만
2015년의 지금은 중앙대를 다닐 때보다 더 다양한 매체와 방법으로 중앙대에 대한 소식을 듣고 있다. 사실 대부분 유쾌한 소식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그래도 꼬박꼬박 챙겨봤고, 내게 소식을 전달하는 다양한 매체 중 하나는 중대신문이었다. 중앙대에 관한 이야기를 중앙대에서 발간하는 신문이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주
중국어에 ‘후오부단싱(禍不單行)’이라는 말이 있다.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라는 이 말처럼, 최근 우리 대학에 닥친 위기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한꺼번에 터져나오고 있다.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안’은 논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상황에서 박범훈 전 총장의 구속과 박용성 전 이사장의 검찰소환까지 총체적 난국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문제
최근 중앙대를 둘러싼 언론 보도에 중대신문의 이름이 올랐다. ‘중대신문의 기본 논조는 학교를 대변해야 한다’며 ‘원칙에 반하는 편집 방향으로 1회라도 발행하면 폐간’이라는 박용성 전 이사장의 발언은 충격이었다. 미디어센터장이 박 전 이사장에게 보고한 내용도 드러났다. 원래 중대신문에 실릴 예정이던 한 교수의 비판적인 기고를 빼고, 구조조정 관련 기사를 다음
지난 2주 동안 중대신문을 교내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중대신문의 애독자로서 신문사의 휴간공지는 아쉬울 따름이었다. 신문사가 휴간하는 동안 캠퍼스는 여전히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구조조정으로 인한 학생과 교수 그리고 대학본부 측의 의견 충돌은 끊임없이 지속됐고, 학교는 각종 비리와 의혹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그 짧은 시간에 대내외적으로 뜨겁게 논란이
벌써 8년째다. 학교에 오랜 기간 머물다 보면 새 학기에 반복적으로 듣는 질문들은 거의 정해져 있다. ‘중대 앞에는 맛집이 어디 있나요?’, ‘중대 앞은 어디서 놀면 좋을까요?’와 같은 질문들이 그중 일부다. 너무나 뻔하고 가벼운 질문이지만 누구에게나 해소가 필요한 부분이기에, 지난주 중대신문을 넘기며 ‘시시각각 맛집’이라는 기사의 제목을 마주했을 때 잠시
중대신문 이전호의 ‘오늘의 운세’ 코너에서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한 작금의 실태를 인터뷰 형식으로 알아보는 내용의 기사가 실려 있었다. 기사 하단의 내용을 인용하자면 ‘다른 사람들의 관심은 세상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나의 삶을 지나치게 간섭하는 도구로 돌아올 수도 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 말은 그대로 중대신문의 존재 이유의 문
이번 학기부터 은 조금 달라졌다. 쿠키를 먹으며 학생들과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쿠키살롱’, 가상의 운세를 보여주며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오늘의 운세’ 코너가 생겼고 중앙대 학생들의 패션을 분석하는 ‘패션 2015′s’ 기획도 찾아볼 수 있다. 딱딱한 보도 중심의 글에서 벗어나 학우들과 더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하는 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느낌이다.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안(계획안)’ 발표 이후 학내의 모든 논의는 이 블랙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대신문의 역할과 임무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 보인다. 정보의 접근성이나 분석, 이해도에 있어 중대신문을 따라올 매체는 학내에 아직 없다. 중대신문은 개강 후 3주 연속 1면 탑 기사로 계획안을 둘러싼 쟁점
현재 중앙대에서 추진되고 있는 ‘학부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안)’에 대해 캠퍼스 안팎으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이에 대해 중대신문에서도 기획기사를 작성한 것은 시의적절하다. 여러 기사를 통해, 시기적으로 민감한 주제에 대해 더욱 정확한 정보와 대학본부, 교수, 그리고 학생으로부터의 다양한 의견을 담고자 하는 노력은 진정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나 3
한가로이 방학을 보내고 있을 무렵, 내가 몸담은 학과에서 간행물을 발간할 거라는 소식을 접했다. 마침, 언론과 미디어에 관한 다큐멘터리도 보고 있었던 나에게 학과 간행물은 흥미롭게 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난 친한 동기 두 명과 함께 초대기자단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을 하게 되었고, 나란히 셋이서 학과 학회지의 첫 순간을 시작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새로운 시작으로 교정이 떠들썩하다. 4년만이라는 황사경보도 신입생들과 신입생들을 맞이하는 선배들의 설렘을 가리지 못했다. 시야가 트인 정문, 광장 넘어 보이는 영신관. 학교는 “그대의 선택, 더할 나위 없었다!”라는 글귀로 신입생을 환영하고 있다. 중대신문 역시 2월 9일자 제1837호에 졸업과 관련된 기사를 다루며 “중앙대와의 4년! 더할 나위 없었다!”
이설아? 중대신문을 읽은 뒤에 방송을 봤든 방송을 본 뒤에 중대신문을 읽었든 어?! 하면서 다시 봤을 이름 이설아. 최근 K팝스타 시즌4로 화제에 오른 뮤지션 두 명이 있다. 바로 이설아와 이진아. 세 심사의원들로부터 본인들이 심사할 레벨이 아니라는 극찬까지 받으며 통과됐다. 이들은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인디씬(scene)에서 ‘굴러먹던’ 사람들이다. 알만
내게 은 재미가 없다. 월요일 아침을 여는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스칠 때 즈음 어김없이 마주하는 중대신문. 이번 주에는 ‘잠수함 토끼들’이 편집하고 발행하는 이 나란히 손에 쥐어졌다. 자연스럽게 두 신문은 내게 비교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유사한 두 가지 사항을 다르게 접근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19
‘대학에서 그 구성원을 독자로 하고 주로 학생이 편집하여 발행하는 신문’ 바로 대학신문의 사전적 정의이다. 신문은 신문이되 주로 학생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신문. 이것이 대학신문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함과 매력이 아닐까. 우리는 주변에서 매일 넘쳐나는 일간지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그 많은 일간지들에 파묻혀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끝은 세태 비관 또는 피로
신문에서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기사는 단연 1면 머릿기사다. 1면 기사는 지면에 실린 모든 기사를 대표하는 얼굴이자,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시키는 매혹적인 콘텐츠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난 1832호의 1면 기사는 이런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지난주 신문 1면에는 ‘내년부터 교양교육과정 전면 개편된다’는 기사가 자리했다. 이 기사에는 2015학년도 신
어쩌면 나는 관심은 있지만 막상 실천은 않는, 그저 통학에 지치고 출석에 안절부절하는 안일한 대학생일 뿐일까? 창피하게도 중대 신문을 읽으며 가장 많이 내뱉은 말은 “아, 진짜?”였다. 이처럼 중대신문은 내게 학교 상황을 간접적으로 알게 해주는 가장 큰 창구 중 하나다. 시험을 보고, 과제를 하고, 대외활동을 하는 하루가 반복될수록 점차 학교에 대한 걱정과
지난 10월 13일자 중대신문에 '21세기 대한민국 인문학 보고서'의 제목으로 3차례의 심층기획기사 중 마지막 특집 기사가 실렸다. 인문학 열풍의 현주소와 가능성 그리고 인문학의 미래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과 해석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사회적으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취업에서도 인문학적 소양이 중요한 합격기준이 되고 있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이번 중대신문의 중심 기사는 인문학 열풍과 축제에 관한 것이었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메인 기사와 독일식 대학교육 모델에 대한 기사, 오글거림이라는 단어에 대한 문예창작전공 학우의 글, 그리고 축제에 대한 기사가 한 개의 맥락으로 다가왔다. 인문학은 우리에게 생각할 수 있는 힘을 키워준다. 인문학은 학문이기 이전에 삶 속에 젖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