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호 대학보도 부장 U_know@cauon.net 2월. 기자는 보도부 차장으로 발령받고 첫 지시를 받았다. ‘안성캠 방호·미화원 노조와 용역업체 CA개발의 갈등취재’였다. 그 당시 노조는 한창 활발히 활동하던 상황이었다. 투쟁 의지를 담은 현수막과 유인물을 배포, 격렬한 시위가 있었다. 안성캠은 선거문제까지 겹쳐 시끌했
또다시 터졌다. 안성캠 용역업체 관리소장이 인사권을 빌미로 사적이익을 취했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작년 서울캠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벌어졌었다. 진상조사 후 관리소장이 퇴사처리 되면서 사건은 일단락 났지만 캠퍼스에 퍼진 충격의 여파는 컸다. 현재 해당 관리소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여러 증언을 빗대보면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사회적 약
안성캠과 그 주변 마을 ‘내리’가 불안하다. 청춘의 웃음이 떠나지 않아야 할 대학가에 범죄가 끊이질 않는다니 당황스럽다. 대학가 주변에서 지난 4개월 간 살인과 강간이 각각 한 건, 절도 25건, 폭력 30여건이 발생했다는 결과를 믿을 수 없다. 대책을 마련하란 목소리가 등장한 건 오래 전이다. 그러나 목소리의 크기에 비해 변화는 더디
어느 덧 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보다 많을 것임이 확실시 되는 4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다. 1985년 3월에 입학한 중앙대학교. 타 대학에서 강사 생활한 기간을 제외하고는 단 한 순간도 벗어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철들고 나서 내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해온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마음과 태도로 보아 이제는 내 사랑이라고 표현해도 적절하
대학가 개강 시즌은 출근길에 먼저 알아차린다. 대학을 들르는 출근 버스 노선이 아침부터 복작복작, 모처럼 정신이 하나도 없으면 3월2일이거나 9월1일이다. 중대신문 1717호도 없던 지면과 바뀐 꼭지들로 복작거려 개강호임을 금세 알아차렸다. 대학 스포츠면과 국제면, 대학문화면이 신설됐다. 한시절 잘나가던 잡지들도 줄줄이 폐간하는 마당에, 독자 입장에선 덮어
개강호부터 중대신문이 바뀌었다는 1면 광 고가 눈에 들어왔다. 무엇이 바뀌었을까? 흔히 보는 기성 상업신문들과 비슷하다는 첫 인상을 받았다. 신문 만들면서 참 많이 고생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전체를 살펴보니 섭섭한 느낌과 기사의 구성이 뭔가 2%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언론매체는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여야 한다는 대명제를 가지고 있지만 비판의 목소리를
중앙대 학생 여러분은 변화하는 학교의 모습에 대해 크게 세 가지 생각을 갖고 계신듯합니다. 찬성, 반대, 상관없음. 여러 생각과 입장이 뒤섞인 현재의 상황은 마치 태풍처럼 비춰지기도 합니다. 서로의 입장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은 지금, 신입생인 제가 여러분께 한 가지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바로 ‘우리는 다 같은 중앙대학
정신없이 바쁜 개강 첫 주. 친구들과의 조우, 행복한 캠퍼스 생활에도 불구하고 서글픈 마음은 가눌 길이 없다. 왜냐하면 예대 학생들을 위한 학생회실이 여전히 굳게 닫혀 있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마우스 도둑에서 시작했다. 학생회실에는 컴퓨터가 마련되어 있는데, 그 컴퓨터의 마우스를 누군가 훔쳐간 것이다. 학생회에서는 마우스를 도로 가져다 놓지 않으면 학
중대신문에서 인터뷰 기사를 담당한지 1년이 지났다. 그 동안 ‘중앙인간문화재’, ‘중대신문이 만난사람’ 그리고 ‘취업’ 등을 맡으며 교내·외 많은 인사들을 만났다. 질문지를 준비할 때 느끼는 설렘, 인터뷰를 진행하는 떨림. 그리고 완성된 신문을 고이접어 인터뷰이에게 보낼 때의 기쁨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형과 동생이 이해관계로 다투니 부모는 손 쓸 도리가 없다. 서울캠과 안성캠 학생들이 학적변동을 두고 논란을 벌이는 걸 지켜보는 대학본부의 마음이 이와 같지 않을까. 감정의 골만 깊어진 양측은 대학본부의 입을 지켜보고 있었다. 대학본부는 발빠르게 대응했다. 2014년을 기준으로 당해까지 졸업하는 학생은 입학당시 학적을 그대로 유지시키고
산천 좋고 인심 따뜻한 곳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다. 이 해가 지나고 강단에 돌아오면, 아무래도 더 하기 힘들 것 같은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내 본다. 2004년 1학기에 공대에서 두 개의 동일한 강좌를 가르친 적이 있다. 그 당시 공대 전체 물리학 수강생들은 동일한 문제로 시험을 치르고, 같은 기준으로 학점을 받았다. 나는 건축학부/건축학과 75명과 전자전
기자는 한 마리 외로운 늑대와도 같아야 한다 언론인이자 소설가인 최일남 선생이 1997년 ‘원로 언론인과의 대화’에서 한 말이다. 말인즉슨, 기자정신이란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을 의미하는 듯하다. 중대신문 기자들은 어떠한가? 자신의 의견 때문에 사측을 대신해 욕을 먹기는 싫고 자신이 비난받으면
기자가 힘이 있던 시기는 지났다고들 한다. 기자가 아니라도 블로그에 글을 쓸 수 있게 됐고, 영악해진 독자들은 편집국의 의도부터 의심하려 든다. 게다가 툭하면 “기자 양반, 공부 좀 하고 쓰쇼”란다. 머리가 굵어진 독자들을 탓할 것인가? 아니면 더 높은 수준의 ‘프로페셔널’이 되어 난관을 이겨낼 것인가? 아마 전자
대학에 들어와 처음 수강신청을 했다. 실패한 과목 없이 듣고 싶었던 수업을 전부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나처럼 다 성공한 친구들이 있었는가하면 신청에 실패한 친구들도 있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점이 있다. 수강신청에 성공한 친구들은 정말 '성공'했는가. 장바구니에 담아둔 과목을 전부 듣게 된 게 성공이라면 당연히 성공이겠지만 여기서는 그걸 묻고자 함이
개강을 앞둔 얼마 전, 중앙대학교 커뮤니티 ‘중앙人’에서 학문단위 재조정에 대한 학적관련 사항이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했다. 이는 캠퍼스 간의 감정대립으로 확대되면서 문제가 되었다. 다행히 학사운영팀의 공고문으로 일단락되었지만 우리는 이번 사건을 되짚어봐야 할 필요가있다. 일단 서울-안성 캠퍼스간의 마음의 벽을
기자는 지난 달 드디어 흑석커(흑석동에 거주하는 자취생)가 됐다. 자취 허락을 받아 냈을 땐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막차가 끊기면 내 한 몸 누일 데를 찾아 하이에나처럼 전화기를 돌릴 필요가 없다니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시험기간 도서관 자리를 맡기 위해 학교에서 밤을 새고, 그 자리에 누워 하루종일 자는 일도 없을 터였다. 하지만 흑석동 드림은 썩은
14년 동안의 한결같은 연구. 자치통감은 권중달 교수를 만나 이 땅에 뿌리내리게 되었다. 권중달 교수의 학문에 대한 열정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중대신문은 권중달 교수를 만나 중앙대와 함께한 45년의 세월에 대해 들어보았다.인류가 남긴, 최고의 역사서 자치통감(資治通鑑)- 지난 6월, 14년 만에 『자치통감』 완역에 성공했다사실
서울캠 총학생회(이하 총학)가 다시 출범식 일환으로 학생들에게 무료 식권을 나눠주다 사달이 났다. 식권 배부 장소에 학생징계 반대 서명 용지를 배치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부 학생들은 서명을 해야만 식권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여긴 모양이다. 총학은 강제성이 없었다고 항변했지만,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다. ‘소통’을 화두로 내건 출
또 다시 안성 차별대우 논란이 불붙었다. 행정부서간 소통부재로 본지에 서울캠 학생지원처 프로그램만 일방적으로 보도돼 학생들이 불만을 성토한 것이다. 우스운 해프닝으로 밝혀졌으나, 단순히 웃어넘길만한 일은 아니다. 그만큼 現 안성캠퍼스 학생들의 피해의식이 높다는 의미다. 지난달 중앙人을 뜨겁게 달군 ‘돈 셔틀’ 논란 또한 잔인하지만 예리
금주가 벌써 학기말이 되니 시간의 흐름은 참 빠르기 그지없다. 2010학년도 1학기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되었는데, 그동안 우리 중앙의 가족들은 한 학기의 생활을 어떻게 해왔고 또 어떻게 마무리를 할 것인지 궁금하다. 중앙 가족의 수만큼 다양한 모습이 있을 테지만 각자의 보람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학기말과 관련하여 익숙하게 들리는 말이 있다. 그것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