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지락편에 나오는 바닷새 이야기를 먼저 소개할까 한다. 바닷새 이야기는 노나라 임금이 날아온 바닷새를 궁궐로 데려와 키우는 이야기다. 하지만 비극은 노나라의 임금의 엇나간 사랑 때문에 생긴다. 바닷새가 마음에든 노나라 임금은 바닷새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술과 고기를 권하며 극진한 대접을 하지만 바닷새는 술과 고기는 입에도 대지 못한 채 사흘 만에 죽고
얼마 전 소설가 박민규가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낮잠』이라는 단편소설이 한 인터넷 게시글과 일본 만화의 일부를 표절했다는 것이다.박민규가 표절이라니. 항상 독특하고 자신만의 세계관이 뚜렷했던 그였다. 중앙대 동문이기도 한 그는 강의 시간에도 교과서처럼 자주 등장해 나에겐 꽤 친숙했다. 그는 정말
일을 처리하는 꽤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일단 시작하는 겁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일단 첫걸음을 떼고 나면 짓눌리던 부담감이 무색하게 다음 걸음이 가볍거든요. 걸음을 옮기다 보면 불현듯 탁월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일은 마무리되어 있죠. 싱겁다고 웃는 분들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 실천하는 게 생각만큼 쉽지만
누구는 날더러 ‘노름꾼’같다 했다. 잠도 줄여가며 성실히 살아보려는 사람에게 ‘노름꾼’이라니. 순간 또 화가 치밀었지만 그가 묘사하는 나는 한낱 노름꾼이 맞았다. 손가락 5개로 다른 이의 눈 두 개를 가뿐히 속이며 벌어지는 판의 흐름을 여유와 배짱으로 놓침 없이 제압하는 ‘화려한 타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충혈된 눈 아래로 부산스레 떨리는 팔다리, 남
영화 에서 주인공 태식이 장기밀매업자 만석을 죽이기 위해 그를 쫓는다. 차 안으로 몸을 숨긴 만석은 태식에게 차창이 방탄유리라며 쏴보라고 도발한다. 총구를 차창 한 지점에 딱 대고 끊임없이 쏘는 태식. 방탄유리에 구멍이 하나 뚫렸을 즈음에 만석은 다시 한 번 도발한다. “이거 방탄이라고, 이 병신아!” 그때 태식의 낮은 목소리가 들린다. “아직 한
“왜 기자가 되고 싶어요?” 얼마 전 참석한 대학신문 컨퍼런스에서 일간지 기자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요즘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의문을 적나라하게 들켰기 때문일까. 평소였다면 ‘정의’, ‘사명감’ 운운하며 능청스럽게 받아넘겼을 상투적인 그 질문에 쉽사리 입을 뗄 수가 없었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어, 음…. 그러게요.” 왜
전역을 3일 앞둔 기자의 모습이 갑자기 떠오른다. 부대에서 먼 창고에 처박혀 있으면 귀찮은 일은 없겠다 싶어 창고정리를 자원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창고 문을 닫고 한쪽 구석에 있던 케케묵은 가죽 소파에 털썩하고 앉았다. 오래된 가죽 냄새,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볕에 소용돌이치는 먼지들이 보였다. 어제 빨았던 군복은 연식을 알 수 없는 소파에 한순간 동화
2년 전에 쓴 중대신문 지원서 위 뽀얗게 앉은 먼지를 탁탁 털어냈다. 기자가 되고 싶은 이유가 자간 빼곡히 적혀있다. 자기소개를 부고 기사 형식으로 썼던 건 어떻게든 어필해보려던 귀여운 수작이었던 것 같다. ‘그가 13일 오후 8시 13분에 별세했음을 그의 보좌관이 14일 밝혔다. 향년 80세’라고 운을 뗀 거짓 부고 기사는 80세까지 ‘조선희 기자’가 어
예능 프로그램 이 식스맨 특집으로 반응이 뜨겁다. 출연진들의 재치 있는 입담과 함께 프로그램의 새 멤버를 뽑는 과정을 오디션으로 구성해 신선한 재미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영화 에서 특수 요원을 선발하는 포맷을 웃긴 예능인 선발이라는 가벼움으로 포장하는 해학이 관전 포인트다. 시청률만큼이나 뜨거웠던 건 식스맨 후보자 자격에 대한 논란이었다
영원한 5살, 못 말리는 신짱구 노하라 신노스케는 ‘딴 생각’을 한다는 점에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랑받는 국민적 만화 캐릭터이다. 공공장소에서 바지통을 벗고 엉덩이를 내밀며 ‘부리부리’춤을 추고, 자랑스레 팬티를 벗고 ‘코끼리 아저씨’라며 호쾌한 스트립쇼를 벌인다. 사회의 규범과 동떨어진 행동들로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는 그는 확실히 딴 생각에 있어 천재적
학기 초 술자리였다. 평소 친하던 선배, 동기들과 으레 갖는. 술이 몇 순배 돌아가면서 잡다한 일상사부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까지 나누던 중, 민감한 부분에 이야기가 닿았다. “나 이번에 시작한 아르바이트 있잖아. 사실 아는 사람이 꽂아 준거야.” 너무 모났던 탓일까. “그럴 수도 있지, 다들 그러고 살잖아.” 맞장구치며 한 잔 술과 함께 떠오르는 의문을
햄릿은 기로에 섰다. 왕위를 앗아간 삼촌 클로디어스에게 아버지의 복수를 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냥 눈 딱 감고 차기 왕위를 이어 평범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복수를 시작하자니 어머니 거트루드에 대한 번민이 마음을 찌르고, 모른 채 살자니 관 속에서 어떤 악몽을 꾸게 될지 감이 안 온다. 삶을 송두리째 결정하는 하나의 결정 앞에서 햄릿은 절규한다. 우리도 기
영화는 스크린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을 속인다.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그것을 사실인냥 믿을 수 있도록. 그러기 위해서 영화는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조금이라도 늘어지는 순간, 관객들은 영화를 의심하기 때문이다. 5분 분량의 씬(Scene)을 수십 개의 컷으로 잘게 나누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생생한 소리를 녹음하는 붐대, 배우의 표정을 클로즈업하는 카메라의
한번은 고등학교 자습시간에 꾸벅꾸벅 졸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선생님께 걸려서 혼나게 됐는데요. 사실 속으론 억울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싶었는데 식곤증 때문에 불가항력적으로 졸게 됐거든요. 그래서 자려고 한 게 아니라 자게 됐다는 말을 생각해봤는데 튀어나온 말이 이것이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자졌습니다.’ 이렇듯 말하고자 하는 뜻(기의)과 그 말
중대신문이 지금 학내 구성원들로부터 대학본부 홍보지라는 인식을 받고 있는데….” 교수대표 비상대책위원회의 한 교수로부터 한마디를 듣는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습니다. 그동안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취재해온 노력들을 한순간에 헛수고로 만드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대학본부 일방의 편에 서서 신문을 만들고 있는가? 곰곰이 곱씹어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나요. 미안한 말이지만 잊고 지냈습니다. 새로운 학기를 맞아 신문에 무엇을 실으면 좋을지 고민하느라 바빴다는 핑계로 말입니다. ‘아차’하고 깨달은 건 며칠 전입니다. 번거로운 일이 좀 있었습니다. 외부 언론 하나가 대학 언론의 위기라는 오래된 주제로 기획을 하나 하고 있던 모양입니다. 이른 오전이든 늦은 밤이든 개의치 않고 전화해 어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는 전략동맹. 공공의 적을 먼저 처단하기 위해 어제의 적과 잠깐의 휴전에 돌입하는 이야기는 역사 시간에 많이 들어본 전략입니다. 40년 동안 전쟁을 해온 고려와 몽고는 공공의 적 일본을 무찌르기 위해 화친을 맺고 연합군을 형성했다는 이야기가 있죠. 하지만 여기엔 세계제국 건설의 야망을 품은 몽고의 강요에 따라 이뤄진 대규모 군사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 이 한 토막의 구절에서 ‘누군가의 아버지가 우는 장면’을 떠올린다면 이건 ‘스투디움(Studium)’이다. 대신 ‘이전에 보았던 고뇌와 걱정으로 가득한 내 아버지의 표정’이 생각나 가슴이 먹먹하다면 그건 ‘푼크툼(Punctum)’이다. 사진을 해석하는 데 쓰이는 개념인 스투디움과 푼크툼을 잠시 빌려 기자는 기자의 본분에 대해
책상 위에 켜켜이 쌓인 카페인 깡통들, ‘츄리닝’에 슬리퍼, 찌들어가는 금요일 신문사의 흔적도 이제 2주면 안녕이다. 사실 밤샘작업을 좀 더 묘사하자면 ‘날 것’의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얼굴을 덮은 파운데이션은 거의 반쯤 날아간 상태가 되고, 아이라이너는 번질 대로 번져 눈 밑의 검은 다크서클이 된다. 세안이 필요한 순간이다. 하루 종일 피부를 덮고 있
기자로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기자에게 나름의 고민이 하나 있습니다. 저만의 ‘색’을 찾는 것에 대한 고민이죠. 색(色). 단순히 사물의 빛깔을 말하는 단어로 쓰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개성이나 특징을 나타내는 말로도 자주 쓰입니다. 나만의 색을 가진다는 것. 나만의 특별함이 과연 무엇일지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