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람이 싣고 온 문학 문예창작전공과 중대신문이 주관하는‘제27회 의혈창작문학상’에서 시 1편과 소설 1편이 최종 수상작으로 선정됐습니다. 의혈창작문학상은 청년 문학도들이 한국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마련된 자리인데요. 전문대 이상 학부 재학생(휴학생 포함)을 대상으로 지난 11월 10일까지 지원을 받았습니다. 올해도 시 부문 13명, 소설 부문 24명 등 많은 문학도가 지원했는데요. 심사는 예심과 본심으로 나뉘어 진행됐습니다. 시 부문 예심은 조동범 강사(문예창작전공)와 김근 교수
여성적인 말투와 몸짓을 가진 인물. 드라마 에 등장하는 게이 ‘쁘아송’이라는 인물에 대한 설명이다. 이밖에도 대부분의 콘텐츠에서 게이는 소위 ‘여성스럽게’ 묘사된다. 마치 게이라면 당연한 것처럼 말이다. 동성애자가 콘텐츠에서 획일화된 모습으로 다뤄지는 이유와 이로 인한 영향을 전문가와 분석해봤다. 동성애자는 다 똑같을거야 콘텐츠에 등장하는 동성애자의 모습은 전혀 다양하지 않았다. 대부분 비슷한 특색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경수 교수(국어국문학과)는 콘텐츠에서 동성애자
영국의 미술사학자 케네스 클라크는 벗은 몸을 ‘누드(Nude)’와 ‘나신(Naked)’으로 구분했다. 나신은 예술적 가치 없이 현실 그대로의 벌거벗은 몸을 의미한다. 하지만 누드는 예술의 옷을 입은 몸을 의미한다. 누드와 나신이 구분된 이유와 예술에 나타난 몸의 역사를 전문가와 함께 분석해봤다. 예술이라 쓰고 철학이라 읽다 아주 먼 옛날 인간의 신체는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보편적인 예술 소재가 아니었다. 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에서 누드가 성행할 때도 다른 지역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당
“누드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는다. 감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벨기에 시인 카미유 레모니에는 누드가 뭔가를 감추려 하는 순간 음란해진다고 설명한다. 그의 말대로 누드는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이야기한다. 작가의 생각을 전달하고 당대의 사회를 말한다. 18세기 후반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누드작품이 전시된 에 다녀와 누드가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누드, 이상을 담다 지금 막 하늘에서 추락한 듯한 남성과 그 주위를 둘러싼 세 명의 아름다운 요정. 허버트 드레이퍼
매 순간 인간의 몸은 움직인다. 뛰거나 걷고 있을 때는 물론, 가만히 누워 자고 있을 때도 인간의 몸은 움직인다. 몸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당연하기에 우리는 일상적 몸짓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몸짓은 그 어떤 글이나 그림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전은 그 몸짓들이 하는 이야기들을 전했다. 얼굴이 하는 이야기 남자의 얼굴에 몇몇 글자가 쓰여 있다. 그가 누구인지 식별이 가능한 모습이다. 남자의 얼굴은 존재만으로도 그의 신원과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
클리셰는 자주 반복돼 습관처럼 쓰이는 설정을 말합니다. 자주 쓰였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으로 당연시됐다는 것을 뜻하겠죠. 이번 학기 문화부는 클리셰를 들여다보고 그 의미들을 파헤쳐 보려 합니다. 이번 주 클리셰는 바로‘여성괴물’입니다. 여러분은 '귀신'이란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전설의 고향의 구미호부터, 머리를 풀어헤친 처녀 귀신까지. 수많은 여성 귀신들의 이미지가 떠오르실 텐데요. 왜 '보통의 인간'은 남성으로 상상되는 반면 '보통의 귀신
사랑과 희생은어머니의 본능이 아니다 ‘인형 옷 입히기’는 인형에게 자신이 원하는 옷을 입히는 놀이다. 인형이 입는 옷은 전적으로 옷을 입히는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 어떤 옷이 입혀지더라도 인형은 그저 미소를 띠고 있을 뿐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모성애의 모습과 유사하다. 사회가 여성에게 ‘모성애’라는 옷을 입힘과 동시에 어머니는 미소 띤 자애로운 얼굴을 한 채로 사랑과 헌신으로 무장을 해야만 했다. 어쩌다 여성은 ‘모성애’라는 옷을 입게 됐으며 이는 여성에게 어떤 억
클리셰는 자주 반복돼 진부해진 설정을 말합니다. 자주 쓰였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으로 당연시됐다는 것을 뜻하겠죠. 이번학기 문화부는 클리셰를 들여다보고 그 의미들을 파헤쳐 보려 합니다. 이번주 클리셰는 바로 ‘여자의 적은 여자(여적여)’ 입니다. 수많은 콘텐츠에서 여성캐릭터는 질투하며 서로를 적대시하는 존재로 그려져왔죠. 미디어 속에서 여성이 ‘여적여’구도로 묘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과연 여성의 적은 여성일까요? ‘여적여’ 클리셰를 분석해봤습니다. 여주인공은 여전히
단편을 대입해 도출된 결과는진실이 아닌 정보일 뿐이다 아주 먼 옛날, 인터넷이라는 존재를 상상도 할 수 없던 시절. 프랑스에 의심 많은 한 사람이 있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세계의 모든 것의 존재를 의심했고, 심지어 앉아 있는 자신까지도 의심했다. 말 그대로 근거 없이 공연히 의심하기를 잘했다. 사전은 이런 행동을 ‘의심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나쁜 버릇
“인생을 보고, 세상을 봐라” 잡지 를 기획하며 헨리 루스가 내건 슬로건이다. 잡지 는 아름다운 보도 사진에 사람들의 삶을 담아냈다. 그리고 그 삶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세상을 전했다. 예술의 전당에서 개막된 에는 잡지 에 담긴 1000만 개의 사진 중 132점이 전시됐다. 세계 각국에서 담은 132개의 순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