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 무르익는 공간, 바로 중앙대 캠퍼스입니다. 흐드러진 꽃잎과 제각기 매력을 뽐내는 건물이 조화된 캠퍼스는 그대로도 아름답지만 중앙대 학생의 이야기를 실으면서 더욱 아름다워집니다. 여러분의 두 눈과 마음을 사로잡은 장소는 어디인가요? 이번주 ‘캠퍼스를 거닐며’에선 중앙대 학생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캠퍼스의 모습과 그때의 추억을 담아왔습니다. 좋은 기억을 따라 걸으면 캠퍼스와 사랑에 빠져요성수원 학생(경제학부 2)-캠퍼스와 사랑에 빠진 적 있나요?“좋은 기억이 있는 길을 걸을 때 캠퍼스와 사랑에 빠지
황인찬 시인은 25살에 낸 첫 시집 『구관조 씻기기』로 최연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내놓은 두 번째 시집 『희지의 세계』도 출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1만권을 쉬이 돌파했다. 시인 김행숙은 그의 시를 “언어에게 옷을 입히는 방식이 아니라 언어를 씻기는 방식을 통해 새로운 시적 경험을 제공한다”고 평했다. 29살의 나이에 벌써 문단에서 나름의 개
문예창작전공과 중대신문이 주최하는 ‘제25회 의혈창작문학상(문학상)’에서 총 2편의 시와 1편의 소설이 수상작으로 당선됐습니다. 전국 대학생(전문대 이상 학부 휴학생, 재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문학상은 청년 문학도들이 한국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마련된 상입니다. 모집부분은 시 부문과 소설 부문이었으며 공모된 작품은 예심과
지난해 드라마 ‘미생’의 등장으로 온 국민이 직장인의 비애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면 요즘은 예쁜 배우 황정음의 통통 튀는 연기가 연일 검색어에 오르내린다. 지난주에 첫 방송을 마친 드라마 ‘풍선껌’은 시청자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지금 드라마에 푹 빠졌다. 집에서 눈으로 즐기는 드라마 한편이면 밖에서 즐기는 문화생활이 부럽지 않다. 주찬
전임교원 충원 문제 해결 안돼오늘 재면담 가지기로 지난 2일 문예창작전공 및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학생회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서울캠에 항의 방문했다. 지난해 9월 12일 문예창작전공 학생회가 항의 방문한 것에 이어 두 번째다. 이번 항의 방문의 직접적 원인은 겨울방학에 진행된 특별 별정제 전임교원 충원과정에서 문예창작전공에는 단 한
전임교원 충원 문제 해결 안돼오늘 재면담 가지기로지난 2일 문예창작전공 및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학생회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서울캠에 항의 방문했다. 지난해 9월 12일 문예창작전공 학생회가 항의 방문한 것에 이어 두 번째다. 이번 항의 방문의 직접적 원인은 겨울방학에 진행된 특별 별정제 전임교원 충원과정에서 문예창작전공에는 단 한
흔히 브라운관이 아닌 외부 행사에서나 볼 수 있는 가수들을 행사용 가수라고 비하하곤 한다. 그러나 무대가 아닌 교단에서 ‘외부 행사’를 뛰는데 열중한 교수가 있다. 툭하면 강의실 밖으로 나가 학생들과 문학 행사에 빠짐없이 참여했던 전영태 교수(문예창작전공)에게는 강의실 밖이 진정한 교단이었다. ‘행사용 교수’라는 별명은 그가 중앙대에서 있었던 27년을 마무
박민규 소설가(문예창작학과 87학번) 인터뷰 소설에 대해 아는 것도, 알고 싶지도 않던 그가 어느 날 소설가가 되어 우리 곁에 나타났다. 을 수상한 직후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을 수상을 하며 유명세를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 , 대
안성캠 총학 선거가 끝났다. 기호 1번이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알음알음 들었다. 올해 문창과의 투표율은 저조했다. 재학생 중 1/3 정도만 자신의 투표권을 행사했다고. 나는 좀 놀랐다. 평소에 우리 과 사람들은 학교 일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하지만 정작 투표일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자기 일 하기에 바빴다. 실은 내가 잘못 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기획의도 국내 최초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가 창과 60주년을 맞이했다. 문창과는 60년의 역사를 한데 묶어 『한국문학 1번지』(작가세계 펴냄)를 출간해 지난달 27일 성대한 기념식을 열었다. 문창과를 들여다보면 한국문학사가 보인다. 미아리시대, 흑석시대, 안성시대로 이어지는 문창과의 역사에서 한국문학사를 주름잡는 굵직한 문인들이 탄생했다. 지금까지 등단한 문
일기를 쓰는 것이 귀찮아 동시로 일기를 쓰던 소년이 진짜 시인이 됐다. 최지인 학생(연극전공 3)은 ‘돌고래 선언문’외 7편으로 민음사 주관 을 수상했다. 230명 응모자가 투고한 2,608편의 작품을 제치고 당당히 한국 문단에 이름을 알린 최지인 학생을 만나봤다. -에 당선됐다. 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나.
4.19기념 특별 기고53년 전 4월, 중앙대 학생들은 ‘의에 죽고 참에 살자’는 기조아래 혁명의 물결에 뛰어들었다. 경찰의 무력 진압 속에서 6명의 중앙대 학생들이 희생됐고 중앙대는 이들의 넋을 기려 추모탑을 세우기도 했다. 중대신문은 제53주년 4·19혁명을 기념해 이승하 교수(문예창작전공)의 기고문을 지면에 실었다. 문학 속에서 지금도 살아있는 4·1
박상연 소설가·시나리오 작가 (영어학과 91학번) 밤 10시가 가까워오면 곳곳에서 마니아층이 들썩인다. 방영 기간이면 학생들이 등교를 마친 학교에서도, 회사원들이 출근을 마친 회사에서도 이야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던 드라마들의 방영 시간이기 때문이다. 밖에 나와 있는 사람은 서둘러 DMB를 켜고, 집에 있는 사람은 ‘채널 고정’한 채 뚫어져라 화면을 들여다보
새내기에게 물었다1. 대학에 합격하면 꼭 해보고 싶었던 한 가지는? 2. 올 한해 원없이 해보고픈 한 가지는? 3.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4. 지금의 나를 짧게 정의한다면? 5. 인생의 롤모델을 한 명 뽑는다면? 장성의 아들은 호스피스 준비 중 김병혁간호1. 여행이다. 어렸을 때 시골에 살았던 때문인지 몰라도 산과 바다로 여행가는 걸 좋아한다. 대학 입학
1974이태현국어국문학과 74학번중앙대 홍보실장 의혈 달래던 임영신 박사 지금도 잊을 수 없어 70년대 캠퍼스의 봄은 우울했다. 당시 긴급조치라는 올가미가 시대의 지식인층을 대상으로 마구 휘두를 수 있는 전가의 보도였기에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으나 뜨거운 피를 더욱 뜨겁게 만드는 기폭제 역할도 했다. 툭 하면 휴강에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갑자기 안
버스를 기다리다김현수꿈을 지니면 이루어질 줄 알았다한 대만 더 한 대만 더기다림으로 녹아버린 아스팔트 위로홀로 표류하다 가슴에 굴러온 이파리까지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짓누르며 앞질러 갔는가 기다리다 지쳐 단일해진 사람들버스가 지나간 자리마다 움츠러들고대신 생선 비린내가 인화지처럼 선명해지는 오후정류장 옆 장터 무엇에도 그늘은 있지만이미 분리 작업이 끝난거리 좌판의 골 깊은 사람들기다린 그늘 옆이 밑바닥 느낌은 기다리지 않는 것이었다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겠다는 거만한 건물들이땡볕에 비를 내린다이런 창백한 날뿌리를 빼앗기고도푸른 꿈을 지닌
김대오 특종을 마다하는 이상한 연예기자 여기 특종을 자기 발로 차버리는 바보 같은 연예기자가 있다. 너무나 냉정하고 엄혹하다는 연예계에서 아직도 ‘사람’이야기를 하는 순수한 연예기자가 있다. 21년동안 정글같은 연예계에 있었으면 연예인에게 질릴 법도 한데 그는 여전히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여러분이 스타입니다’라는 슬로건으로 새로운 연
예대생의 속사정 "어쩌면 돈과 멀리있어 시가 아름다운건지도 모른다" 작은 종이도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이 될 수 있다. 종이 안에 무엇을 쓰냐에 따라 방대한 것을 글로 담아낼 수 있는데, 이한솔(문예창작학과 4)씨를 처음 만났을 때도 같은 느낌이었다. 작은 체구의 그녀는 누구보다 큰 꿈을 갖고 있다. 시 써서 취업이 되냐는 조금은 무례한 질문에 그녀가 답
바야흐로 졸업입니다. 떠나보내기 아쉬운 마음에 졸업을 앞둔 4명의 학생을 한자리에 모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처음에는 그들도 풋풋한 새내기였습니다. 루이스가든에 둘러앉아 술잔을 부딪치는 대학의 낭만이 좋았습니다. 하고 싶은 게 많아 여러 동아리를 기웃거리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좋아 밤늦도록 술자리를 떠나지 못했던 기억도 납니다. 공부 열심히 해
지난 22일 공예학과와 문예창작학과 학생들이 에체능계열 이연화 부총장과의 만남을 가졌다. 이날 학생들은 목공예 전임교수 임용, 목공기사 채용, 문예창작학과의 수업공간 및 강사수급 등 그간의 불만을 토로했다. 공예학과는 목공예 전공을 담당하던 윤근 교수 퇴임 이후 후임 교수가 채용되지 않고 있다는 것. 두 번째로 기자재 관리와 위험한 작업을 도와주던 목공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