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미뤄놓은 꿈이나 작은 소망 같은 거 하나씩은 갖고 있나요. 이렇게 제 소망을 내어놓기에 쑥스럽지만, 오랫동안 기자로 일하고 싶었습니다. 대학에 오기 전 살았던 진주에는 청소년 신문이 있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청소년 기자들이 직접 기사를 써서 발행했죠. 그 시기 누구나 가졌던 고민들, 문제의식들과 여러 소식을 알려주던 그 신문을 저는 매달 기다렸습니다. 열일곱부터 청소년 기자로 활동할 수 있었기에 고등학생이 되면 그 신문의 기자가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아마 저만큼 그 신문을 좋아했던 사람은 없었을 테니까요. 세상일이 마음먹
‘우리’ 엄마. ‘우리’ 가족, ‘우리’ 학교. ‘우리’라는 말을 통해 나의 영역을 넓히는 한국인의 정을 느낄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이 교감하고자 하는 감정적인 연대가 꽤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내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현대인들에게 다정, 연대 따위의 말들은 공중에서 부유하다 흩어질 피상적인 말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왜 이타주의를 실천한 사람들의 기사는 대중에게 여운을 남기는가? 이 따갑고 공격적인 세상에서도 삶은 결국 다정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소위 ‘오글거리다’라는 말의 유행 이후로는 세상의 온도가 한 층
“떠나는 길에 니가 내게 말했지 너는 바라는 게 너무나 많아.” 최근 인기몰이 중인 가수 비비(김형서)의 신곡 의 가사 중 일부다. 은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사랑의 감정을 밤양갱이라는 음식에 투영한 가사로 대중들에게 큰 공감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가사를 곱씹어 보면 비단 사랑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사처럼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을 바란다. 물질적인 풍족함, 행복한 미래, 누군가와의 사랑 등. 열거하기 벅찰 정도다. 바람은 성취의 원동력이 된다. 우리는 그 성취를 위해 분주하게 노력한다.
분초사회, 1분 1초가 아까울 정도로 분초를 다투며 살아가는 사회를 뜻한다. 이는 『트렌드 코리아 2024』에서 올해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으로 소개되었다. 우리는 현재 AI 기술의 폭발적인 발전과 수많은 콘텐츠의 범람 아래 살아간다. 세상은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으며 우리는 세상의 흐름을 쫓기 바쁘다. 이런 시대에서 우리는 시간의 중요성을 매우 크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시간의 가성비를 따지며 자연스레 선택의 불확실성과 실패의 두려움에도 굉장히 민감해졌다. 그래서 불확실하다고 느껴지는 것보다 보편적으로 정답이라고 생각되는 선택을 하곤
‘평생 일만 하다 죽는다.’ 언뜻 듣기엔 직장인의 흔한 푸념 같지만 우리나라의 현주소를 여실히 나타내는 문장이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 ‘한눈에 보는 연금 2023’에 따르면 일본의 노인 소득 빈곤율은 약 20.0%, 미국 약 22.8%, 프랑스 약 4.4%, 노르웨이는 약 3.8%였다. 같은 조사에서 한국은 약 40.4%로 해당 조사에 참여한 OECD 38개 회원국 중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이미 한발 앞서 초고령화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알려진 일본에 비
타인의 어려움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지난 10월 29일, 사진부 기획을 위해 이태원에 방문했다. 사고가 일어났던 장소엔 기자와 유튜버 등이 뒤엉켜 통행을 방해하고 있었다. 기자들의 사다리가 골목 입구를 틀어막아 정작 유가족들은 지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추모를 위한 장소에서, 추모보다 자신들의 취재를 우선시하는 기자들의 행위에 화가 났다. 하지만, 결국 나도 타인의 어려움을 그저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웠다. 갈 곳 없어진 분노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타인의 고통』의 저자인 수
날 선 바람이 두 뺨을 스치는 계절이 찾아왔습니다. 기자는 작년 이맘때를 떠올립니다. 딱 지금만큼 날이 쌀쌀해지던 무렵. 기자는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꿈이 있고 또 욕심이 있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일까요? 자기 자신을 위해, 때로는 남을 위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은 주위의 존경을 사고 누군가의 우상이 되겠지요. 갓 사회로 나온 청년들은 끊임없이 그런 우상을 닮아가려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학 사회에 처음 발을 디딘 청년들은 이런 착각에 빠집니다. 모두가 같은 직종을 꿈꾸고,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고 또 같은 것만 보
사람들은 왜 사회를 더 좋게 만들어야 한다고 하는 걸까. 기자는 생각합니다. 나 하나 살기도 바쁘고 힘든데 사회를 개선해야 한다는 말에 의문이 생길 때가 있죠. 그러나 이 심오한 의문은 시간이 지날수록 해결됐습니다. 기자는 초등학교 2학년을 도시의 한 대형병원에서 지냈습니다. 편의점도 버스 타고 20분은 가야 하는 시골에서 자란 기자에게 대형병원은 매우 놀라운 곳이었습니다. 엘리베이터의 층 버튼도 홀짝으로 나눠져 있어 덕분에 홀수와 짝수를 배울 수 있었죠. 작은 키로 우러러본 병원 내 사람들의 표정과 행동들이 기억납니다. 궁금증이
한반도 동부를 종단하는 우람한 태백산맥의 줄기를 따라 내려오면 경상북도에 위치한 팔공산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대구광역시와 경산시 등에 걸쳐 넓게 자리 잡고 있는 팔공산은 비슬산과 더불어 대구의 양대 산으로 알려져 있죠. 이곳은 불교문화의 중심지로 수많은 사찰이 산재해 있는데요. 그중 하나인 관암사에서 출발해 1년 365일을 뜻하는 1365계단을 따라 45분 정도 등산하면 비로소 정상에 도착합니다. 이곳에 펼쳐진 웅장한 암벽을 올려다보면,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갓바위’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갓바위에는 매
인간은 살아온 환경, 겪은 경험 등이 다르기 때문에 저마다의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수많은 타인을 만나게 되죠. 따라서 우리가 다양한 생각을 마주하는 건 필연적인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당연히 그 다양한 생각에는 내 의견과 반대되는 생각도 존재할 것입니다. 기자의 칼럼은 그런 생각의 다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됐습니다. 기자는 고등학생 때 학교에서 친구들과 정치·철학·역사 등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자주 가졌습니다. 토론은 발언 제한 시간도 없고
개강하면 학생들은 본가에서 서울로 저마다의 여정을 떠나곤 합니다. 필자는 자취하며 지난 1년을 서울에서 보냈습니다. 서울에서의 생활은 북적북적한 사람들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지만, 모순적이게도 필자는 그 북적함과 대비되는 고요한 자취방에서 외로움을 느껴왔습니다. 그렇게 보낸 1년의 시간은 필자의 인생에 온기를 느끼게 해준 소중한 순간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15년 가까이 살아온 필자의 ‘집’은 많은 추억이 담긴 존재입니다. 차를 타고 조금만 나가면 도시인 곳에 있지만, 아직 집 주변은 초록빛의 자
통화를 하는 것이 두렵습니다. 취재처에 연락할 때면 대본을 작성하고 오랜 시간 심호흡을 거친 후에나 수화기를 들 수 있습니다. 수신음이 이어질 때면 전화를 받지 말아줬으면 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상대방이 내 말을 곡해하진 않을지, 목소리가 듣기 불편하진 않은지, 전화를 거는 시간이 적절한지 항상 고민하게 됩니다. ‘콜 포비아’입니다. ‘콜 포비아’는 정신과 의사 존 마샬의 저서 『소셜 포비아』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Call과 Phobia의 합성어인 ‘콜 포비아’는 전
자본주의가 새로운 노동계급, 숲, 석유 유전, 자원의 보고 등에서 압출해 낼 수 있는 양은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또한, 자본주의의 신진대사는 본질적으로 자원들을 한계까지 고갈시키는 체계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학자 제이슨 W. 무어는 자본주의에서는 새로운 프런티어가 중요하며, 프런티어가 더 존재하지 않는 이상 저렴한 자원이 종말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즉, 저렴한 4가지 –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부터 압출한 저렴한 노동력, 화학비료와 저렴한 식량, 착취해낸 저렴한 원료, 그리고 원료 기반의 저렴한 에너지가 고갈되는
여러분의 장래 희망은 무엇인가요? 이미 직업이 있는 분이라면, 꿈꾸던 일을 하고 계신가요? 기자는 살면서 뚜렷한 장래 희망을 그려본 적이 없습니다. 직업에 대해서도 그저 ‘먹고 살 수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하는 막연한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수강한 언론사 아카데미에서 선생님의 말씀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 인생 대부분이 일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일에 대한 애정이 곧 우리 삶의 태도가 된다는 것이었죠. ‘기레기’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기자라는 직업의 인식이 바닥을
환경 정책의 결과로 수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온실가스 발생의 주범인 에너지 기업들이 쇠퇴하기 시작하자, 일부 노동 운동가들은 기업과 한편이 돼 산업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너지 전환을 적극 환영하는 환경 운동가들과 일자리를 지키려는 관련 노동 운동가들의 대립은 당연한 일 같았다. 전환 과정에서 노동자의 희생은 대의를 위한 필요악처럼 여겨졌다. 이때 미국 노동 운동가 토니 마조치가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해를 해고나 임금 삭
열세 살의 겨울, 바다와 산이 있는 여수의 작은 마을에 살았던 저는 가족들과 함께 광주로 이사를 오게 됐습니다. 도시에 상경한 시골 쥐처럼 고향에선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풍경들에 눈이 번쩍 뜨이기도 했지만, 이 낯섦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곧장 친구들과 아파트 뒷산으로 향했던 시골 쥐의 발걸음은 이젠 학원으로 향했고 까끌까끌 흙이 묻어나던 손엔 매끈한 펜이 쥐어졌죠. 제대로 해본 적 없는 공부부터 어딘가 모르게 세련돼 보이는 사람들까지, 모든 것이 낯설었던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추위를 많이 타게 되면 자연스레
중대신문에서 정기자가 된 후 첫 취재를 나가던 순간이 생생합니다. 꿈에 그리던 학생 기자가 됐다는 생각에 마냥 행복했습니다. 정기자는 화요일마다 취재원에게 전화로 취재 요청을 드리는데요. 취재원에게 당차게 전화 걸어 인터뷰 요청을 드리고, 지나가는 학생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가 즐겁게 인터뷰를 했죠. 떨리기는 했지만 기분좋은 설렘으 로 다가왔었습니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제게 기자라는 직업은 안성맞춤 같았죠. 그런데 이 모든 생각을 송두리째 앗아간 사건이 생겼습니다. 취재 도중 아주 큰 좌절 을 맛봤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취
기자는 휴대전화가 두 대입니다. 시쳇말로 ‘투폰’을 사용하는 것이죠. 기자가 휴대전화를 두 대씩 들고 다니는 모습을 본 사람은 하나같이 그 이유를 묻는데요. 그럴 때마다 “지우는 걸 잘 못해서”라는 답으로 일관합니다. 사진과 동영상, 애플리케이션의 캐시, 영양가 없는 내용의 메모들 모두 언젠가 다시 필요할 것 같았거든요. 사진은 각도가 묘하게 달라서, 캐릭터를 한참 키우다가 관둔 게임은 아까우니까 등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특히 둘 중 먼저 사용하기 시작한 휴대전화에는 6년 전부터 모은
기자는 우울장애가 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다니며 약도 먹고 상담도 받는 중입니다. 우리 사회 청년의 우울장애가 심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 국무조정실에서 발표한 ‘2022년 청년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19~34세 청년의 우울 증상 유병률은 6.1%에 달합니다. 그중 전문가의 상담이 필요했으나 받지 못한 경험은 5.6%였는데요. 기자는 그 5.6%를 위한 글을 써볼까 합니다. 청년들이 병원에 가지 못하는 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비용이 부담될 수도 있고 혹은 주변 인식이 걱정되기도 할 테죠. 기자
기자는 이가 잘 썩습니다. 그런 체질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그런 게 어딨냐며 비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양치를 안 하는 습관을 괜히 핑계를 댄다며 혀를 찰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얼마나 성실히 양치를 했느냐와는 별개로, 침이 산성을 많이 띌 경우 치아 부식이 쉽게 된다고 합니다. 매번 “양치를 열심히 안 해서 그래”라고 꾸중을 들었는데 ‘내가 잘못해서 이가 썩은 게 아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진짜 원인을 안다고 해서 더 이상 이가 안 썩는 것도 아닌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