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82년생 김지영」에서 김지영씨는 여성이란 이유로 회사의 장기 프로젝트에 참가하지 못한다. 여성은 임신하면 곧 퇴사할 것이라는 회사의 판단 때문이다. 그런데 친구는 책에서 회사가 나쁘게 그려진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그게 합리적인 거 아냐? 기껏 프로젝트를 맡겼는데 퇴사를 하면 회사는 ‘합리적’불이익을 얻는 거잖아.” ‘합리성’은 ‘이론이나 이치에 합당한 성질&rsquo
북적대는 강의실을 상상했다. 학생들이 너도나도 강연을 듣겠다며 모일 것이라 예상했다. 출석도 시험도 없는 학술 행사이지만 배움에 목말라 있는 학생들이 제 발로 찾아올 거라 생각했다. “순영아, 다녀와.” 한 학술 행사를 소재로 기사를 쓰라는 취재지시가 내려졌다. 강의실이 가득 찼을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10여 명 남짓한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적어도 너
정글짐 꼭대기에 올라선 기분이다. 손을 놓는 순간 모랫바닥으로 곤두박질칠 것 같아서 내려오지도 못한 채 끙끙 앓고만 있는 어린아이, 3월의 나는 아슬아슬하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둘째 치더라도 그것을 ‘전달’하는 데는 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함을 몸소 느끼고 있다. 온통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단어로 도배된 전공 서적도 답을 주지는 못한다. 지면에 박힌
말 그대로 이젠 신물이 날 지경이다. 월세, 보증금, 자취방, 전세…. 그간 심드렁하게 마주했던 이런 낱말들을 한 달간 끼고 산 탓이다. 지난 4주간 야심차게 뛰어든 주거 기획의 결과다. 세심한 독자들이라면, 매주 심층기획부 지면을 가득 채웠던 행과 열 사이에서 이번 주거 기획의 제목을 발견했을지도 모르겠다. . 한없
“중대신문 임기원 기자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인터뷰 가능하신가요?” 기자는 수화기 너머 들려올 인터뷰이의 대답에 잔뜩 긴장했다. 흔쾌히 승낙한다면 좋겠지만 그건 기자의 바람일 뿐. 사실 요즘 승낙보다 거절을 더 많이 당한 것 같다. 신문사 기자로서 숨 가쁘게 지내온 지 어느덧 1년이다. 이번학기는 여론부 기자로 살고 있다. 여론부는 이름처럼 다양한
모파상은 에펠탑이 보기 싫어 에펠탑 안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고 한다. 파리에서 유일하게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곳은 역설적으로 그 속이기 때문이다. 모파상처럼 기자도 카메라에 찍히는 것이 싫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두 가지 어려움에 봉착했다. 하나는 인터뷰이에게 촬영 허락을 받는 것이고, 또 하나는 좀처럼 늘지 않는 사
숟가락이 무겁다. 학생식당 가격인상과 더불어 블루미르와 참마루의 수저도 교체됐다. 하지만 숟가락이 퍼담을 음식까지 바뀐 것은 아니다. 밥알 수는 그대론데도 이상하게 학생들의 숟가락만 무거워졌다. 가벼워진 것은 학생들의 지갑 정도다. 시작은 사소했다. 자판기에 오랫동안 품절된 채로 있었던 스프라이트를 먹고싶다는 생각에서 중대신문은 스프라이트가 재입고 되지 않
뻔한 건 지루하다. 얼마 전 스페인과의 국가대표 평가전도 그랬다. 새벽 3시, 심야시간이지만 페이스북엔 한국과 스페인 국가대표 평가전에 대한 관심을 그대로 반영하듯 실시간으로 글이 올라왔다.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시청했지만 결과는 4대1. 완패였다. 전반까지만 하더라도 1대0으로 앞섰으나 후반 4골을 연달아 내주며 뻔한 결말로 끝맺었다. 예상했던 결과에 허
다 그런 줄 알았다. 내 친구의 책꽂이도 나와 같을 줄 알았다. 베스트셀러라서 샀던 철 지난 소설책과 지난 학기에 무겁게 들고 다닌 두꺼운 전공 교재. 열심히 한 게 아까워서 버리지 못한 수능문제집. 기자의 부끄러운 책꽂이다. 하지만 내 친구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적어도 ‘내 친구의 서재’를 쓰기 전까지는 말이다. 기자는 학술보도면에 ‘내
“우리 생각보다 무식하지 않거든요”라고 무용학과 남학생은 하소연했다. 기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너네가 똑똑하다고?’ 예술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통교양 과목 수강신청을 성공해 학점은 따 놓은 당상이라며 좋아하던 인문대 친구가 떠올랐다. 친구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다 중요한 모순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바로 기자도 예대생이다. 누워서 침 뱉은 격이 아닐
보도부 기자들에겐 매주 월요일마다 수행해야 하는 임무가 있다. 바로 취재처를 도는 일이다. 담당하고 있는 취재원에게 연락하고 그들을 방문해야 한다. 단순히 취재원을 찾아가 서로 인사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취재원과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눠야 한다. 때론 그들에게 끈질기게 들러붙어 기삿거리를 뽑아내야 한다. 이런 일은 아직 한 달 차 기자에겐 익숙하지 않다
기자가 속한 학과는 인원이 많다, 그래서 주로 대형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다. 이런 대형 강의실에는 전자출결 단말기가 설치돼 있다. 학생증만 있으면 누구나 간편하게 전자출결 단말기에 찍고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체계는 가히 IT 강국 한국에서나마 볼 수 있는 체계일 것이다. 수업 시작할 때 가만히 교실에 앉아서 언제쯤이면 내 이름을 불러줄지 혹시나 놓친 건
의외였다. 누구나 재빨리 써내려갈 줄 알았다. 3가지로는 적다며 종이를 꽉꽉 채워 적을 줄 알았다. 생각이 안 난다며, 예시를 들어달라며 당황한 표정을 짓는 학우들을 보며 기자는 더 당황스러웠다. 죽음이 너무 멀게 느껴지는 이십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이기에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을 적는 '버킷리스트'가 필요 없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
2012학년도 새 학기가 개강을 하면서 to로운 기관들이 생겨났다. 그것은 바로 인권센터와 종합안전관리실 그리고 장애학생지원센터다. 세 기관 모두 우리 학내 구성원들을 위해 설치됐다. 인권센터는 국내 처음으로 인권을 전담하는 기관이 학내에, 그것도 총장직속기관으로 설립된다. 또한 종합안전관리실은 학내 시설들의 안전을 포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시설팀에 분리됐
2011년 하반기, 안팎에서 수많은 바람이 우리 시대를 할퀴고 지나갔다. 가교과 폐지와 본분교 통합, 102관 완공, 부총장제 실시, 또 박원순 열풍과 안철수 바람, 나꼼수 신드롬, FTA 비준을 여느 때보다 처절하게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감수성이 참으로 예민해졌다. 주변에서 정치·사회적 변화들이 개개인의 삶의 변화와 밀착해 있음을 자각하자 모두가 보
지난 10월 문래동을 찾은 적이 있었다. 문래동 철공 단지에 생긴 예술가 마을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예술가들과 인터뷰를 마치고 철공소 사장님들을 취재하러 갔다. 한 사장님과의 대화에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사장님들에게 ‘철공소 사장님’이라고 부르면 싫어한다는 말이었다. 대신 ‘엔지니어’라고 불러주길 바란다고 하셨다. ‘철공소’라는 단어는 다소 퇴색된
첫 취재를 위해 방문한 게르마니아에서 인문학을 처음 만났다. 유토피아라는, 요즘 같은 세상에 다소 낯설고 ‘비효율적인’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인 학생들의 눈이 놀랍도록 반짝여 의아했다. 무엇이 저토록 인문학을 갈망하게 만드는가. 하지만 이상화 교수님이 묘사하는 윌리엄모리스의 유토피아를 떠올리는 동안 나도 모르게 인문학의 즐거움에 젖어들고 있었다. 윌리엄모리
대학생 생활비 실태조사 기획을 준비하면서 필자는 많은 사람을 귀찮게 했다. 설문조사를 하기 위해 후배기자 11명의 발을 귀찮게 해야 했고 설문에 응해준 1259명의 학우들을 귀찮게 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귀찮게 했던 사람은 생생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던 9명의 학생들이다.9명의 학생들은 집안사정이 어려워 스스로 생활비를 어렵게
운이 좋게도 이번 학기에는 국제면을 맡게 되어 외국인 친구들을 만날 일이 부쩍 많아졌다. 캠퍼스를 지나다가 외국인을 마주치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그들과 말을 섞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취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여러 질문들을 던져야 했으므로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실컷 물어봐야지’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첫 인터뷰를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