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울 때 행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주의를 환기시키는 방법으로 눈 앞에서 장난감으로 놀아주기도 하고 노래를 불러주며 울음이 그칠 때까지 달랜다. 그러나 아기가 무엇이 불편해 우는지 알고 해결해내지 못한다면 이 방법은 임시 방편일 뿐이다. 두 번째는 아기의 욕구를 알아채는 데 소모될 에너지를 아끼고 그 울음소리에 그냥 무뎌지는 것이다. 아마 울음은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밑바닥의 모습 중 하나일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 속 배우들처럼 눈물방울 뚝뚝 떨구는 처연한 모습은 절대 아니다. 감정에 북받쳐 주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볼 배합’이다. 직구와 변화구를 어떻게 조합해 타자의 헛스윙을 유인하고 범타를 유도할지 고민하는 일이 필요하다. 스트라이크를 잡기 위해 직구로 타자와 곧바로 승부할 것인지, 브레이킹 볼로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아 유리한 볼카운트를 선점할 것인지 여러 볼 배합을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투구를 가져가야 한다. 그래서 야구 전문가들은 배터리가 구사하는 볼 배합이 경기의 흐름을 좌우한다고 이야기한다. 기자는 2021년 12월 2년여 간의 임기를 마치고 다시 중대신문 기자로서 활동을 이어가게 됐다. 지금까지 맡았던 부
책 표지의 접지를 처음으로 접는 독자가 될 때면, 왠지 모를 쾌를 경험하게 된다. 수직으로 움푹 팬 도랑이 내 손끝에 의해 만수를 이루는 듯한 느낌. 도서관에서 가장 좋아하는 서가가 다름 아닌 신간 코너라는 유치한 취향도 여기서 비롯됐다. 고등학교에 다닐 적이었다. 새 책이었고, 얇고 가볍고 새하얬다. 한국에서 대입을 경험한 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거 할 시간에 영어 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세뇌의 결과를. 그런데도 읽어보고 싶었다. 새 책이었고, 얇고 가볍고 새하얘서. 글쎄. 교내 레크리에이션
다시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기까지 셈하기도 어려운 해들을 지나 보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아껴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지닌 건 맞지만, 나의 마음이 유독 그 사람에게 인색한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사실이다. 누군가와 사랑을 할 때 서로를 향한 마음의 크기가 같을 수 있다면 차라리 좋겠다. 그러나 이도 그저 가정의 문법으로 작게 읊조릴 뿐이다. 사랑의 많고 많은 본질 중 하나가 ‘불평등’이란 사실을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깨달았다. 더 사랑하는 쪽이 아플 수밖에 없다는 모순은 깨달음의 덤이었다. 지나온 시간을 반추해 봤다. 나는 그이의
저는 옷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한 적이 있습니다. 방학을 맞아 용돈을 벌기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집 근처 쇼핑몰에 입점해 있던 옷 가게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뒤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아 정말 재밌게 일할 수 있겠다는 부푼 마음가짐으로 첫 출근을 했죠. 제가 가게에서 처음 한 일은 옷을 개는 것이었습니다. 예쁘게 옷을 개는 방법을 배운 후 손님들이 착용해 본 옷을 개고 또 개고 또 개었는데요. 매장을 돌아다니며 옷을 정리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흘렀습니다. 시간이 지나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점점 친해지기도 하고 가게 내부도 눈
3월에 들어서면 중대신문에서는 매년 하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수습기자 모집인데요. 이번 학기 수습기자 모집 공고를 보니 작년 이맘때쯤 중대신문 면접시험을 봤던 때가 생각납니다. 면접에서 ‘중대신문이 종이신문으로서 추구할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았죠. 부끄럽지만 그때까지는 그다지 깊게 고민해 보지 않았던 기자는 ‘종이신문이 가진 느림의 미학이 있지 않을까요?’라는 다소 생뚱맞은 말로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당시 기자가 생각했던 느림의 미학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답을 미처 고민할 겨를도 없이 정신없었던 일
우는 아이를 달랠 때면 진땀이 나곤 한다. 울음의 이유를 알아내야 하지만 대화로는 해결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 아이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거짓울음도 서슴지 않아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분류를 해보자면 이 정도일까. 말을 하지 못해 우는 아이와 말을 할 수 있지만 울음을 선택한 아이. 후자는 입을 닫은 채 정부와 힘겨루기 중인 의사들을 두고 한 말이다. 2월 6일 보건복지부가 2025년부터 2000명 규모의 의대 입학정원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의사 단체는 ‘울음을 선택’했다. 2월 26일 기준 8939명에 달하는
최근 온라인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홍보영상에서 캐릭터가 집게손가락 포즈를 취한 장면이 등장해 논란이 됐습니다. 캐릭터의 손 모양이 남성 혐오를 상징한다는 이유에서였죠. 일부 네티즌들은 홍보영상의 원화·동화를 맡은 외주업체 직원 A씨가 SNS 계정에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게시글을 올렸다며 A씨의 해고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해당 장면의 콘티를 만든이는 타 기업의 40대 남성으로 밝혀졌습니다. A씨는 해당 캐릭터가 등장하는 장면 100여 컷을 그린 애니메이터 30명 중 한 명이었고, 그마저도 문제시된 장면이 아닌 다른 장면을 담당했죠.
보이는 것만 보고, 들리는 것만 들으며 사는 삶은 평온하다. 나 또한 그랬다. 세상엔 분명 여러 이야기가 있을 테고 그걸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내겐 저녁 메뉴를 고르는 일이 더 중요했다. 사회면 위 시끄러운 사건들은 내 일이 아니었을뿐더러, 잘 알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신문사에 들어갔다. 매주 끝없이 생기는 취재 아이템을 보며 당장 학교에서만 해도 수많은 이야기가 생기고 있음을 깨달았다. 누군가 몰래 낙서한 그래피티부터 외국인 전임 교원 처우 문제까지. 학교에는 그저 내 일만 해치우며 살아갔더라면 영영 몰랐을 이야기들이 존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주 6일이라는 시간을 할애하는 건 내 생의 조각들을 당신으로 물들이는 일이다. 오랜 시간 동안 너는 나의 일부였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너를 아주 단념하기로 마음먹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순간을 사랑하려 하는 사람은 결국 네 곁을 떠나게 되리라. 너의 결함마저 품어내는 법을 이제는 알고 있으므로, 나는 너와 작별하지 않는다. 숱한 좌절 끝에 드문 성취를 해내고야 마는 너는 인생을 닮아있더라. 성패의 여부가 불확실한 땅에서 기꺼이 공을 던지고, 치고, 잡는다. 몸을 던져내는 투혼은 지켜보는 사
어떤 날은 막힘없이 10매 분량의 글을 뚝딱 완성하는 날이 있는가 하면 첫 문장을 쓰고 고치다가 또 지워버리는 날도 있습니다. 글이 영 안 잡히는 날은 3매의 아주 짧은 글도 한참을 붙잡고 앉아있죠. 그러나 매주가 바삐 돌아가는 중대신문에서는 ‘글이 잘 써지는 날’을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마감기한까지 반드시 글을 써야 하므로 의자에 나를 묶어두고 꾸역꾸역 단어들을 토해냅니다. 중대신문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참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매주 월요일 눈에 불을 켜고 학내 이슈를 찾아 보도면을 채워가야만 합니다. 화요일 취재원들이
하늘은 고개를 치켜들고 이유 모를 부끄러움에서인지 나뭇잎이 얼굴을 붉혀가는 계절, 가을입니다. 사계절 모두 저마다의 정취를 자랑하지만 가을하늘에 오감을 내놓고 있자면 어느 계절보다 깊은 시정(詩情)에 잠겨 들곤 하는데요. 가을의 공기가 그만큼 특별한 무언가를 담고 있어선지, 눈을 가린 채 계절의 향기만 맡고도 가을만큼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을 종종 합니다. 대자연 앞에선 그저 방만한 상상으로 들릴까요. 조소만 날리신다면 살짝 서운합니다. 가을에 피어나는 작은 꽃나무 한 그루만 있다면, 가을의 도착을 알아차리는 건 그리
드디어 중대신문에서의 마지막 칼럼을 씁니다. 길고도 긴 시간이었네요. 마지막 칼럼에선 기자가 중대신문에서 탈주하지 않고 기사를 써 내려갈 수 있었던 방법에 대해 얘기해볼까 합니다. 기자는 종종 죽음 이후에 대해 생각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무엇이 남는지, 영혼의 무게 21g은 정말로 빠져나가는지, 지평좌표계 고정이 필요한 입증불가한 물체가 돼 버리는 것인지…. 잡다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기자는 나름대로의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바로 ‘다정함’이 남는다는 결말로 말이죠. 미시세계의 양자역학에선 관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있다. 편하고 빠르게 이동하려면 자가용을 타면 되고, 자가용이 없다면 택시를 타면 된다. 택시를 탈 형편이 안 된다면 무궁화호를 타거나 지하철에서 이리저리 치이면 된다. 그마저도 안 되면 걸어야 한다. ‘역세권’에 위치한 집이 언제나 비싼 까닭이며, 가난한 이들의 아침이 남들보다 유난히 빠른 이유다. 끝에서부터 두 번째 자리에 앉으면 편하게 잘 수 있다. 몸을 뒤로 젖히면 창문틀에 머리를 고정할 수 있어 목에 무리가 덜 간다. 기자는 어린 시절부터 지하철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지하철
중대신문은 매주 ‘중대신문을 보고’라는 꼭지를 통해 중대신문을 읽는 독자분들의 글을 기고받고 있습니다. 16면의 방대한 신문을 읽고 쓴 감상 글에 기자가 쓴 기사가 등장할 때면 뿌듯함을 느끼곤 합니다. 그 내용이 아쉬움일지라도 기자의 글을 꼼꼼히 읽어주신 독자가 있었다는 점에 감사함을 느끼죠. 8월 21일 제2043호의 라는 글은 기자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대학보도부를 이끌었던 지난 학기를 반성하게 하고 문화부를 이끌 이번 학기에 대한 고민을 깊어지게 했죠. 글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여백이
벼락치기 하는 친구 곁에 있으면 괜히 나도 불안해진다. “이렇게 해서 되겠어, 지금부터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라는 의문이 가득하지만, 가뜩이나 급한 마당에 굳이 그런 말을 꺼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벼락치기의 목표가 시민의 안전과 질서를 보장하기 위함이고, 그 주체가 한 국가의 정부라면 상황은 더이상 좌시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최근 뉴스를 보며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일종의 ‘벼락치기식 행정 운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정부가 어떤 사안에 관해 총동원령을 내리기 위해
“언론은 인간이 인간답다는 것을 증명한다. 폭력과 무력에 저항하며 평화를 구축해 가는 힘이 바로 언론이다. 문(文)은 무(武)보다 강하다.” 필자가 지원할 수 있는 대학 원서의 수만큼 신문방송학과에 원서를 내고 무료한 나날을 보낼 때 필자의 어머니께서 쥐여주신 쪽지다. 당시 언론인을 꿈꾸는 딸에게 자신감을 가지고, 대학에서 보낼 앞으로의 나날들을 응원한다는 의미에서 전한 문장이라 생각했다. 학보사에서 2년간 활동한 뒤 어머니께서 건넨 쪽지를 다시 돌아보니, 문장이 전하는 의미가 이전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미국의 사회비평가이자 도시사회학자인 마이크 데이비스는 이렇게 말했다. “쇼핑몰, 오피스텔, 문화 아크로폴리스 등 오늘날의 고급 공공공간은 하층민 ‘이방인(Other)’에 대한 보이지 않는 경고 문구들로 가득 차 있다. 보통은 환경이 인종 차별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의식하지 않지만, 가난한 라틴계 가족, 젊은 흑인 남성 또는 나이 든 노숙자 백인 여성들이 그 의미를 즉시 알아차린다." 우리 사회의 경고 메세지는 이보다 더 명확하다. ‘8세 미만 어린이 손님은 받지 않습니다’, &l
대구에서 나고 자란 기자는 고향에 대한 사랑이 남다릅니다. 서울에 둥지를 튼 지 햇수로 3년이 됐지만, 아직도 동대구역으로 향하는 KTX에 몸을 실을 때면 가슴이 두근거리죠. 가족 모두 대구에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할머니네, 고모네, 삼촌네는 지하철 한 정거장 사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습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하는 이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기자를 한없이 든든하게 만들어 줍니다. 가족들이 대구에 있다는 점도 좋지만 대구를 연고로 한 삼성 라이온즈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사자 군단의 찬
제목 그대로 마지막 칼럼이다. 정기자 시절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36번의 발행도 곧 끝난다. 글을 잘 쓰고 싶어서, 기자라는 직업이 멋져서, 같은 꿈을 가진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다양한 이유가 떠다니던 와중 “중대신문 지원해 봐”라고 말한 한 친구 덕분에(?) 여기까지 와버렸다. 중대신문에서 차장쯤 된 사람들은 으레 “임기만료하면 이쪽으론 쳐다도 안 볼 것이다”, “오줌도 신문사 방향으론 안 싼다” 같은 말을 하곤 한다. 나름의 애증이 담긴 말이다.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