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앱으로 주문한 두부와 계란, 그릭 요거트가 다음 날 새벽 우리 집 현관 바로 앞까지 신선하고 안전하게 공짜로 배송되는 일이 당연한 세상이 되었다. 물류 기업은 “빠르고, 안전하고, 신선하게, 집 앞까지, 무료로 배송”과 같은 높은 서비스 수준에 도달하고자 다양한 기술 혁신과 운영 전략을 지속해서 모색하고 있다. 그러한 전략 중 하나가 도심 지역에 소규모 물류센터(Micro-Fulfillment Center, MFC)를 운영하는 것이다. MFC는 온라인 주문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도록 설계된 자동화 창고로 보통 도시 지역
강단(講壇)에 선 지도 17년이 지났다. 그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면, 가장 크게 변화한 것은 디지털 수업환경이다. 수업 시간에 힘겹게 들고 다니던 전공 서적 내지 교재 등의 서책이 어느 순간부터 전자기기인 노트북과 태블릿으로 바뀌었고, 수업 시간에 책장 넘기는 소리,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줄을 긋는 펜 소리 또는 필기 소리가 아닌 타자 또는 터치펜 소리로 강의실이 채워지고 있다. 대형 강의실 뒤편에서 강단으로 내려가다 학생들 사이를 지나다 보면 그들의 노트북, 태블릿의 화면이 눈에 들어온다. 화면에는 강의 자료 창, 대화창,
요즘처럼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는 것을 느껴 본 적 있을까? 인공지능을 대표로 하는 기술의 진보, 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사회문화적 변화. 챗GPT(Chat GPT)로 시작한 생성형 인공지능에서부터 휴머노이드 로봇까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변화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 모두 강의실에서 열심히 지식을 공유하고 토론하지만, 전공과는 별개로 세상의 변화와 그 방향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때다. 이번 학기부터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강의를 진행 중이다. ‘코딩’은 사회과학 전공자에게 어려운 주제일 수 있다. 그러나
개나리의 꽃말은 개강,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고 했던가. 움트는 개나리 꽃망울처럼 개강이 왔고, 연이어 봄이 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위수여식으로 붐비던 캠퍼스가 어느새 새 학기를 맞이한 학생들로 북적인다. 새내기 새로배움터, 개강총회 등 반가운 만남의 시간을 추억하거나 기대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캠퍼스의 인파를 뚫고 나날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분주한 학생들을 보며 새삼스레 마음이 들뜨는 요즘이다. 개강을 앞두고 명랑한 첫 만남을 준비했다. 강의를 통해 만난 인연이니 나와 마주한 학생들의 마음이 반가우면
2005년 미국의 직장인 3명이 원거리 회의를 위해 만들었던 화상회의용 유튜브, 온라인 영상 플랫폼의 밝은 미래를 예견해 2006년 유튜브를 인수한 구글, 이 시기와 맞닥뜨려 2007년 출시된 ‘스티브 잡스’의 스마트폰. 이는 세상을 누구도 상상 못 한 디지털 행성으로 변모시키는 촉매제가 됐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 때도 마찬가지다. 장기간 지속된 코로나19와 맞물려 언택트 시대가 앞당겨져 4차산업혁명 시대로 전환이 가속화됐다. ‘스티브 잡스’의 스마트폰 출시와 함께 세상이 바뀌었듯, 우리는 또 한 번 세상이 변하는 중요한 과
태초에 식물엔 든든한 뿌리가, 동물에겐 대지와 수평을 이루는 네발이 주어졌으나 불안한 직립의 인간에겐 언어능력이 대신 주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언어는 현대에 이르러 인간 존재의 규정이나 사유의 틀을 만드는 기능적 의미를 넘어 현대철학 그 자체로서 거듭났다. 하야카와로 대표되는 일반의미론은 인간의 언어·사고·행동 사이의 깊은 성찰 관계가 주로 정서적 기능과 함께 그 통달적 기능에 맞춰져 있다고 주장한다. 말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준다. 사람의 사고를 형성하고 감정을 통해 의지와 행동을 인지하는 힘이 있다. 행동과
2014년 9월 대학원 첫 학기의 시작과 동시에 첫째 딸이 태어났다. 첫째 딸은 낮잠 재우기가 힘들어서 늘 아기띠로 안고 기본 30분 정도는 자장가를 흥얼거리며 걸어야 했다. 어느 날인가 아내가 한 시간 가까이 안아줬음에도 자지 않는 아이 때문에 힘들어했다. “더 안아주면 자겠지. 2시간 걸으면 안 자겠어? 내가 해볼게.” 노래도 불러주고 장난도 쳐주면서 즐거운 기분 속에서 낮잠을 재우고 싶었지만, 아기는 결코 자지 않았다. 아내는 다시 아기띠를 매어야 했다. 그렇게 첫째는 유치원 갈 때까지 낮잠 재우는 것으로 늘 힘들었다. 둘째
2020년 3월, 교수로 부임하여 갓 입학한 지도 학생들을 처음 만났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 학생들이 4학년이 되어 졸업을 앞두고 있다. 면담에서 학생들은 직업이나 진로를 어떻게 결정하면 좋을지 물었고, 대답하다 보니 나도 생각이 많아졌다. 이제 사회로 나아갈 첫 지도 학생들, 그리고 그 외에도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전해보고자 한다.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할까? 우선 좋아하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좋아하는 일’은 그 일을 할 때 행복하고 재미있는 일 또는 보람을 느
일본 경제의 암흑기 ‘잃어버린 30년’의 배경 ‘플라자 합의’는 역대 가장 친미 성향을 보인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 시절에 이루어졌다. 나카소네 총리는 스스로 방위비 분담 의사를 보인 데다 소련의 위협에 맞서 일본을 ‘불침 항모’로 만들겠다며 무장을 시작해 미국의 환심을 산다. 결국 미국은 가장 친미적인 일본 총리를 압박해 일본 경제를 부러뜨려 버린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친미반중 기조를 명확히 했다. 가치와 동맹을 중시하는 외교는 언뜻 듣기는 좋으나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고도의 외교적 감각이 필요하다. 롤모델은 이미 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학식이나 능력을 갖춘 사람의 모습을 의미하는 ‘인재상(人材像)’은 산업·사회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여 왔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기계 수준의 작업을 대상으로 네트워크 및 데이터베이스 등과 같은 정보기술을 적용함으로써 자동화 서비스를 제공했던 정보화 시대를 넘어, 전기가 흐르지 않았던 사물들까지도 연결되고 이를 통해 획득·공유되는 데이터를 활용하여 지능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지털 시대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디지
몇 해 전, 강의 중 ‘분단문학’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한국전쟁 체험 세대, 유년기 체험 세대, 미체험 세대의 분단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얘기했다. 강의를 마칠 무렵 통일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어 젊은이들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는데 통일비용까지 짊어지기에는 너무 힘들지 않겠냐고 한 학생이 얘기했고, 모두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요즘에는 언론에서도 문학권에서도 통일에 대한 논의는 쑥 들어가고 말았다.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은 미
지난 8월과 9월 스위스 제네바 인근 에흐망쓰(Hermance)에 있는 브로셰(Brocher) 재단에서 연구를 하고 귀국했다. 브로셰 재단에서 체류하면서 느낀 점을 간단하게 기술하여 공유하고자 한다. 민간기구인 브로셰 재단은 브로셰 부부의 유지를 받들어서 생명윤리 중심의 다학제간 연구를 지원한다. 필자는 ‘건강과 질병 개념의 구성적 진실 연구’라는 주제로 연구를 수행 중이며, 완성 후 저술로 출판할 예정이다. 이 재단에서 연구자들은 1달, 2달, 또는 3달 동안 체류하면서 연구 활동을 한다. 국제적십자사 본부
현대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자유주의자이자 사상가인 후스(胡適) 선생은 생전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용인(容忍)은 모든 자유의 바탕입니다. 자신과 다른 이를 용인하는 아량이 없다면, 자신과 다른 종교와 신앙이 자유를 누릴 수 있음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남들이 우리의 의견을 용인하고 이해해 주었던 것처럼 우리도 타인을 용인하고 이해하는 아량을 길러야 합니다.” 근 40년 이상 중국의 자유를 부르짖었던 후스 선생이 말년에 이르러 ‘용인’을 주장한 것에는 자신의 의견만 강하게
꼬박 10년 전 9월, 데이비드 호크니의 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되었다. 높이가 4.5m, 폭이 12m에 이르며 모두 50개의 캔버스가 하나의 작품을 이루는 이 거대한 풍경화를 직접 본 이후 나에게 9월의 모든 풍경은 을 관통하여 조망된다. ‘보는 것’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까닭은 내가 화가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호크니가 그의 주변 사람들과 자연 풍경을 관찰하는 방식, 그러니까 카메라의 핀홀과 같이 고정된 시점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2일 토요일 오전이었다. 개강에 맞춰 청룡연못 대청소가 한창이었다. 작업 중인 한 분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연못에 물고기가 있습니까?” “아니요, 없어요.” “여기 거북이 한 마리 있었는데요.” “작업하면서 뭍으로 올려놓았어요. 물이 채워지면 다시 들어올 거예요.” 나는 안도했다. 청룡연못에 생명이 넘치던 때가 있었다. 화려한 색의 잉어들도 있었고, 여러 종류의 물고기들도 어울려 헤엄쳤었다. 어느 순간 모두 사라졌고, 청룡연못은 &lsquo
‘후회’와 ‘희망’이라는 단어는 사전적으로 명확한 관계성을 가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람의 인생에서 후회와 희망은 상관성이 있음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단순하게 특정 단어를 통해서 인생의 의미나 처세를 논하는 것은 부질없기도 하거니와 어려운 일이다. 다만, 삶의 태도를 생각하는 시도는 필요하고, 몇몇 단어는 그 단서로 이용해 봄직도 하다. 인생은 길다. 학업과 취업, 연애와 결혼 등과 같은 삶의 요소들은 자연적인 삶의 이벤트로 보이지만, 저절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노력과 태도에
문예창작전공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소설가가 될 수 있느냐고 가끔 질문하곤 한다. 수업 시간에 뛰어난 작품을 써내고 책을 많이 읽은 학우들에게 부러움을 느끼고 위축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글을 잘 쓰고 책을 많이 읽으면 작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대로 말하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국내에서 가장 큰 한 청소년문학상이 코로나 이후 사 년 만에 대면으로 개최되었다. 작가를 꿈꾸는 전국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응모작을 받아 예심을 거쳐 통과된 70여 명과 시, 소설 심사위원들이 함께 이박삼일 예정으로 문예 캠
인쇄 조보를 알리고 조명하는 제5회 국제학술심포지움이 9월에 열린다. 기존 인쇄신문의 역사가 서양의 인쇄술을 중심으로 한 유럽 중심의 관점이었다면 앞으로 동아시아에서 발행한 인쇄 매체 기술을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1650년에 발행한 이 세계 최초 일간 인쇄신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보다 80여 년 앞선 조선에서도 정보 매체를 인쇄해 배포했다는 기록이 여러 사료에 있었으므로 비교될 수 있었으나 실물로 확인되지 못했다. 따라서 2017년 발견된 인쇄 조보는 조선 시대 신문의
한동안 시간을 거스르거나 앞지르는 방식으로 서사의 흐름을 만드는 타임슬립(Time Slip)물이 인기를 끌었다. 주인공이 갑자기 외계인을 만나 새로운 능력을 갖추거나, 과거로 되돌아가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식이다. 최근의 이런 유행은 뒷맛이 쓰다. 타임슬립과 같은 판타지의 유행이 발생하게 된 배경에는 도저히 해결 불가능한 현실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대학생 시절로 돌아갈래?”라고 묻는다면, 나는 “절대로,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20대는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연구실에 읽지 않은 책들과 쓰지 않는 펜들이 가득하다. 잘 읽고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의 잔해들이다. 책과 펜을 소유하는 일로 잘 읽고 잘 쓰는 일을 대신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모으고 채우기보다는 버리고 비워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지금은 모두 잃었지만, 아끼고 사랑한 책과 펜이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끼고 사랑한 책들과 펜들이다. 부친이 국민학교 4학년 때 사주신 50권짜리 계몽사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과 이모가 중학교 입학 선물로 사주신 ‘파카 45 만년필’과 ‘파카 조터 볼펜 샤프 세트&rs